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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졸지에' 운전사가 된 첫 날, 진상 아시아 손님을 만났다! 왓챠 '보이'

[#OTT] 왓챠 익스클루시브 '보이', 스페인 영화의 색다른 매력 가득

입력 2024-05-22 18:00 | 신문게재 2024-05-2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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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보이’의 첫 장면. 스페인의 쨍한 햇살을 가리는 암막커튼이 주는 어둠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진제공=Filmax)

 

아마도 언론에서 왓챠 ‘보이’를 소개하는 건 처음일지도 모른다. 스페인 미스터리 스릴러인 이 작품은 오직 왓챠에서만 볼 수 있는데 하물며 최신작도 아니다. 주인공은 스페인에 살며 영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한다. 

이름은 보이(Boi). 소설가 지망생이지만 지금은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수행전문 기사로 일한다. 출근 첫날 만나기로 한 아시아인 바이어 두명은 단단히 화가 나 있다. 회사에서 전달을 잘 못했다는 핑계를 대고 지각을 했을 뿐더러 뭔가 전문적인 느낌도 나지 않는 보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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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인지, 아니면 그저 이름일지 모르는 ‘보이’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Filmax)

그들은 고급차에 전문 기사를 서비스하는 회사를 예약했지만 보이는 그 조건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다행인 건 영어와 중국어를 쓰는 그들이 스페인어 만큼은 모른다는 사실이다. 보이의 고용주는 스피커폰으로 공항에 제 시간에 도착했는지, 주차영수증은 물론이고 머리를 단정히 잘랐는지를 깐깐하게 체크한다.

 

보이는 그 무엇 하나 지키질 못했지만 천연덕스럽게 넘어간다. 영화 초반은 자신을 마이클이라 소개한 손님의 진상짓으로 채워져 있다. 사실 그는 보이가 늦은 것도 뭔가 전문적이지 않은 것도 알고 있다. 

천연덕스럽게 차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영어인 ‘Boy’와 한 글자 차이인 보이의 이름에 집착한다. 어디 사는지와 누구랑 사는지를 캐묻고 뜬금없이 스페인의 실업률까지 묻는다. 게다가 자신도 가보지 못한 최신 호텔을 보고는 “여자 다리와 닮았다”고까지 한다. 예술적 평가가 아니라 뭔가 성희롱적인 의도가 다분하다.

그에 반해 고든은 매사가 무표정하다.  말투는 딱딱하고 지시가 몸에 익은 스타일이다. 스페인 현지 교통 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내려준 곳에 무조건 대기해야 한다고 하질 않나 만나기로 한 동료가 늦자 “당장 깨워서 데리고 오라”고 한다. 

보이에게도 오늘 하루는 최악의 날이다. 임신한 여자친구는 자신을 떠났고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같이 산부인과에 가기로 한날 하필이면 출판사로부터 퇴짜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도 부담백배다. 여자친구는 자신의 뮤즈이자 모든 것이지만 고모와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정을 꾸린다는 건 쉽지 않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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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인종을 나누지 않아도 진상 손님의 전형을 보여주는 극중 고든과 마이클. 결국 세 남자의 로드무비가 영화 주된 스토리다. (사진제공=Filmax)

 

‘보이’는 시종일관 불안하고 처연한 감정을 향해 내달린다. 주인공은 직장 보스가 지적한 길고 긴 머리를 연신 손으로 넘기며 축 쳐진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본다. 고급차를 몰고 반듯한 정장을 입었지만 멋지기보다 불쌍하다. 게다가 첫 손님의 동선은 뭔가 수상하다. IT관련 미팅을 하는가 싶더니 고급 레스토랑에서 퇴짜맞고 갑자기 범죄조직에 쫓기는 식이다.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지만 동시에 경멸의 눈빛을 숨기지 않았던 보이는 점차 변한다. 3일이면 이 곳을 떠날 사람들이고 전혀 공감되지 않는 동양이론을 들먹이지만 측은지심은 통하는 법. 정해진 동선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운전을 하는 보이를 힐난하는 보스의 전화에 “최고의 기사를 보내줘서 고맙다”는 대답으로 실직위기를 벗어나게 해준다. 배우들은 시종일관 죽음과 환생 그리고 인연에 대한 상황에 직면한다. 

알고보니 마이클은 건강염려증이 심한 탓에 쓸데없는 대화로나마 긴장을 풀려는 사람이었다. 고든은 소중한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워커홀릭인 자신을 인정하고 이 참에 일을 줄이기로 했다. 두 사람에게는 찾아야 할 사람이 있었고 그 일만 끝나면 고향인 싱가포르로 돌아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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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기다리는 순간, 주인공이 유일하게 자신을 챙기는 시간이다. 유명 관광지인 배경에서 또다른 수요와 공급이 이뤄짐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한 도시의 민낯을 까발린다. (사진제공=Filmax)

 

무엇보다 ‘보이’는 그다지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잠깐씩 등장하는 고모는 레몬을 사왔는지 타박하고 갑자기 길을 물어보던 여성 운전자가 울음을 터트리는 식이다. 손님들을 태우러 간 클럽에서 갑자기 등장한 앵무새, 자신을 배우라고 소개하는 난쟁이 등 뭔가 ‘할리우드 괴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초창기 작품을 보는듯 난해하다. 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는 이국적인 연출들 그리고 미스터리 장르로서는 훌륭하다.

어느 순간 보이와 손님의 연대를 필두로 결국 여자친구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건지, 그가 키우던 반려견은 진짜 죽은건지 등 각종 궁금증으로 마지막까지 보게 만든다. 결국 모든 게 꿈인가 싶은 모호한 장면도 있지만 이 작품은 관객에게 해석을 맡기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보이는 두번 째 손님이자 유명 건축가인 손님을 태우고 마이클이 말한 호텔이 실제로 출산하는 여성의 피 묻은 다리에서 착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신체야 말로 가장 경이롭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여성 손님의 프랑스어 위로 보이는 건 보이가 다시 적기 시작한 창작 노트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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