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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전통과 현대 창작의 공존, 극과 극의 ‘일무’…“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간다면…”

입력 2022-05-1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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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일무’ 연습실 공개 현장(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의 궁궐에서 거행되는) 종묘제례악 현장에 간다면 현대인으로서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전통 동작들을 짜온 것 같아요.”

11일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무용단 연습실에서 진행된 연습실 공개에서 시연된 ‘일무’(佾舞, 5월 19~2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 전통 그대로인 1막과 현대화해 창작무로 변주한 3막 2장에 대해 음악까지 담당한 김재덕 안무가는 이렇게 말했다.

‘일무’는 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에 포함된 무용으로 역대 왕들의 문(文)·무(武)덕德)을 기리는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로 구성된다. 홍주의(紅周衣). 남사대(藍紗帶, 남색의 사로 만든 허리띠), 목화(木靴)를 갖추고 문무는 진현관(進賢冠)을 쓰고 왼손에 약(약, 황죽으로 만든 구멍이 셋인 악기), 오른손에 적(翟, 나무에 꿩 털로 장식한 무구)을, 무무는 피변관(皮辨冠)을 쓰고 간(干, 방패)과 척(戚, 도끼) 혹은 목검을 들고 춤을 춘다.

‘일무연구’ ‘궁중무연구’ ‘신일무’ 3막으로 구성된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국립극장의 ‘묵향’, 정동국립극장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 등의 정구호 연출,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 그리고 현대무용가 김성훈·김재덕 등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1, 2막은 한국 전통춤을 온전히 구현하고 3막은 김성훈·김재덕 안무가와 정혜진 단장이 현대적으로 공동창작한다.


◇김재덕 안무가 “지금의 유명가수들이 국회의사당 혹은 청와대에서 춤추는 걸 상상했죠”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일무’ 연습실 공개 현장(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김재덕 안무가의 설명에 따르면 “각 막은 전통춤의 재현과 현대적 재해석이 공존한다.” 1, 2막, 3막 1장과는 달리 3막 2장은 빠른 속도로 전통 무용 동작들이 구현되는데 이에 대해 김재덕 안무가는 “현대에 맞게 유명가수들이 국회의사당 혹은 청와대에서 춤추는 걸 상상했다”고 털어놓았다.

“일무는 문관과 무관들이 추는 춤으로 지금의 경호원, 경찰, 군대, 행정관 등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되게 간단했어요. 그들과 옛날 문무관의 사고는 어땠을까, 지키는 것과 힘이 아니었을까, 힘이 좋으려면 스피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식으로 접근했죠.”

이어 “연습실 공개에서 시연된 3막 2장만 빠르다”며 “1, 2막은 느릿느릿하고 3막 1장은 오히려 절제해 심심한 듯 천천히 끌어올리는 맛이 있다”고 덧붙였다.

“3막도 계속 동적이기만 한 건 아니에요. 1장은 카운트를 크고 느리게 하지만 힘 있게 쓰면서 절제해요. 2장을 위한 준비를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민속적 흥을 더 냈다고 볼 수 있어요. 3막 2장에서 속도가 빨라지다 보니 훈련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고 동작이 단순화되기도 했죠.”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일무’ 연습실 공개 현장(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그리곤 “제일 어려웠던 건 소통이었다”며 “전통 무용을 바탕으로 하는 (서울시무용단) 단원분들과 현대무용하는 제가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다.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마저 달라서 몸으로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 안돼서 몸의 피로도가 좀 높았다”고 말을 보탰다.

3막의 안무 뿐 아니라 음악까지 책임진 김재덕 안무가는 음악에 대해 “미니멀리즘”이라 정의하며 “편경, 어(어, 호랑이 모양으로 음악의 종지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목부에 속하는 체명악기)를 현대화해 믹싱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대나무로 세번 치고 등을 긁는 소리를 리듬화해 드럼의 하이햇 같은 사운드로 만들었어요. 태평소, 피리 등 고음을 내는 악기들은 소리를 빼거나 아예 깎아서 부드럽게 들리도록 했죠. 더불어 콘트라베이스를 많이 사용했어요. 어떻게 전통적으로 현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저음을 깎고 이퀄라이저를 활용해 아쟁이 아닌데 아쟁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 사용했죠.”


