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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과학에 미쳐… 선을 넘다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샘 킨 '과학 잔혹사'

입력 2024-05-25 07:00 | 신문게재 2024-05-2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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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어 범죄와 비행을 저지르는 이들이 있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과학을 너무 ‘철저히’ 하려다 도가 지나쳐 과대망상이 되고, 극단적인 경우 ‘미치광이’가 된다고 비판한다. 이 책은 약탈과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흑역사다. 에디슨의 동물학대, 테러리스트가 된 수학자의 사례를 들면서 저자는 궁극적으로 ‘윤리적이고 신뢰성 있는 과학’을 추구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는 특히 ‘지성’과 ‘인성’이 균형을 이루는 과학(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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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샘 킨|해나무

 ◇ 클레오파트라의 어두운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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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에 의하면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상 최초의 비윤리적 과학실험을 설계한 사람이다.

 

역사상 최초의 비윤리적 과학실험을 설계한 사람은 클레오파트라였다고 한다. 자궁 속 아이의 성별을 알 수 있는 시기를 알아보겠다며 여종들을 억지로 임신시킨 후 배를 갈라 확인해 ‘41일’이라는 답을 얻어냈다고 한다. 죄수들에게는 독을 실험하기도 했다고 한다. 훗날 그녀가 자살할 때 독사를 이용했던 것도 그것이 가장 고통이 적은 죽음임을 알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이런 기록들은 그녀에게 적대적이었던 ‘탈무드’에만 남아 있기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무리다. 실험 결과도 이치에 닿지 않는다. 실제로 수태 후 6개월 된 태아의 몸 길이는 1㎝에 불과하다. 생식기 역시 임신 9주 정도는 지나야 생겨, 성별을 알 수 없다. 저자는 클레오파트라가 과연 이 실험을 실제로 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 찰스 다윈의 스승, 하지만 식민지 약탈 해적


윌리엄 댐피어는 근대 일급 항해사이자 당대 최고의 박물학자였다. 수많은 탐사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일주 항해’라는 여행기를 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바나나, 아보카도, 젓가락 등이 그가 만든 단어들이다. 그의 책은 바람과 해류의 과학적 연구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아종(亞種, sub-species)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다윈의 ‘종의 기원’을 있게 했다.

하지만 그는 선상 반란 사태 등에 연루되어 배에서 쫓겨났고, 이후 자메이카 해적의 항해사로 활동하며 해적(海賊)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그가 욕심을 냈던 야외 조사활동은 매우 위험했다. 후대 과학자들이 천연자원을 훔치고 학자로 위장해 남아메리카 등에서 식민지를 약탈한 것은 대부분 댐피어 시대가 만들어낸 유물이다.


◇ 시신도굴, 해부학자들의 위험한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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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수정을 처음 시도했던 외과의사 존 헌터. 하지만 그는 무차별한 해부로 물의를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영국은 불법적인 해부를 금지했다. 대신 해부학자들에게 처형당한 범죄자의 시신 등을 공급했다. 하지만 만성적인 공급 부족 탓에 서로 시신을 차지하려 다퉜고, 그 바람에 아직 심장이 뛰는 사람을 해부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결국 해부학자들이 무덤의 시신을 훔치는 사태까지 생겼다. 이 때 존 헌터라는 경악스러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인공수정을 처음 시도했고, 전기 충격으로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방법을 개척한 뛰어난 외과의사였다. 하지만 그는 시신을 도굴해 해부하길 밥 먹듯이 했다. 사람을 티나지 않게 질식사시켰고, 무연고 시신의 해부를 정당화하기 일쑤였다. 영국 의회는 결국 1832년에 해부법을 통과시켜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이 해부의 대상이 되는 일이 없도록 법제화했다.


◇ 동물학대가 야기한 최초의 전기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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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이 교류 전류의 위험성을 알리려 제작한 전기 의자

 

에디슨의 발명품은 탁월한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돈이 별로 안되는 게 큰 결점이었다. 경이로운 축음기조차 당시엔 장난감으로 사용되었다. 결국 1880년대에 그는 자신이 특허 낸 직류 전기 전선으로 전국을 연결한다는 아이디어를 밀어 부치기로 했다. 하지만 직류는 막대한 선행투자가 필요했다. 몇 블록마다 발전소를 세워야 했다. 구리선도 너무 비싸 채산성이 떨어졌다.


반면에 테슬라가 주도한 교류는 선행투자 비용이 많지 않았다. 구리를 덜 쓰고도 송전 전압을 높이기도 쉬웠다. 화가 난 에디슨은 결국 교류를 ‘공공의 위협’으로 악마화하기에 나섰다. 급기야 개와 말을 전기충격으로 죽이는 실험으로 교류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려 했다. 이는 나중에 사람 대상의 ‘전기 의자’로 발전한다. 그는 결국 ‘전류 전쟁’에서 패배를 인정하게 된다.


◇ 증거조작으로 만든 죄인들


백신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애니 두컨은 마약 시료 판정 작업에서 동료들보다 세 배의 실적을 올렸다. 혼자서 연구소 전체 작업량의 4분의 1을 처리할 정도로 경이로웠다. 그러면서도 1년 만에 하버드에서 화학 석사 학위를 따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제대로 저울로 보정도 않고 시료 실험을 마친 것처럼 속였고, 경찰이 추측해 붙여 보낸 관리카드를 보고는 자신이 시험한 것처럼 그대로 통과시킨 것이다.

