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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죄수의 딜레마' 겪지 않으려면 PF 부실업체 적시에 정리해야"

[브릿지 초대석]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

입력 2024-05-14 07:00 | 신문게재 2024-05-1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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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초대석]이혁준나이스신용평가금융평가본부장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부동산 PF 부실을 단계적으로 제거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금융회사와 건설사가 증가하겠지만 위기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승적 관점에서 사업성이 그나마 괜찮은 브릿지론에는 본PF 형태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사진=이철준 기자)

 

이달 초순 서울 여의도 나이스신용평가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혁준 나신평 금융평가본부장의 자긍심은 분명했다.

이 본부장은 “국내에는 3개의 신용평가사가 있는데 한국신용평가는 무디스, 한국기업평가는 피치의 자회사다. 국내 자본이 소유한 유일한 신평사는 나이스신용평가”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외국계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다. 국내기업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 자세히 주관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개인신용평가와 기업신용조회 업무를 수행하는 나이스평가정보와 같은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어서 자본시장에서 금융 인프라 그룹으로서 신뢰나 공정성 측면에서 외국계보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브릿지초대석]이혁준나이스신용평가금융평가본부장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이 2일 브릿지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철준 기자)

 

◇높은 상속세율이 기업 밸류 업의 걸림돌


이 본부장은 신용평가사의 경제적 기능에 대해 먼저 투자자를 보호하고, 둘째 채무증권 발행기업의 시장참여를 돕고 셋째 가격결정 기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신용평가사는 신뢰성과 전문성과 중립성을 기반으로 투자자와 채무증권 발행기업간 존재하는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시킴으로써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는데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국내 기업들이 신용등급 상향을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문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어떤 기업이 채무를 적기에 상환할 수 있는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예측가능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신용등급은 채무 적기상환능력의 상대적 서열을 의미하고 높은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이 일관된 경영기조와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정보공개가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 이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신용평가사에게 확신을 줄 수 있다면 신용등급 상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현재 국내 증시의 문제와 관련해선 “보유주식의 시장가치가 올라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대주주가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본부장은 높은 수준의 상속세가 증시 안정화의 한 걸림돌이라고 직격했다. 대주주는 상속세 부담을 줄이려 주가부양에 소극적이고 주주친화경영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완화되지 않으면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이 본부장의 주장이다. 

 

[브릿지초대석]이혁준나이스신용평가금융평가본부장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이 2일 브릿지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철준 기자)

 

◇위기의 부동산PF… 그 원인과 해법은

우리 경제의 난관중 하나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리스크의 원인으로는 영세한 시행사의 과도한 차입금에 의존한 사업 확대, 신NCR(순자본비율·Net Capital Ratio) 자본규제 개편 이후 증권사의 지급보증 급증, 소요기간 4년 내외 부동산개발사업의 자금조달을 만기 수개월 PF ABCP(자산담보부증권)로 수행한 것 등을 짚었다.

해결 방법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유상증자로 유입된 자금과 PF 외 사업부문에서 창출한 이익을 기반으로 사업성이 낮은 사업장부터 단계적으로 부실을 적시에 정리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본부장은 “중장기적으로는 부동산 PF 리스크의 원인인 3가지를 개선해야 한다”며 “첫째는 토지 매입 시 시행사는 5~10%의 자기자본만 투입하고 90~95%를 차입금(브릿지론)에 의존하는 현재 방식보다 시행사의 자기자본 투입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둘째는 지급보증이나 위험투자를 과도하게 허용하는 증권사 신NCR 규제를 좀더 보수적인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며 “셋째로 장기개발사업을 단기자금으로 조달하여 유동성 리스크가 상존하는 현재 자금조달 방식을 운용조달간 기간 미스매치를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본부장은 ‘부동산 PF발 금융·건설 위기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부동산 PF 부실을 단계적으로 제거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금융회사와 건설사가 증가하겠지만 위기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본부장에 따르면 NICE신용평가는 부실화 우려가 높은 증권, 캐피탈, 저축은행 부동산 PF에 대해 시나리오 테스트를 시행한 결과 3개 업종 합계 기준 예상손실을 8.1조~13.8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3개 업종이 2023년말 기준 부동산 PF에 대해 5.1조원의 충당금을 이미 적립해놓은 상태임을 감안하면 추가 적립이 필요한 충당금은 3조~8.7조원 규모다.

