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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룰루레몬 스토리> 칩 윌슨

입력 2022-06-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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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레몬의 창업자 칩 윌슨이 직접 쓴 자기 비판서다. 가장 혁신적인 기업이던 룰루레몬이 어떻게 그저 그런 회사로 떨어졌는지를 창업자의 시각에서 분석했다. 그는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한 것이 악몽의 시작이었다고 토로한다. 기업의 이익보다 개인의 발전을 우선시하는 실험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창출하는 회사를 만들었지만, 성장 과정에서 놓쳐버린 정체성 등 많은 부분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책 곳곳에 베어 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룰루레몬의 경영인은 아니지만 여전히 개인 최대주주로 쓴 소리를 한다. 어찌 보면 기업 경영의 주도권을 잃은 창업자의 넋두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 ‘나만의 행로’ 찾아가기 - 칩 윌슨은 어릴 때부터 자립심을 키워준 부모들 덕분에 늘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려 노력했다. 어린 시절 경험에서 그는 과거 경험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터득해 직원들에게 창의력을 키워줄 훈련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아버지 말에 ‘마음 챙김’에 관한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생의 의미는 순간을 사는 것’이라는 구절을 ‘룰루레몬 매니페스토(공약)’의 핵심으로 삼게 된다.

 

* 기능성 의류 필요성을 알게 해 준 ‘철인 3종 경기’ - 1980년 여름 무렵 칩은 철인 3종 경기에 몰두하게 된다. 몸에서 염분이 배출되어 흐르고 운동복 안쪽 실밥이 터지거나 솔기에 피부가 긁히는 고통으로 경기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그는 이 때 기능성 의류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허벅지 안쪽이나 팔 아래쪽에 솔기가 없는 라이크 재질의 옷을 디자인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철인 3종 경기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려면 8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지만 당시 고품질의 기능성 의류를 디자인하고 만들면서 느꼈던 창의적 성취감과 만족감은 훗날 웨스트비치와 룰루레몬의 역사로 이어진다.

 

* 웨스트비치를 창업하다 - 1982년 칩은 웨스트비치 매장을 정식 오픈 했다. 이때 그는 남성의류 업계의 큰 변화 가능성을  인식한다. 당시 남성용 쇼츠는 안쪽 솔기가 3인치 이하라 몸에 꽉 끼는 편이었다. 칩은 그 길이가 9~10인치 되는 헐렁한 쇼츠를 만들었다. 선수 체형에 맞게 최적화되어 전문가 수준으로 특별 제작된 쇼츠는 큰 인기를 끌었다. 서핑 스타일 쇼츠 시장의 가능성이 확인한 그는 이후 디자인 개선을 거듭해 움직임이 불편하지 않은 제품을 속속 만들어 낸다. 기장도 길고 품도 넉넉한 그의 쇼츠는 마침내 그가 자신만의 독보적인 분야를 구축케 만들었다.

 

* 스케이트 보드부터 스노 보드까지 - 1980년대 중반에 북미 전역에 스케이트 보드장이 등장했다. 서핑처럼 스케이트보드 역시 넉넉하고 헐렁한 옷이 필요했다. 칩은 이 스포츠의 시장 가능성을 확신했다. 웨스트비치는 당시 캐나다의 유일한 서핑 및 스케이트보드 매장이었기에 곧 시장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다. 이 때 그는 다음 유행이 스노 보드가 될 것이라 확신하게 된다. 1988년에 들면서 스노 보드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그가 소재한 캐나다 밴쿠버는 스노 보드의 최고 명소가 될 곳이었다. 회사명도 웨스트비치스노보드로 바꾸고 14세 아이를 포함한 엄청난 수요에 대응했다. 봄 여름에는 서핑과 스케이트보드 관련제품을 팔고 가을과 겨울에는 스노 보드 제품을 팔며 승승장구했다.

 

* 홀 세일보다 직영 소매판매 - 칩은 직영매장 영업이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는 모델이라고 자평한다. 직영점과 자체 생산 방식의 경제적 이점이 컸다. 모든 중간 마진을 없애고 더 나은 가격과 품질의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버티컬 리테일 영업방식을 늘 고수했다. 홀 세일 영업은 물건 생산 후 현금 회수까지 너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특히 고객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기술적인 부분에까지 과감히 투자할 수 없었다. 주도권을 자신이 갖지 못한다는 점도 걸렸다. 안정적인 매출은 보장할 수 있겠지만. 디자인이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칩은 룰루레몬을 구매자 중심이 아닌, 디자이너 중심 회사로 만들고 싶어했다.

