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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코멘트]뮤지컬 ‘파가니니’ 콘의 마지막 7분 “그날그날 감정 담은 즉흥 선율”

입력 2024-05-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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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가니니’ 중 니콜라 파가니니 역의 바이올리니스트 콘(사진제공=HJ컬처)

 

“1층에서 ‘악마의 트릴’ 후 ‘라 캄파넬라’가 끝나자마자 밴드 반주가 잦아들면서 바이올린 솔로 즉흥연주가 시작돼요.”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가 실제로 즐겨 연주했던 주세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의 ‘바이올린 소나타 4번 악마의 트릴’(Violin Sonata No.4 ‘Les trilles du diable’)로 시작해 7분간 바이올린 연주가 이어진다.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 ‘악마’의 반영이기도 한 서정적이다 빨라지는 ‘악마의 트릴’ 후 연주되는 파가니니의 대표곡인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와 ‘카프리스 24번’Caprice No.24) 사이에는 다양한 곡과 주법들로 꾸린 즉흥연주가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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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가니니’ 중 니콜라 파가니니 역의 바이올리니스트 콘(사진제공=HJ컬처)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렸던 파가니니(콘·홍석기·홍주찬,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 ‘파가니니’(Paganini, 6월 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는 마지막 이 연주가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을 관통하는 “그 누구도 아닌 파가니니로 살겠다”는 의지와 “잊으셨나본데 난 파가니니입니다”라는 자긍심이 응축된 이 장면은 파가니니의 여러 가지 연주기법과 스타일의 음악을 통해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 역시 다양하게 해석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구성됐다.

 

그 중 즉흥연주는 2019년 초연 당시 50회를 혼자 소화했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뮤지컬 배우 콘(KoN, 본명 이일근)이 자처한 콘셉트다.

“파가니니가 살던 시기에 클래식 아티스트들은 즉흥연주를 즐겨했어요.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그랬죠. 그를 오마주해 바치는 뜻으로 즉흥연주를 넣었어요. 뮤지컬은 N차 관람도 많아서 즉흥연주는 유일무이, 휘발되는 단 한번의 그 연주가 그날의 공연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매회 바꾸겠다고 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죠.”

이어 “클래식 음악사에서는 작곡가가 포커스냐, 연주자가 포커스냐를 두고 벌이는 파워게임이 계속 됐다”며 “연주자에 포커스를 둔 게 재즈다. 악보에 별 게 없고 연주자의 즉흥이 중요한 장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클래식은 학문화가 잘된, 작곡가에 포커스를 둔 음악이죠.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하게 구현하는 연주자가 대단하다고 평가받았지만 비르투오소(Virtuoso) 시대에는 연주자들이 그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어요. 파가니니는 그런 비르투오소 시대를 연 선지자죠.”

실제로 협주곡 내 ‘카덴차’(Cadenza 악곡이나 악장의 마침 직전에 연주자의 기교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구성된 화려하고 자유스런 무반주 부분)에서 특정 악장의 머티리얼(Material)을 가지고 연주자의 기량을 발휘하기도 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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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가니니’ 중 니콜라 파가니니 역의 바이올리니스트 콘(사진제공=HJ컬처)

 

“실제로 파가니니가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유럽 곳곳에서 연주할 때 대부분이 무반주였어요. 기타나 피아노처럼 화성악기가 아닌 선율악기 바이올린으로 무반주 연주 뿐 아니라 동물소리 등을 내기도 했죠. 그때 공연을 본 사람의 ‘바이올린 한대로 오케스트라 소리를 냈다’는 후기가 남아있을 정도로 대단한 연주였어요. 저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재즈, 집시, 포크, 현대음악, 전자 바이올린 등까지 아우르면서 즉흥연주에 익숙해요. 그 경험이 이 작품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죠.”

 

주법적 측면에서도 클래식 뿐 아니라 재즈·집시·포크·탱고 기법, 현대음악의 음향적 변주까지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그는 “클래식에서는 잘 안쓰는, 두드리거나 뜯는 연주법을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운용 중”이라고 밝혔다.