승진을 위한 실적 부풀리기 사기 행각은 2009년 대법원이 마약 거래자 소송 시 과학 분석가들의 증인출석을 의무화하면서 들통이 났다. 소송으로 많은 시간을 빼앗겼음에도 그의 실적은 여전히 경이로왔기 때문이었다. 그의 범죄는 무고한 사람들을 교도소로 보내고, 실제 범죄자를 그대로 사회에 내보내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매사추세츠주 의회는 3000만 달러를 투입해야 했다.


◇ 명성에 눈 멀어 얼음송곳으로 뇌 수술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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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도 뇌수술로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믿었던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는 뇌 사진을 찍기 위해 죽은 사체의 머리 속 뇌를 잘라 관찰했다. 마침내 그는 뇌에 연결된 동맥과 정맥 사진을 일부 얻는 데 성공해, 환자의 뇌하수체 근처에 생긴 종양의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 큰 명성을 얻었다. 이에 자신을 따르던 후배 신경학자 월터 프리먼과 함께 정신질환자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극한적인 실험에 나서게 된다.

이들은 전두엽과 변연계 사이의 연결부위를 절단하면 정신질환자의 뇌도 다시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다. 프리먼은 아예 20㎝ 길이의 가느다란 막대를 눈 뒤쪽으로 쑤셔넣어 구멍을 뚫은 후 길고 날카로운 얼음송곳으로 뇌를 파헤쳐 정신질환을 치료했다. 하지만 의료사고가 잇달았고 때 마침 시중에 나온 클로로프로마진 약이 정신질환에 효과를 보이면서 이 극단적 수술법은 철저히 외면받게 된다.


◇ ‘젠더’를 향한 엇나간 의욕


하버드 심리대학원의 존 머니는 ‘양성구유(중성)’가 대부분 완벽한 정상이며, 성 정체성은 개인이 남성·여성 중 어느 쪽으로 느끼느냐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젠더’라는 용어를 만들어 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명성에 취한 탓에 나체주의와 개방 결혼, S&M(가학·피학적 변태 성욕) 같은 도발적 주장을 펼쳤다. 난교 파티를 열고 심지어 의붓 모녀의 관계까지 옹호했다.

그는 모호한 생식기를 가진 중성 아이들에게 성 전환 수술을 강력하게 권했다. 아기 때 잘못된 포경 수술 때문에 남성성을 잃었던 브루스도 성 전환 수술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확실한 남자였던 아이를 여자로 바꾼 사례는 아직 없었다. 수술 후에도 브루스는 여전히 자신을 남자와 동일시했다. 소변도 일부러 서서 했다. 결국 그는 다시 남자가 되는 수술을 받았지만 성 정체성 속에 방황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천재 제자를 천재 범죄자로 키운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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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스승을 만나 천재 학생에서 천재 범죄자로 전락한 시어도어 카진스키.(사진출처=KBS Joy)

 

2차 세계대전 때 스파이를 찾아내는 시스템을 고안해 명성을 떨친 하버드대 심리학자 헨리 머리는 지능지수(IQ) 167의 시어도어 카진스키 등 똑똑한 제자들을 대상으로 가학적인 실험을 자행했다. CIA의 의뢰를 받아 사람들이 고문을 받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탐구했다. 피험자에게는 거짓말로 속였다. 어리고 취약했던 카진스키는 비윤리적인 실험 탓에 나중에 가해자보다 더 극심한 죄를 저지르게 된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졌던 그는 하버드를 졸업하고 버클리에서 수학교수가 되었지만, 학교 밖 세계에서는 천재 범죄자가 되어 ‘유나바머’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머리의 실험으로 누적된 그의 분노는 사람들을 죽이려는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대학과 항공사를 주요 표적으로 해 대규모 살상을 시도했다. 그를 잡기 위해 FBI까지 동원되었고 결국 그는 체포되었다.


◇ 미래의 범죄들

역대로 새로운 과학적 돌파구는 거의 항상 새로운 윤리적 딜레마를 수반해 왔다. 그래서 저자는 ‘많은 사람은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말하지만,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인성이다’라고 말한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상기시킨다. “과학에는 정직과 성실함과 양심적 태도가 중요하다”며 “인성이야말로 과학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보장책”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러면서 “지성과 인성이라는 두 가지 필수적 측면이 미래에도 공존할 수 있을까” 라고 되묻는다. 우주 시대가 되면 완전히 새로운 살인 방법이나 새로운 범죄가 속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컴퓨터 부문은 새로운 범죄가 일어날 또 하나의 광대한 영역이라고 전망한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활용한 대규모 절도범죄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범죄 세계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스마트 기술이나 자동화 기술을 활용해 보안을 무력하게 만드는 범죄가 더욱 고도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공지능이 가장 강력한 기술이라며, 병원에서 종양 사진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로봇을 해킹해 사람을 해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보장도 없다고 경고한다. DNA를 활용해 사람의 비밀을 알아내 범죄에 활용하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유전공학은 그야말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살인을 가능케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예상되는 미래 범죄에 대비해 그런 위험을 완화시킬 도덕적 의무감이 더더욱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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