 

* 스타 보다 유망주를 지원하다 - 대형 보드 제조업체들이 큰 대회에서 자사 스노보드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스타급 보드 선수에게 거액을 지원하던 것과 달리, 칩은 아직 기업 후원을 받기 어렵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지역 유망주 5명을 발굴해 도움을 주었다. 불필요한 이벤트는 줄이고 실질적인 후원을 한 덕분에 198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첫 금메달 리스트가 배출되기도 했다. 칩은 대신에 이 선수들을 통해 자신의 기능성 스포츠 의류를 시험했다. 14~16세로 구성된 스노보드팀에 제품을 입혀보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반영한 ‘슈퍼 뚱뚱이’ 옷을 만들어 새 스노 보드 의류를 재창조하기도 했다.

 

* 18년에 걸친 MBA 경험 - 1995년 중국 생산공장에서 500만 달러 어치 스노 보드 재킷 생산을 주문했는데 지퍼가 부족했다. 공급업체에 3만 달러 어치 지퍼를 외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 문의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은행도 회사를 부도직전 상황으로 판단했다. 이 때 머컨타일 뱅콥이라는 사모펀드 회사가 지분 30%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선임한 인물들로 이사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고, 칩은 웨스트비치 CEO 직함을 내려놓는다. 18년 동안 버티컬 리테일 체제를 고집하며 지낸 이 기간을 그는 스스로 ‘18년 간의 MBA 과정’이라고 부른다.

 

* 정신적 자양분 ‘랜드마크 포럼’ - 1990년 초 칩은 주말 워크숍 프로그램인 ‘랜드마크 포럼’에 푹 빠지게 된다. 그는 이 포럼을 통해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마음 속에서 사실로 자리잡고 있던 것들이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라 최선의 추측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거짓말을 하고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습관적으로 불평하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회피하고, 타인을 의식해 사실과 다르게 행동하는 등 자기 머릿속에 나쁜 바이러스가 기생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삶을 살게 된다. 칩은 랜드마크 포럼이 웨스트비치를 구했다며, 이 포럼이 의사소통을 도와주고 문제의 해결책에 주목하도록 초점을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말한다.   

 

* 전봇대에 붙은 요가 홍보물 - 칩은 우연히 전봇대에 붙은 요가 수업 포스터를 보게 된다. 피오나 스탕이라는 강사에게 요가를 배우면서 그는 요가가 거대한 유행의 중심에 서게 될 것으로 보고 요가용 기능성 의류를 추진하게 된다. 당시 요가복은 땀에 젖고 헐렁한 면 소재에 원단이 얇고 특히 요가 전문가에게나 어울리는 제품이었다. 칩은 속이 비치고 특히 중요 부근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는 문제를 해결해 완벽한 여성용 요가복을 만들어 냈다. 인조섬유가 아닌 면 느낌의 기능성 원단으로 습기를 흡수하고, 냄새를 막는 기능을 추가해 세상에 없던 요가팬츠를 선보였다. 칩은 여성을 위한 아름다운 기능성 운동복을 충분히 제값 받고 팔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 여성을 겨냥한 ‘룰루레몬 에슬레티카’ - 칩은 출산율이 낮아지고 첫 아이를 낳는 연령대가 높아질 것을 예상했다. 24세 이상 35세 이하의 미혼, 혹은 출산 경험이 없는, 교육 수준이 높고 미디어에 정통하고, 건강과 운동에 관심 많은 전문직 여성그룹의 탄생을 예측한 것이다. 여행을 즐기고 8만 달러 이상 연봉을 받고 패션 감각까지 있는 여성들,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원하는 이런 여성들을 그는 ‘슈퍼걸(Super Girl)’이라고 이름 붙였다.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에게 상징이 될 슈퍼 걸을 겨냥해 여성 이미지와 품질에 더해 미적인 요소까지 탁월한 제품을 만드는 게 그의 사명이 되었다. 기존 요가복보다 3배나 비싸지만 최고 품질을 지닌 칩의 제품은 대박을 쳤다. 특히 체형에 맞춰 즉석 수선 서비스까지 해 주어 인기를 끌었다.

