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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운명처럼 뮤지컬 ‘일테노레’와 윤이선을 만나다! 서경수 “늘 무대 위 진실된 순간들을 꿈꿔요”

입력 2024-05-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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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테노레 서경수
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

 

“이 작품을 리딩하는 첫날 딱 깨달았어요. 운명이다. 내게 운명 같은 작품이다. 그냥 심장이 요동치고 뭔가 노력하지 않아도 저 밑에서부터 가늠할 수도 없고 형언할 수도 힘들 만큼 어마무시한 것들이 솟구쳤거든요.”

서경수는 뮤지컬 ‘일테노레’(Il Tenore, 5월 19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를 ‘운명’이라고 정의했다. 지난해부터 연습과 12월 초연, 올해 3월 개막한 앙코르 공연까지 1년여를 조선 최초의 성악가 윤이선(홍광호·박은태·서경수)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그는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작품’에 대한 질문에도 “이 작품을 함께 하지 못했다면 ‘일테노레’와 윤이선이 됐을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온몸이 요동치는 음악들로 ‘꿈꾸는 사람들’ 우리처럼!

일테노레 서경수
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

“연습하면서 또 공연하면서 갈고 닦은 걸 얼마나 잘 보여줄까 보다 이 사람들과 다 같이 또 한번 할 수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정말 오랜만에 정적이면서도 유약한, 그를 딛고 성장하는 롤을 맡은 것 같아요.”

뮤지컬 ‘일테노레’는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인 베르디의 ‘춘희’(라 트라비이타)를 비롯해 비제의 ‘카르멘’을 무대에 올린 연출자이자 성악가인 의사 이인선에서 영감받아 꾸린 작품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예술의지로 관통한 이들을 다룬 이 작품에서 그는 이인선을 모티프로 극화한,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윤이선으로 살며 “행복하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행복했고 그만큼 더 아픈 시간들도 있었지만 결국 공연은 사람들과 하는 작업이잖아요. 휴앤윌 작곡가님들이 쓰신 것들을 함께 맞추고 새롭게 만들어내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을 함께 한 이 사람들이 너무 좋아요. 진짜 욕심 부리면 ‘정말 이대로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하게 됐습니다.”

윤이선을 비롯해 대학생들의 항일운동모임인 ‘문학회’ 리더이자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는 독립운동가 서진연(김지현·박지연·홍지희), 건축학도이자 적극적인 독립운동가로 오페라 공연의 무대디자인을 맡은 이수한(전재홍·신성민) 등의 꿈과 사랑 그리고 독립 의지에 대한 이야기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번지점프를 하다’ 등의 작가이자 작곡가 윌 애런슨(Will Aronson)과 작가이자 작사가 박천휴의 콤비작으로 전통 클래식 사운드, 19세기 오페라 미학을 바탕으로 창작한 가상의 오페라 ‘꿈꾸는 사람들’을 만들어 가는 여정을 따른다. 

 

일테노레 서경수
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

 

‘어쩌면 해피엔딩’ ‘데스노트’ ‘신과함께-저승편’ ‘미세스다웃파이어’ 등의 김동연 연출작으로 오페라 아리아를 뮤지컬적으로 재해석하고 고전적인 가사를 붙인 넘버와 음악들이 18인조 대편성 오케스트라 선율에 실린다.

 

“듣는 순간 몸이 요동 쳐요. 그 정도로 음악이 좋아요. 밝은 노래도 슬프고 너무 벅차서 막 소용돌이가 치는 것 같달까요. 뭔가 좀 새롭고 리듬보다는 어떤 선율이 심장을 울리다 보니 연습실에서는 매일이 눈물바다였어요. 인물, 극, 장면 등의 방향성을 형들(홍광호·박은태), 진연들(김지현·박지연·홍지희)과 얘기하면서 ‘너무 사랑해서 말을 못할 만큼’의 감정이 북받쳐서 갑자기 눈물이 막 쏟아지곤 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울컥해요.”

그는 가장 좋아하는 넘버로 “윤이선이 마지막으로 불러주려고 했던 극 중 극인 ‘꿈꾸는 자들’의 맨 마지막 노래와 극을 여는 ‘새로운 세상’”을 꼽으며 “사실 주로 하던 발성이 아니어서 고민이 깊었다”고 토로했다. 