◇어쩌면 이 시대에 필요한 정신 ‘일무’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일무’ 연습실 공개 현장(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목표는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지 일무의 재현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공연 자체로 완성도를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관객에게 제대로 감동을 주고 일정 정도라도 공감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죠.”

‘일무’에 대해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전통 ‘일무’를 재현한다는 선입견을 갖게 하는 제목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정구호 연출은 “일무가 종묘제례악에 쓰여서 제사를 지내는 춤으로 돼 있지만 세종 때는 연희이기도 했다. 제사를 지내는 게 아니라 연희적 측면을 강조했다”고 강조했다.

“종묘제례는 밀도 있는 움직임과 반복 동작이 많아 지금 관객들에게 이 시대 춤으로 보여드리기는 어렵죠. 그래서 연희적인 에너지, 템포, 방향 등이 변형됩니다. 일무의 정해진 동작들을 유지하면서 좀 더 액티브하게 속도 밸런스를 맞췄죠. 합을 이루고 획일적으로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 시대에 필요한 정신이고 부합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 3막에서 합하고 에너지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죠.”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일무’ 연습실 공개 현장(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김성호 안무가는 “1, 2, 3단계로 나뉘어 움직임의 발전이 있다. 처음 전통 무용을 봤을 때는 답답하고 이해가 안가고 지겨운 부분도 있었다”며 “하지만 체험하면서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는) 움직임들을 현대화하면서 큰 움직임은 작게, 작은 건 크게, 직선은 곡선으로, 느린 건 빠르게 바꿨습니다. (전통 일무는) 바닥에 내려가지 않고 스탠딩이 대부분인데 역으로 바닥에 누워서 하면 어떨까 싶었죠. 중요한 건 춤의 언어예요. 이 춤과 저 춤이 만나면 어떨지, 융합적인 부분을 고려해 안무했습니다.”

정구호 연출은 의상에 대해 “1, 2막은 전통의상을 고수하려고 노력했다”며 “정해진 틀 안에서의 색 변화 등으로 주어진 맥락을 흐트러트리고 재조합했다”고 설명했다.

“예전의 종묘제례악은 실제 마당에서 가깝게 보는 행사였지만 현대에는 무대에 올려져 멀리 떨어져 관람하게 됐죠. 이에 춤의 디테일이 잘 보이게 하기 위해 관(冠, 모자)을 과장하는 식으로 변화를 줬어요. 3막의 의상도 현대의상처럼 보이지만 한복 속에 입는 고쟁이 바지가 모티프죠. 더불어 상하의 보색대비로 색을 분리해 현대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서울시무용단 일무
서울시무용단 ‘일무’ 연습실 공개 현장(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정구호 연출은 무대에 대해서는 “안무과 구성이 너무 꽉차 있어서 제가 했던 그 동안의 작품 중 가장 미니멀한 무대를 보실 수 있을 것”이라며 “1막에서는 선 몇개, 2막은 원 몇개, 3막은 여러 개의 선으로 액티브한 무대를 연출한다”고 귀띔했다.

“이번 ‘일무’는 다른 차원의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통 무용문법을 잘 아는 정혜진 단장님과 현대적 무용문법을 잘 아는 김재덕·김성호 안무가가 하나의 주제를 엮어 내 승부해야하는 작품이죠. 작품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정혜진 단장은 “일무는 밀도 있는 동작의 합이다. 무용수들이 하나로 똑같이 가는 게 일무에서 보여주는 정신”이라며 “현대화하더라도 똑같이 합을 이루는 동작구현을 통한 통일성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보탰다.

“이 시대에 맞는 춤의 언어들, 다양한 춤의 언어들이 합을 이룹니다. 전통이든 컨템포러리든 언어는 다양해도 보여주려는 건 하나죠. 혼돈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며 자신의 할 일을 하다보면 결국 그 마음들이 하나가 돼 하늘을 감동시키고 행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일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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