 

* 기능성 매장과 ‘에듀케이터’ - 칩은 멋진 부티크 같은 느낌의 콘셉트 전시매장을 꾸몄다. 고객들이 디자인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외관이나 색상보다 철저하게 기능성을 중시했다. 매장에서 직접 요가 수업도 진행했다. 강사들에게 제품을 시험 평가해 달라고 해 그들의 의견을 제품에 반영했다. 그렇게 룰루레몬은 전문 요가인들이 보증하는 브랜드의 반열에 오른다. 칩이 디자인 만큼이나 역점을 둔 것은 매장 직원들이었다. 말로 하는 패션 영업보다 그는 매장 직원들이 고객을 교육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울리는 의류를 권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운동과 건강 정보까지 제공하는 직원. 그는 이들을 ‘에듀케이터’라 불렀다. 이들은 고객이 제품 앞에서 6초 쯤 머물면 13초 안에 해당 품목 정보를 요약해 고객에게 얘기할 실력을 갖추도록 했다.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대졸 이상 여성들을 채용해 그런 역할을 맡겼다. 

 

* 나이키를 경쟁상대로 삼다 - 칩의 첫 번째 사업 목표는 단독 매장이었다. 두 번째는 매장을 5개로 늘려 매출을 높이고 대량 판매와 대량 생산으로 생산단가를 낮추는 것, 세 번째는 100만 배는 더 큰 가치를 지닌 나이키와 경쟁하는 것이었다. 성장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나이키 같은 초대형 기업이 비슷한 제품을 개발해 폐업으로 몰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나이키는 룰루레몬을 연구하고 매장을 파악하려 별도 분석팀을 운영했다. 2001년 중반에 칩은 직원들에게 “이제 우리의 경쟁상대는 나이키”라고 선언했다. 당시 회사 연 매출은 고작 400만 달러였다. 하지만 그에겐 더 나은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이 있었다. 나이키가 공략하기 힘든 여성시장을 선점한 덕분이었다. 그는 ‘룰루레몬만의 고급스러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 룰루레몬의 매니페스토 - 1998년에 칩은 30분쯤 걸려서 ‘룰루레몬 매니페스토’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매장 계산대 옆에 붙였다가 아예 쇼핑백 겉면에 인쇄해 배포했다. 첫 문장은 ‘콜라는 광고를 통해 멋지게 포장된 또 다른 값싼 마약일 뿐이다’였다. ‘가능하면 신선한 물을 많이 마셔라’, ’요가를 수련하라‘ 같은 홍보 성격의 문구도 담았다. 이 밖에도 ‘매일 한가지씩 스스로 놀랄 만한 일을 하라’, ‘성공은 좌절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하루에 한번 씩 땀을 흘려라’, ‘친구는 돈보다 중요하다’, ‘지금 바로 시작하라’, ‘아이들은 인생의 오르가즘이다’ 등이 있었다. 콜라는 마약이라는 표현과 아이는 인생의 오르가즘이라는 문구는 나중에 크고 작은 분란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 확실한 ‘카테고리 킬러’ - 칩은 미국 시장에서의 룰루레몬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로 ‘카테고리 킬러’를 강조한다. 고객이 찾는 거의 유일한 회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객 기호에 맞춰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한 독특한 제품 구색도 일조했다. 요가 팬츠 한 벌에 90~100 달러를 지불할 수 있는 여성을 공략한 덕분이었다. 이 즈음 칩은 요가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할 또 다른 제품으로 요가 매트를 선택한다. 매트를 원가로 팔아 더 많은 사람이 매장으로 들어온다면 옷을 더 많이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산공장을 알아내기 위해 늦은 밤 매트 납품업체 주변의 쓰레기통을 뒤져 아시아 생산 공장 주소가 인쇄된 판지 포장을 찾아내 직거래를 성사시켰다. 옷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을 작은 조각으로 자르고 재봉질로 이어 모자나 헤어 밴드도 만들었다. 헤어 밴드는 자신을 돋보이고 싶어하는 어린 소녀들에게 베스트셀러 인기상품이 되었다.

 

* 거듭되는 매각 제안 - 직영체제를 갖춘 빅토리아 시크릿이 룰루레몬 지분 매수를 제의해 왔다. 2억 달러를 제시한 갭 등 큰 상장기업이나 사모펀드 회사들의 제안이 잇달았다. 칩은 대형 투자나 거래를 책임지고 수행하기에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기업 금융이나 세무 업무에 취약했고, 협상력도 탁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제 값 받고 파는 데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지만 경영자로서 한계를 느낀 것이다. 부동산의 가치를 뒤늦게 인식한 그는 2005년 부터 미국 부동산에 대한 전문지식과 세계적 수준의 고위 임원을 영입할 능력을 가진 사모 펀드 투자자를 찾기 시작했다. 투자 금액보다 기업문화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었다. 그러다 보스톤에 연고를 둔 어드벤트 인터내셔널을 만나게 된다.

