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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서희의 지혜

입력 2024-04-23 14:11 | 신문게재 2024-04-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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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 생활경제부장

국립외교원 앞마당에는 거란의 장군 소손녕과의 협상을 통해 강동 6주를 확보한 서희의 동상이 있다. 아마도 서희의 사례가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외교 협상으로 꼽히기 때문일 것이다.

서희가 거란과의 협상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거란의 침공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서희는 거란이 일으킨 군사 80만을 보고 이는 고려 점령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송나라와의 전쟁을 생각하고 송을 사대(事大)하는 고려를 사전에 정리하기 위한 목적임을 파악했다. 이에 서희는 소손녕에게 앞으로 송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할 테니 군사를 물리어 달라고 한다. 대신 본인은 얻어 낸 것 없이 빈 몸으로 조정으로 돌아갈 경우 송나라와의 친교에 적극적인 대신들이 본인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니, 작은 선물로 임자 없는 땅인 강동6주에 고려의 군사가 들어가 점령하는 것을 묵인해달라 요구해 관철시킨다.

서희는 상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이를 받아들이면서 상대로부터 반대급부를 받아낸 것이다. 명분보다는 냉철한 현실감각과 유연성의 승리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첫 회담이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다. 첫 회담을 앞두고 양측이 물밑에서 의제 조율 등 실무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민생 문제를 포함해 논의할 만한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여야의 입장차가 현격해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회담을 위한 준비회동을 놓고도 양측의 생각이 달라 엇박자를 내고 있다.

또 회담이 열리면 가장 큰 의제로 논의되는 이 대표의 ‘전국민 1인당 25만원 지급’ 및 추경예산 편성 요구만 해도 여권은 “나라를 망치는 포퓰리즘 마약”에 비유하며 극력 반대하고 있다. 재정 건전성 저해를 우려하는 당국의 반대는 차치하고 전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준다는 것 자체가 선별 복지를 주장하는 보수의 정체성과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특검’과 ‘김건희 여사 종합특검’ 등 휘발성 있는 정국 현안에 대한 여야 입장차도 현격하다.

과거 대통령과 야당 대표 회담은 ‘만남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공허한 메시지를 남기고 돌아서는 걸 되풀이했다. 이 같은 ‘빈손 회담’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양측이 상대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상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파악한 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겠는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협치를 위한 성과를 내기 힘들다.

이를 위해 국정운영의 당사자인 윤 대통령부터 변해야 한다. 대통령이 내줄 것은 내주고 어떤 방식으로든 야당을 국정운영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야 간에 견해차가 크지 않은 사안부터 합의해 나가는 것도 검토해볼 만 하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정부와 여당이 국정 기조를 바꿔 대국민 소통의 폭을 넓히고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협치를 모색하라는 요구였다. 여소야대 구도 아래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야당의 협조를 구하지 못하면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 당장 새 총리 인선부터 난관에 부닥치게 된다.

이 대표도 전향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국회 다수당의 대표로서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는 자각을 갖고 당리당략을 떠나 국정 운영에 협조할 건 협조하겠다는 태도를 보일 때 국민의 지지도 커질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서희의 지혜로 회담에 임하길 바란다.

 

이형구 생활경제부장 scale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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