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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익숙하지만 낯선, 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가는 지금!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Culture Board] 매튜 본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입력 2024-05-08 18:30 | 신문게재 2024-05-0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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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 로미오와 줄리엣 (1) by Johan Persson.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제가 앞으로 선보여야 할 작품으로 자주 언급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꽤 오랫동안 미뤘죠. 오페라, 발레, 영화, 공연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이미 많이 다뤄진 작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는 이 놀라운 프로코피예프 음악을 기반으로 (제 댄스컴퍼니) 뉴 어드벤처스만의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죠.”

세계적인 안무가 매튜 본(Matthew Bourne)의 말처럼 영국 거장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은 다양하게 창작되고 변주되며 소비돼 왔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곳곳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끊임없이 무대에 올려지고 변주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주체가 매튜 본일 때는 좀 다른 기대를 가지게 된다. 

매튜 본 대표사진_Johan Persson
‘로미오와 줄리엣’ 안무가 매튜 본.(사진제공=LG아트센터)

 

“해답은 간단했습니다. 젊은 무용수들, 모든 부문의 젊은 창작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를 만들었죠. 어린 두 남녀가 겪는 궁극의 첫사랑을 그린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젊은 세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재능과 그들의 시각에서 영감을 얻어야 했어요. 새로운 세대를 위한, 또 새로운 세대에 관한 ‘로미오와 줄리엣’이죠.” 

매튜 본은 남성무용수들로만 표트르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의 ‘백조의 호수’(The Swan Lake)를 꾸리고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현대적 뱀파이어 이야기로, 오페라 ‘카르멘’은 자동차 정비소를 배경으로 한 ‘카 맨’으로 변주하는 등 고전을 혁신적으로 재해석하며 명성을 쌓아온 안무가다. 

‘백조의 호수’ ‘카르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비롯한 ‘호두까기 인형’ ‘신데렐라’ ‘레드 슈즈’ 등 고전은 물론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한 ‘가위손’, 뮤지컬 ‘올리버’ ‘메리 포핀스’ 등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영국 최고 권위의 올리비에 어워드 최대 수상자(9회)이자 미국 토니상 최우수 안무가상, 최우수 연출가상 등 40여개의 글로벌 시상식 수상자로 이름이 불렸다.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 A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사진제공=LG아트센터)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를 들어내는 작업”의 연속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5월 8~19일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정수로 여겨지는 시에 가까운 ‘대사’ 보다 음악에 집중한 작품이다. 작곡가 테리 데이비스와 15인조 앙상블이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가 남긴 51개의 오리지널 스코어 중 30곡을 추려 순서를 재배치고 5곡의 신곡을 추가해 변주한다. 


“저에게는 프로코피예프의 믿을 수 없는 악보가 있었어요. 정말 현대적인 영화음악과도 같고 많은 부분에서 환상적인 댄스음악이죠. 그 음악을 대본으로 활용했어요. 셰익스피어의 원작처럼 첫사랑이 서사의 중심이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만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습니다. 현재 혹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결말로 가는 곳곳에 예상치 못한 놀라움이 숨어있죠.”

원작에서 원수 집안의 자녀로 파티에서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졌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문제아’로 낙인찍힌 청소년들을 ‘교정’이라는 명분 아래 감금하는 상상의 공간 ‘베로나 인스티튜트’에서 조우한다. 새하얀 타일로 둘러싸여 경비원들의 규율과 통제가 삼엄한 베로나 인스티튜트에 대해 매튜 본은 “이곳은 소년원일까요? 학교? 감옥? 병원? 아니면 모종의 잔혹한 사회 실험이 자행되고 있는 곳? 이는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뒀다”고 밝혔다.

“공연의 배경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어떤 지점으로 특수한 역사적 배경이나 맥락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 청년들이 갇힌 이유는 그들이 사회가 장려하는 가치에 순응하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전복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정상화’하기 위해 또는 부모에게 창피한 존재여서 그 곳으로 보내진 것은 아닐까요?”