 

* 사모펀드와 잡은 불행한 맞손 - 어드벤트는 룰루레몬 상장까지 4~5년은 더 필요하다며 오래 같이 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룰루레몬의 가치도 2억 2500만 달러 정도로 평가했다. 하지만 나중에 2억 달러로 평가액을 낮췄다. 특히 지분의 51%를 원했다. 경영권을 가지려 했던 것이다. 그들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칩은 협상력이나 정보 모두 약했다. 결국 2억 달러로 투자규모를 줄이고 지분의 48%를 매각하되 칩이 지배주주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최종 합의했다. 그러나 막상 이사회를 꾸리고 전문경영인이 취임하면서 많은 것이 틀어지게 된다. 신입 임원들은 전문가 수준으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고, 결국 단기 이익을 최우선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 흔들리는 지배주주권 - 그들은 이사회에서 칩의 인맥을 정리할 셈이었다. 그리고 상장 전에 칩이 가진 생산 하청업체 지분의 50%를 매각하라고 요구했다. 수직적 생산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그들은 공장의 지배권을 대주주가 가진 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 사정에 밝은 변호사로 회사 법무 책임자를 교체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매니페스토 첫 번째 조항인 콜라 관련 문구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두 명의 CEO를 거치면서 룰루레몬의 정체성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들은 회사의 통제력과 장악력 확보를 위해 움직였다. 특히 첫 CEO 밥 미어스는 단기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회사의 겉모습을 멋지게 치장하는 기술을 제대로 가르쳤다고 칩은 술회한다. 그는 너무 순진했다. 

 

* 사모펀드와의 거래에서 얻는 아픈 교훈 - 칩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모펀드와 거래할 때 주의점을 얘기한다. 중개인은 제 이익을 위해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최소한 노련한 조언자 3명을 확보해 가능하면 매일 이야기를 나누라고 조언한다. 계약이 최종 타결이 되기 전까지는 계속 두 개 이상의 사모펀드를 경합시키라고 권한다. 사모펀드가 4년, 7년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함께 하겠다고 말해도 믿지 말라고 말한다. 사모펀드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일할 뿐이라는 것이다. 실사도 최종시한을 정해 압박하라고 조언한다. 사모펀드가 떠난 후에 회사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시나리오도 미리 준비하라고 강조한다. 특히 “이사회에서 이뤄지는 표결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면 회사의 지분 51%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아픈 경험담이다. 

 

* 상장을 통해 얻은 교훈들 - 2007년 7월 27일 룰루레몬은 당초 예정보다 훨씬 빨리 상장한다. 칩은 상장 시 회사 주식의 10%를 직원들에게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타임 스퀘어의 전자 광고판에 매장 직원들의 사진까지 띄웠다. 칩은 그러나 상장 과정에서의 아픈 경험들을 떠올리며, 장차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교훈을 제시한다. 우선, 이사를 선임할 때 그에게 회사의 성장 단계별로 어떤 유형의 CEO가 필요한지 설명할 것을 요구해 보라고 권한다. 자신의 뜻을 반영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사모펀드 쪽의 이사회 개입을 최대한 막으라고 조언한다. 창업자에게 이사회 의장 직함을 주는 것은 말장난이나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CEO가 설립자와 기업 비전이나 시각이 다르면 CEO가 사외이사를 규합해 설립자를 소외시켜 이사회를 분열시키고 사실상 회사를 장악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 이사회와의 마찰 - 2011년 룰루레몬은 거의 10억 달러의 이익을 냈다. 칩은 대만 직물업체인 에클랏에 투자해 50% 지분을 확보하면 기능성 원단 시장에서 확고한 방어벽을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동의해 주지 않았다. 완전한 요가 시장 공략을 위해 신발 시장 진출도 제안했지만 묵살되었다. 2010년까지 ‘마음챙김 콘셉트’를 회사의 새로운 지향점으로 삼자고 제안했으나 이사회는 새로운 사업에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았다. 칩은 “최근 몇 년 동안 마음챙김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룰루레몬이 미래 사회적 흐름의 상징적인 리더가 될 기회가 있었고, 그랬다면 회사 가치는 두 배로 높아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사회는 칩에게 “큰 회사 운영법도 모르니 그냥 가만히 있는 게 회사를 돕는 것”이라고 무시했다. 칩은 “내가 한 가장 큰 실수는 이사회가 의제를 결정하고 토의할 때 그들이 너무 많은 권한을 행사하도록 방치했다는 점”이라고 토로한다.

