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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베트남 전쟁에 맥주를 배달하러 갔더니, 다들 CIA인줄 알더라!

[#OTT] 실화를 영화로, 애플TV '지상 최대 맥주배달 작전' 옷다가 울다가

입력 2024-04-24 18:30 | 신문게재 2024-04-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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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상 최대 맥주배달 작전'.(사진제공=애플TV)

입으로는 늘 ‘~할거야’라지만 말로만 끝내는 사람이 있다. 애플TV ‘지상 최대 맥주배달 작전’은 첫 장면부터 동네 술집에서 호기롭게 친구들에게 맥주를 사는 치키(잭 에프론)이 그렇다. 그나마도 밀린 외상값이 많은지 바 사장인 대령(빌 머레이)은 “더이상 맥주를 줄 수 없다”고 소리친다.


일년의 반 이상을 갑판 위에서 지내는 치키는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신세다. 주머니가 두둑하게 하선할 때는 동네의 인기남이지만 다음 배를 탈 때까지는 집안의 애물단지다. 어릴 적 성당 친구인 무리들과 어울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오후 2시에 일어나는 게 일상. TV에서 나오는 베트남 전쟁의 참상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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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 최대의 맥주양조업체였던 블루리본이 등장해 사실감을 더한다. 장병들은 차갑지도 않은 맥주여도 본토에서 직접 가져온 맥주에 위로와 향수를 느낀다. (사진제공=애플TV)

 

그런 그가 변한 건 절친의 사망과 정신을 차려보니 한집 건너 살거나 위 아래층에 모여 살던 레이놀즈, 콜린스, 파파스, 더건, 미노그 역시 참전 중인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그 중 가장 친했던 토미는 실종상태다. 낄낄거리고 늘 취해있는 사이 동네는 암울한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우울하게 모여 평소처럼 술을 마시던 치키는 “이 동네 청년들에게 너를 기다리는 맥주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는 대령의 말에 “당장 베트남행 배에 올라 전달하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친구들은 늘 호기롭게 말했지만 결국 이룬 건 없는 치키의 말을 웃어 넘기지만 토미의 엄마만큼은 그의 결정을 믿는다. 늦은 밤 치키를 찾아와 묵주를 전하며 “아들이 참전할 때 주는 걸 깜박했다”며 심금을 울린다. 그 시절 수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아들을 가슴에 묻은 사실을 깨달은 그는 “사망이 아닌 실종상태다. 꼭 찾아 전달하겠다”며 베트남행 보급선에 미련없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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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바(bar) 주인은 맥주를 무상제공하고, 동네를 상징하는 가방에 넣어준다. 몇 개월에 걸쳐 배를 타고 배달에 나선 극중 치키의 모습. (사진제공=애플TV)

 

사실 그 역시 전날 밤의 실언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를 대하는 시선과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도 알아채고 있었다. 그간 치키는 동네에서 허울좋은 청년이었고 늘 방관자에 가까웠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시위를 할 때 시비가 붙는 경우도 있었다. 뉴스에서 내보내는 베트공들의 잔혹함과 야만성을 접한 사람들이 단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후에야 반전을 외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상 최대 맥주배달 작전’의 시작은 사실 미국우월주의다. 스스로 “세계 최고의 맛”이라 자부하는 미국 맥주를 가져다 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기로 하지만 치키의 삶과 관점은 점차 바뀐다. 몇달만에 도착한 베트남에서 선장에게 단 며칠 간의 휴가를 받은 그는 “약속한 시간에 돌아오지 않으면 배는 떠날 것”이란 말에도 걱정하지 않는다. 내리자마자 헌병에서 근무하던 콜린스를 만나 미지근한 맥주여도 전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속도라면 다른 친구들의 위치도 동선만 맞으면 3일만에 끝낼 수 있을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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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임에도 군용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그를 군관계자로 여겼지, 맥주 배달꾼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제공=애플TV)

 

큰 가방에 맥주캔 만을 가득 채운 채 유독 당당하게 구는 치키의 모습에 미국 간부들은 그를 중앙정보국 직원으로 착각한다. 서류는 물론 사전 조율도 없이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에서 도도하게 구는 모습이 CIA요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모습은 민간인. 종군기자들만이 출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이 묵는 호텔에 찾아가 시니컬한 기자 아서(러셀 크로우)의 비웃음을 받는다.

베트콩을 최대한 더 많이 죽여야만 전쟁이 끝날 수 있다고 믿는 치키가 단지 친구들을 위로할 맥주를 들고 최전선까지 온 것에 대해 아서는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알려준다. 미국의 명분 없는 싸움에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고 있음에도 정부가 침묵하고 있고 온갖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음을.

치키의 고생과 갱생은 영화 중반부에 극에 달한다. 아무 것도 모른채 도착한 최전선에서 만난 친구 더건(제이크 피킹)의 비난을 한 몸받는다. 고작 50m도 안되는 곳에 대척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총알을 쏴대는 일상 속에서 그의 눈빛은 유순했던 과거와 달리 살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 곳에 ‘단지’ 맥주배달을 하러 왔다는 친구의 말에 분노하며 치키를 최대한 안전한 곳에 보내려 하지만 귀국선에 오르는 일은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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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들의 횡포가 베트콩의 공격으로 바뀌는 뉴스의 진실을 알게 되는 치키. 아서가 목숨걸고 취재한 것은 결국 누구에 의해 바뀌는것일까. (사진제공=애플TV)

 

그 과정에서 아서는 미국대사관이 공격당하는 순간을 목숨걸고 취재한다. 자국민 보호란 이유로 사이공 일반 시민들까지 무참하게 죽이는 걸 사진기에 담는다. 같이 귀국하자는 치키의 말에 “내가 있을 곳은 바로 이곳”이라며 폭탄이 터지는 곳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은 장엄하기 까지 하다. 러셀 크로우는 이 캐릭터를 통해 조부의 직업을 체험했다며 촬영 내내 감격 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치키는 이름모를 미군의 시체가 성조기에 싸인 관이 가득찬 헬기에 몸을 싣고 귀국한다. 노래잘하는 꽃미남 배우로 치부됐던 잭 애프론의 인생 연기가 담긴 순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베트콩을 헬기에서 밀어버리는 CIA요원의 잔인함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건 ‘지상 최대 맥주배달 작전’만이 가진 전쟁의 민낯은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친구들이 무사히 귀국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 동네 단골바에 모인 순간은 남다른 감동을 안긴다. 맞다. 거짓말 같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다. 미국판 포스터의 사진이자 실제 주인공이 전쟁터에서 찍은 사진은 종군기자가 취재해 전설로 남았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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