이처럼 상징적인 베로나 인스티튜트를 배경으로 어린 연인의 비극적 로맨스와 더불어 약물중독, 트라우마, 우을증, 학대, 성 정체성 등 현대 젊은 세대가 맞닥뜨린 갈등과 혼란을 담는다. 

매튜 본 로미오와 줄리엣 (1) by Johan Persson.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

 

“뉴 어드벤처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때로 보기 힘든 장면들이 있습니다. 특히 줄리엣의 참혹한 이야기가 그렇죠.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현실과 그 비극적 결과를 직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심각하고 현대적인 주제들을 정직하게 다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죠.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놀랍지 않을 만큼 추하고 유혈이 낭자하고 원초적입니다.”

이는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순정, 극단적 선택, 여성을 대하는 방식 등 지금 시대에 자칫 오해하기 쉬운 이야기의 변주 이유기도 하다. 그가 “그 어떤 버전보다도 비극적이며 어쩌면 원작보다 가슴이 미어질지도 모를” 변주를 통해 “자신 안의 악마와 싸우는 강한 줄리엣, 경험이 부족하고 별난 로미오, 동성 커플, 감정적 깊이가 있는 악당 그리고 폭력과 그 결과에 대한 진실된 묘사”가 탄생했다.

로미오 역의 파리스 피츠패트릭(Paris Fitzpatrick), 로리 맥클로드(Rory MacLeod), 잭슨 피쉬(Jackson Fisch)와 줄리엣 모니크 조나스(Monique Jonas), 브라이어니 페닝턴(Bryony Pennington), 한나 크레머(Hannah Kremer) 등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젊은 무용수들이 대거 발탁됐다. 이에 대해 매튜 본은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듣고 싶었다”며 “오늘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젊은이들만이 가져올 수 있는 에너지와 통찰력을 원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매튜 본 로미오와 줄리엣 (1) by Johan Persson.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

 

매튜 본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이 포함된 ‘발코니 듀엣’과 마지막을 꼽았다. 발코니 듀엣에 대해 매튜 본은 “캐릭터들이 진정한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첫 순간”이라고 전했다. 

“젊은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때는 매우 강렬해요.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 젊은 감정과 흥분을 포착해 관객들이 청소년 시절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를 기억하기를 바랐습니다. 첫사랑은 때때로 어색하고 탐구와 발견의 흥분으로 가득하죠. 서로에게서 한 순간도 손을 떼지 못하고 끝없이 서로를 더듬으며 첫 키스로 나아가잖아요.”

이에 “볼이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는 흔한 방식이 아닌 도전적인 안무를 선보이고자 무용 역사상 가장 긴 키스신을 만들었다”며 “두 사람이 영원히 끝나길 원치 않는 순간, 관객들 모두가 간직한 그런 청춘의 추억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매우 생생하고 충격적인 장면”이라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플롯에 큰 반전을 가미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펼쳐진다. 지극히 현실적이며 깊은 감동을 준다”고 귀띔했다.

매튜 본 로미오와 줄리엣 (1) by Johan Persson.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장면.(사진제공-LG아트센터)

 

익숙한 고전의 재해석으로 무용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데 힘을 쏟아온 그는 “많은 이들이 일종의 비밀 언어를 이해하거나 많은 정보를 미리 읽지 않으면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저의 작업 방식은 사전 지식 없이도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제 일이에요. 관객도 그들의 본능을 믿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은 없어요. 각 개인이 보는 것뿐이죠.”

LG아트센터를 시작으로 부산 드림씨터어(5월 23~26일) 그리고 중국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타이베이, 가오슝 등 투어 후 매튜 본은 여름 뮤지컬 ‘올리버!’의 새로운 프로덕션 연출과 하반기 새로운 캐스트들과 꾸릴 ‘백조의 호수’로 행보를 이어간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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