 

* 다가오는 위기 -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룰루레몬은 30%의 매출 신장세를 보였다. 그런데 2013년 3월 중순 월스트리트저널에 ‘룰루레몬의 요가 팬츠에 문제가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속이 너무 비친다는 문제로 대표 상품인 여성용 루온 팬츠의 대규모 리콜을 발표해야 했다. 비치지 않는 원단 개발은 1988년 칩이 룰루레몬을 창업한 이유였다. 칩은 스스로를 ‘기능성 의류 과학자’라고 얘기할 정도로 제품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로 인한 매출 손실이 6000만 달러에 달했지만 그보다 정체성 자체가 흔들린 것이 더 큰 문제였다. 그 사이에 스타벅스 출신의 CEO 크리스틴은 자신의 전 회사에 관해 악의적인 이야기를 퍼트렸다는 비판에 직면해 자리에서도 내려와야 했다. 

 

* 단 한 번의 인터뷰 후 나락에 빠지다 - 옷의 보풀이 일어나는 문제로 가볍게 한 블룸버그와의 인터뷰가 발목을 잡았다. 칩은 일부 사람들이 몸매를 고려해 실제 자기 체형보다 2~4 사이즈 작은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훨씬 멋져 보이기는 하지만 원단과 심에 더 많은 압력이 가해져 보풀이 발생한다는 지적이었다. 별 것 아닌 이 발언으로 엄청난 논란이 빚어졌고 그는 의도치 않게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사회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인터뷰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기습적으로 안건으로 올렸다. 몇 천 명 규모의 표본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해, 칩이 회사에 어떤 손해를 끼쳤는지 통계와 숫자로 입증하려 했다. 칩은 룰루레몬 이용자도 아닌 표본집단으로 분석한 결과의 부적합성을 들어 반발했으나 이사회는 결국 칩을 이사회 의장직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한다.

 

* 왜곡된 회사 문화 되돌리기 - 칩은 두 명의 CEO를 거치면서 왜곡된 회사의 문화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임 CEO 추천자는 ‘칩의 동맹군’이라며 거부되었다. 헤드 헌터 소개로 추천된 로랑 포트뱅을 반대했으나 이사진 모두가 수용을 요구하니 도리가 없었다. 이후 CEO의 랜드마크 포럼 참가 의무는 완전히 삭제되었고 그렇게 룰루레몬의 핵심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회사는 정실인사가 만연하고 무사인일 사고방식이 팽배해 졌다. 의장직에서 사임한 후 칩의 역할도 180도 달라졌다. 2011년부터는 이사회와 고위 경영층에게 처참한 경영 실적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그 동안 칩의 부인과 아들은 2013년을 전후로 룰루레몬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2014년 초에 킷 앤 에이스를 창업하게 된다. 이사회는 나중에 이 회사마저 매각할 것을 종용한다.

 

* 하워드 슐츠에게서 배우다 - 칩은 이사회 및 고위 경영진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슐츠는 2007년 회사 임원들에게 이 메일을 보내 “지난 10년 성장하면서 스타벅스의 경험이 희석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 브랜드의 상품화로 보이기도 한다”고 질타했다. 얼마 안 있어 CEO로 복귀했고, 600만 달러의 매출 손실을 감수하면서 7000개 이상의 매장을 일시에 휴업케 하고 의식전환 교육을 감행해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칩은 “CEO가 창의성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회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하는데 급급해 구태의연한 기업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룰루레몬의 문제는 회사의 주축이 디자인과 브랜드에서 벗어났고, 이를 다시 되돌리지 못한 데 있다고 보았다. ‘창의성’에서 ‘경영’으로 중심이 이동하면서 모든 부서가 각종 분석지표에 매몰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 룰루레몬을 위한 ‘쓴 소리 맨’ - 칩은 결국 2014년 8월에 룰루레몬 보유 주식의 절반을 어드벤트에 매각한다. 그는 여전히 개인으로선 최대주주지만 지분률은 15%에 불과하다. 그는 그래도 룰루레몬이 다시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길 바란다. 평범한 회사가 되어 버린 룰루레몬이 과거와 같은 청의력과 도전정신으로 충만한 회사가 되어야 한다며, 지금도 쓴 소리를 연일 뱉어낸다. 급기야 2019년 5월 룰루레몬 이사회는 그의 이사회 의석마저 박탈해 버린다. 칩은 룰루레몬이 ‘제2의 갭’으로 전락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구상한 룰루레몬의 비즈니스 모델이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비즈니스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는 꿈을 꾼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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