 

일테노레 서경수
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
“그래도 어느 정도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발전 속도가 굉장히 더뎠거든요. 성악 뿐 아니라 해부학적인 레슨까지 좀 다양하게 받았고 지금도 받는 중입니다.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발전하는 느낌을 어느 만큼씩은 받고 있어서 매일 고민하면서도 너무 행복합니다.”


◇“더 이상 못하겠다”는 순간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는 윤이선과도 같았다. 딱히 꿈을 꾸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기 보다는 “무슨 일을 하든 돈을 벌 자신이 있었고 어마무시한 생존본능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절대 굶어 죽지 않아’라는 식으로 그냥 살았다.” 자연스럽게 기회가 돼 발을 들인 뮤지컬 역시 ‘내 꿈이야, 내 길이야’ 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더 이상 (뮤지컬은) 못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가 있었어요. 불과 5년도 안됐어요. ‘썸씽로튼’(2020년, 2021년)을 할 때니까 진짜 최근이죠. 그렇게 마음을 먹고서야 알겠더라고요. 내가 진짜 뮤지컬을 사랑하는 애구나. 진짜 안해야겠다 마음먹었더니 희열에 가득 찬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어요. 내가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얼마나 뮤지컬을 사랑하는지….”

뮤지컬을 그만두고 공부를 더 하겠다는 그를 다시 뮤지컬 무대로 등을 떠민 이는 어머니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완전 달라졌다. 뮤지컬에 대한 사랑을 각인한 그때부터 서경수는 “흐르는 강물, 날리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눈앞에 놓인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에서 어떻게 해야 더 발전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전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일테노레 서경수
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

 

“사실 막 두드리면 깨질까 두려웠는데 그때부터는 하고 싶으면 무조건 들이대자 생각했어요. ‘잃을 게 뭐가 있냐’ ‘창피할 것도 없다’는 마인드가 장착됐달까요. 이전엔 그런 마인드가 100이었다면 지금은 2, 300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윤이선이 처음 오페라를 접했을 때의 감정은 그에게도 오롯이 전달되는 것이었다.

“방어기제가 강하게 발동해 다치고 싶지도, 목매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다가 제가 뮤지컬을 이렇게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되면서 저에게도 (윤이선이 오페라를 처음 접했던) 그런 순간들이 있었거든요. 뭐랄까 전구가 켜지듯 심장에 확 불이 켜지는 그런 순간이요. 그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했죠.”


◇오롯이 사랑, 귀감이 되는 홍광호·박은태, 영감덩어리 서진연들 김지현·박지연·홍지희

일테노레 서경수 홍지희
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왼쪽)와 서진연 홍지희(사진제공=오디컴퍼니)
“제가 윤이선을 연기하면서 중점을 두는 건 오롯이 사랑이에요. 윤이선이 생각하는 서진연에 대한 마음이 어느 정도일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거든요. 표면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사실 오페라죠. 꿈에 대한 이야기고 희망과 간절함, 절실함 등이 표현돼요. 하지만 결국 사랑도 그 꿈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오페라라는 꿈을 더 간절하고 행복하게 꿀 수 있었던 이유는 서진연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순간들이 더 많이 담길 수 있도록 여전히 노력 중”이라는 그는 “홍지희 배우는 가장 단단한 서진연, 박지연 배우는 가장 단단해 보이지만 유약한 면이 많은 서진연 그리고 그 중간이 김지현 배우의 서진연”이라고 표현했다.

“홍지희, 박지연, 김지현, 이 세 서진연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서진연이, 그를 연기하는 세 배우가 제 영감이에요. 영감이 둥둥 떠다녀요. 진짜 살아 있는 영감이죠. 그래서 너무 행복해요.”

그에게도 윤이선의 서진연과도 같은 존재는 있다. 망설임도 없이 “엄마, 형, 형수님, 조카들, 저희 가족”이라 답한 그는 “너무 당연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강조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이들이 없으면 와르르르 무너지잖아요. 그래서 가족은 저의 원동력이자 기둥이자 삶의 바탕이죠. 더불어 친구들, 사람들…제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순간들을 더 나누고 싶어요.”

그는 “윤이선이 극 중에서 형을 그리워하고 우러러 보는 것처럼 저 역시 그렇다”며 “저희 형한테는 다 줄 수 있고 너무너무 사랑하는 존재라 윤이선이 형을 떠올릴 때마다 형과의 순간들이 떠올랐다”고 털어놓았다.