“파가니니는 당연히 악마가 아니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루치오 아모스(김경수·백인태·윤형렬)나 콜랭 보네스(이준혁·기세중·김준영)를 비롯해 사람들이 그의 연주를 듣다가 ‘파가니니가 악마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노래 가사 중 ‘찢어지는 선율’처럼 틀에서 벗어나는 거칠고 기괴하거나 그로테스크한 사운드를 일부러 넣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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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가니니’ 중 니콜라 파가니니 역의 바이올리니스트 콘(사진제공=HJ컬처)

‘록클래식’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록비트랑 어우러지는 음악적 시너지를 내기 위해 좀더 과격한 연주로 임팩트를 줄 때도 있다.”

 

활을 일부러 세게 누르거나 동작을 크게 하는 등 현대음악, 집시, 재즈, 일렉트로닉 바이올린 등 클래식 외적인 데서 체득한 테크닉들은 “파가니니는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헝가리 길거리에서 집시들이랑 즉흥으로 연주하며 놀다 보면 소리는 분명 거칠어요. 그럼에도 오히려 감정에 호소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클래식이 은유법이라면 집시나 재즈는 직설화법이 매력적이죠. 이 즉흥연주가 정말 좋은 건 배우로서 쌓아가던 감정들을 그날그날 전혀 다르게 담을 수 있다는 거예요. 재즈나 집시 쪽 즉흥연주보다 뮤지컬을 할 때 감정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거든요.”

그 다채로운 마음에 입각한 7분 남짓의 연주는 파가니니 역할의 의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콘은 “7, 8분 연주하고 나면 혈액이 몰려서 팔이 엄청 부풀어 오른다”며 “1막에서 한줄로 연주할 때는 우아한 연미복을 입지만 즉흥연주에서 팔이 조이지 않는 베스트를 입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 즉흥연주는 바이올린 연주로 대사를 치고 노래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봐라! 이게 내 음악이다’ ‘내가 악마인지 아닌지 들어 봐!’ 등 독백도 하고 노래도 하고 마음을 담아 표현하고 있거든요.”

어떤 때는 슬픔이, 또 어느 회차는 억울함이 커 그 감정을 마지막 7분 중 즉흥연주에 녹여내기도 한다. 그는 “어떤 날은 샬롯 드 베르니에(성민재·유소리)가 너무 눈에 밟혀서 그의 솔로 넘버를 머티리얼로 삼아 변주하기도 한다”며 “또 어떤 때는 ‘난 살고 싶어’가 마음에 깊이 남아 파가니니 솔로 넘버를 변주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극 초 술집을 뛰어다닐 때 했던 ‘악마의 트릴’을 두배 빠르게 변형하거나 이 작품에 나오진 않지만 파가니니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가져오기도 해요. 예를 들어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나단조’ 1, 2악장이요. ‘라 캄파넬라’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나단조’ 마지막 론도 악장의 주제를 기반으로 해요. ‘바이올린 협주곡 2번’ 1악장은 오디션 볼 때 짧게 불리기도 하죠. 이 사실을 아는 분들은 반가울 거고 또 몰라도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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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가니니’ 중 니콜라 파가니니 역의 바이올리니스트 콘(사진제공=HJ컬처)

 

때로는 멜로딕하게 시작해 변주하기도 하고 활로 둥둥치기도 하는가 하면 오디션 장면의 새소리, 고양이소리, 황소소리를 차용해 즉흥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그는 “오디션을 보면서 샬롯에게 황소소리를 시키는데 저음을 글리산도(Glissando, 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를 급속한 음계에 의해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방법)로 표현한다. 그걸 즉흥으로 가져와 느리고 진한 글리산도를 여러 개 반복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때로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등 파가니니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후대 작곡가들의 레퍼토리를 따오기도 한다.

“즉흥연주는 파가니니, 더불어 파가니니를 연기하는 제 마음 속에 가진 것들을 보여주는 장면같아요. 하면할수록 소재가 고갈되기 보다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죠. 100번이든 1000번이든 새로운 즉흥연주를 선보일 자신있어요. 극 중 ‘잊으셨나본데 난 파가니니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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