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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멍때리기’ 갈망하는 사회, 작지만 큰 쉼표 우순옥 개인전 ‘무위예찬’

[혼자 보기 아까운 히든콘] '비움의 미학' 우순옥 개인전 '무위예찬'

입력 2016-05-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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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심박수로 멍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사람이 우승자가 되는 ‘멍 때리기 대회’가 올해로 2회를 맞았다.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의 크러쉬가 우승을 해 화제가 됐던 이 대회는 사연공모로 참가자를 정하고 있다. 대회의 경쟁률은 31 대 1. 하물며 이는 국제대회다.  

 

온갖 스트레스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복잡하고 분주한 일상을 떠나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 갈망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에게도 유효한 정서다. 이같은 마음을 꼭 닮은 전시가 우순옥 개인전 ‘무위예찬’(6월 12일까지 국제갤러리 1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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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의 풍경.(사진제공=국제갤러리)

60세를 바라보는 화가 우순옥이 20대 독일 유학시절, 귀국 후 30대 그리고 최근에 작업한 작업 12점으로 꾸린 이 전시는 멈춘 듯 보이지만 분명 움직이고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얼핏 이게 뭔가 싶지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엠프티 스페이스’(Empty Space)의 속내를 깨닫는 순간, 이야기는 내 것이 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은 ‘무위의 풍경’이다. 

 

동영상 패널 형식을 하고 있지만 움직임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 작품은 독일 퀼른 인근에 있는 브루더 클라우스 채플(Bruder Klaus-Kapelle)로 가는 풍경을 담고 있다. 

 

브루더 클라우스 채플은 스위스의 유명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완성한 명상의 장소다. 그곳으로 가는 고즈넉한 들판과 고요하게 구비진 길을 담은 이 작품은 사실 그림이 아닌 영상이다. 

 

10여분짜리 영상을 10시간으로 늘려 편집해 관람객은 방문 시간에 따라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멈춘 듯 보이지만 꾸준히 흐르며 견뎌냈을 시간은 곧 우리네 삶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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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간의 그림’.(사진제공=국제갤러리)

 

이 같은 시간의 흐름은 그가 20대에 그린 ‘침묵의 바다’(1983)에서도 느낄 수 있다. 독일 유학생활 10년차 즈음 한국에 잠시 다니러 왔다 머무르게 되는 과정에서 그의 20대 시절 작품 대부분은 여전히 독일의 지도교수 창고에 보관돼 있었다.

 

경황 중 둘둘 말아 챙긴 몇몇 그림들은 우순옥 작가의 동선에 따라 움직이다 어느 서랍 속에 고이 보관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그 그림들을 꺼냈다는 그는 “작품을 보는 순간 감개무량해졌다. 33년 전인 1983년 그림은 주름이 잡히고 얼룩이 져 세월의 흔적,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침묵의 바다’는 주름진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채 이번 개인전에 ‘시간의 그림’이라는 새 이름을 달고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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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드로잉 프로젝트.(사진제공=국제갤러리)

 

2008년 폐쇄돼 재개발을 통해 주거단지와 문화시설을 조성하려던 템펠호프 공항은 현재 주변 시민들의 쉼터로 자리매김했다. 우순옥 작가는 이 특별한 공간을 영상에 담아 ‘파라드로잉’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단체까지 출범시켜 얻은 이 쉼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며 자유로운 풍경을 자아낸다. 그저 부수고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요즘, 그렇게 시간을 버텨내며 자유의 상징으로 탈바꿈한 폐쇄된 공항은 많은 물음을 던진다. “잘 살고 있는가?”, “행복한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냐”고.  


전시장의 유리벽면에는 우순옥 작가 활동의 주요 화두를 내포한 ‘Form is emptiness, Empiness is form’이 금색 글씨로 쓰여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정도로 풀이되는 이 글귀는 파리 테러 직후인 2015년 11월 파리를 방문한 작가가 19구에 위치한 ‘뷔트 쇼몽’(Buttes Chaumont) 공원에 적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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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순옥 작가 개인전 ‘무위예찬’의 화두를 관통하는 금빛 글씨.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사진제공=국제갤러리)

 

바람과 비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사라졌던 이 글귀를 국제갤러리 유리벽면에 적으면서 작가는 세월에도 바라지 않는 의미를 상기시킨다. 이 금빛 글씨는 시간대에 따라 다른 빛을 띠며 바닥에 그림자로 내려앉기도 한다.


담담한 일상의 기록처럼 보이는 이 전시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규모도 작품수도 적다. 하지만 자본과 규모의 논리에 휘둘리는 사회를 돌아보고 스트레스 뿐인 고단한 삶을 내려놓으면 단순하지만 거대한 가치를 만나게 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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