그는 다만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사자성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증권, 캐피탈, 저축은행에서 부실이 과도하게 확산되면 은행과 보험업계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감안하면 대승적 관점에서 사업성이 그나마 괜찮은 일부 브릿지론에는 본PF 형태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의 ‘부동산 PF 정상화 방안’과 관련해 이 본부장은 “정부가 그동안 유동성 지원프로그램을 가동하고 PF 대주단 협약을 출범시킨 것은 그만큼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금융회사와 건설사가 부실을 단계적으로 정리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나 금융회사와 건설사는 부실을 정리하지 않고 부동산경기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며 버티기 모드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정부에서 추가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역할은 금융회사가 좀더 적극적으로 부실을 정리하고 사업성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브릿지론 사업장은 본PF로 넘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정부는 지원여력이 우수한 은행과 보험업계에 사업성이 양호한 브릿지론을 인수하도록 유도 중”이라며 “이러한 정부의 방안에 금융회사가 잘 협조해준다면 연착륙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건설사와 금융회사의 도산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해보이는 것에 대해선 “기초체력이 약한 일부 금융회사는 부동산 PF 부실정리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건설사의 경우 대기업은 위험요인이 하나씩 정리되고 있다”며 “태영건설은 워크아웃을 통해 출자전환이 이루어졌고, 롯데건설은 은행권의 자금지원으로 유동성 리스크가 크게 경감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소 건설사의 경우 부도가 더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규모가 작기 때문에 시스템 리스크에 미치는 영향이 작아 정부가 모든 건설사를 구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부동산 PF 리스크가 확산돼도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이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본부장은 한국은행과 NICE신용평가의 상황인식이 유사하다고 피력했다.

[브릿지초대석]이혁준나이스신용평가금융평가본부장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이 브릿지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이철준 기자)

 

◇‘죄수의 딜레마’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이 같은 PF 위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본부장은 “부동산 PF 규제를 너무 강화하면 공급이 위축되고 너무 완화하면 위기가 발생한다”며 “정부는 거시경제, 가계와 기업의 재무상태, 부동산 수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규제 수준을 조율하기 때문에 버블의 발생 가능성은 항상 내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겪고 난 뒤에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금융규제의 역사는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반복이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 과정을 통해 외양간은 점점 튼튼하고 안정적인 모습으로 변해왔다”며 “정부, 금융회사, 건설회사가 이번 PF 위기를 잘 극복하고 더 발전된 시장규율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이 본부장은 부동산 PF위기 상황에서 계속 만기 연장을 하고 있는 일부 금융회사와 건설사들을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현명한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죄수의 딜레마’란 게임이론의 하나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얻게 되고, 서로 협동하는 것이 최선의 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정부에서는 한꺼번에 터뜨리면 망하기 때문에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이라며 “모두가 살려고 하면 모두가 망할 수 있다. 정부는 기다릴 만큼 기다렸기 때문에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무엇이 더 현명한 선택인지 모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불편한 진실이지만 받아들이고, 내가 부실 사업장을 여기서 정리하면 일부 손실이 나겠지만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고, 끝까지 버티면 오히려 전체의 손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13일 금융당국은 ‘부동산PF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이 본부장의 진단과 해법이 상당부분 포함됐다. 정부와 시장의 책임있는 자세가 더욱 요구되는 시기이다.

 

[브릿지초대석]이혁준나이스신용평가금융평가본부장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이 2일 브릿지경제와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철준 기자)

 

◆ 이혁준 본부장은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본부장(1972년생)은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한 후 LG 카드(현 신한카드) 금융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신용정보 평가사업본부(현 NICE 신용평가),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 선임조사역, NICE 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수석연구원·팀장, NICE 홀딩스 전략기획실 팀장, NICE 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 연구위· 실장, 금융감독원 금융지주 사업계획 평가위원, 예금보험공사 저축은행업권 리스크평가 전문위원을 지냈다.

 

다양한 금융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예금보험공사 차등보험료율제 전문위원, 한국주택금융공사 리스크관리자문위원, 한국회계기준원 회계기준자문위원, 한국은행 금융안정포럼 회원 등으로도 활동중이다. 

 

금융위원회위원장 표창 (2023년)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신용평가사가 들려주는 산업이야기 2,3,4(공저)’가 있다.

 

 

대담=명재곤 금융증권부장
정리=최현주 기자 hyunjoo226@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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