일테노레
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홍광호(왼쪽)와 서진연 김지현(사진제공=오디컴퍼니)

 

“윤이선이 형을 떠올리는 넘버를 부를 때 저에게 형이 없다고 생각하면 더 슬프고 감정이입이 되고 했어요. 저희 형도 공부를 엄청 잘했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했던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부담감에 휩싸여 있거나 압박감을 갖고 막 괴로워한다기 보다는 해낼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저와 저희 형과 같았죠.”

 

윤이선으로 번갈아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박은태와 홍광호에 대해서는 “귀감이 된 존재”라며 “서로 정말 많이 의지하고 도움을 주면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 온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박은태 형님은 제일 통통 튀고 홍강호 형님은 굉장히 무게감이 있고 그 와중에 또 엄청 귀엽기도 해요. 저는 진짜 모르겠어요. 너무 안정적이고 특징있는 두 형님을 보면서 처음엔 ‘망했다’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막연하게 ‘나는 내 색깔이 있어’라고 버티다 깨달았죠. 그냥 주어진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게 아니라 노력의 기준점을 좀 더 높여야 한다는 걸요.”

그렇게 “노력이라는 단어의 기준치를 높여 더 많이 배우고 더 넓게 바라보고 더 많은 걸 습득하면서 차근차근 다시 쌓아가보자 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자존감과 자신감을 되찾았다”며 “결국 사람들을 보고 자극 받아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일테노레
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박은태(오른쪽 아래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서진연 박지연, 이수한 전재훙(사진제공=오디컴퍼니)
“제 주변이 다 그래요. 2, 3년 간 혼자 활동하다 외로울 찰나 저희 (김)준수 대표님이랑 대기실에서 얘기하다가 (팜트리아일랜드에) 소속되면서 더 행복해졌어요. 김준수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고 좋은 사람인가를 알게 됐고 저희 가족들인 (손)준호형, (김)소현·(정)선아 누나, (진)태화형까지.”


◇더 할 나위 없는 지금 “늘 무대 위 진실된 순간들을 꿈꿔요”

“특히 과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물론 그 과거가 제 인생의 영양분이고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하지만 지금에 집중하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니 30% 정도는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끔 미래에 대한 대비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저희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듯 ‘인생은 마라톤’이니까요. 천천히 행복하게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면서 미래를 바라보며 걸어가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행복하다”는 말을 마침표처럼 되뇌던 17년차 배우 서경수는 “지금을 놓칠까봐 과거도, 미래도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최근 몇년 간 TV나 영화, OTT 등 다양한 매체로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배우들이 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뮤지컬에서도 배워야할 게 아직도 많아서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아직도 뮤지컬 오디션을 처음 봤을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거든요. 낯선 환경,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커서 도전하지 못하는 게 커요. 예전처럼 ‘뮤지컬만 할 거야’는 아니에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모르죠. 하지만 전 여전히 무대가 너무 좋아요. 노래도 너무 좋아하고 춤도 너무 좋아하고 연기도 할 수 있고…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하는 것도 너무 좋아요.”

서경수는 ‘일테노레’를 하면서 “어떤 것도 안보려고 한다”며 “보시면서 정말 좋은 작품이다. 그리고 동료들끼리 정말 행복하게 공연하는 게 느껴진다. 그냥 이거면 충분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일테노레 서경수
뮤지컬 ‘일테노레’ 윤이선 역의 서경수(사진제공=오디컴퍼니)

 

“윤이선을 하면서 더 선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윤이선으로 살면서 제 스스로가 믿어지지 않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거든요. 윤이선은 안했을 것 같은 행동들 등에 변화가 생겼죠. 무대 위에서만, 껍데기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진짜 일상에서 변화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무대를 대하는 자세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어떤 무대든 다 똑같다. 진실된 순간이 찾아올 수 있게끔 단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일념 하에 무대에 오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죽을 때까지, 항상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잖아요.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마음을 떨쳐내고 계속 발전해 나가면서 무대 위에 생명력이 존재하게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요. 지금처럼 차츰차츰 성장하면서 동료들과 진실된 순간을 같이 한번 만들어 나가자, 그거면 충분합니다. 더 할 나위가 없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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