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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포스트 한일경제전쟁> 문준선

입력 2020-09-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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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산업통산자원부의 현직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총괄 서기관이다. 소재부품은 제품의 원재료나 중간생산물. 장비란 그런 소재부품을 생산하거나 이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장치 또는 설비를 말한다. 소재부품은 특히 생산원가의 60%를 넘을 만큼 중요한 산업이며, 전체 제조업 가치사슬의 상단에 위치한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저자는 14년 동안 현직에서 지켜본 일본 제조업(특히 소부장) 강점의 원천, 소부장 사태가 불러온 파장과 전망 등을 자세한 현지 사례들을 곁들여 소개해 준다. 그는 한국의 신성장 동력을 소부장과 화학산업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우리도 일본처럼 정부와 기업이 하나가 되는 산업지원 시스템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 G7의 시대에서 G-X의 시대로 - 일본경제산업성은 2019년 8월9일 개최한 제25회 산업구조심의회 총회에서 ‘기존 질서의 변용과 경제산업의 정책 방향’을 주제로 올렸다. 참석자들은 일본이 현재 세 가지 큰 변화를 마주했다고 의견을 모았다. 첫째는 세계 경제질서의 변화다.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 이슈마다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최근의 상황을 그들은 ‘G-x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선진국 내 빈부격차 확대와 선진국과 신흥국 간 경제 격차의 축소라는 두 개 격차 문제가 이런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특히 중국 등 신흥국의 부상에 큰 경계심을 드러냈다. 한국도 그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각국의 대립을 조율할 국제협력 메커니즘은 ‘기능부전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이제 기존의 틀을 따르는 게 이득인지 손실이니 따져봐야 할 시기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 일본, 부활이냐 추락이냐 - 이날 회의에서 일본은 스스로 자국경제가 부활과 추락의 갈림길에 섰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경제산업성은 “일본이 국력 저하와 함께 부가가치 창츨에 고전하고 있다”고 자체 진단하면서 ‘패배’라는 표현까지 썼다. 지금 당장 혁신에 나서지 않으면 부활의 길이 닫힌다는 절박하고 초조한 심경도 드러냈다. 실제로 ‘기술=일본’이라는 등식이 흔들리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논문 수와 질, 박사 취득자 수가 줄고 있다. 다수의 일본 기업들이 다른 일본 기업이나 외국기업과 협력하기 보다는 단독 연구개발을 선호하면서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글로벌 트랜드에 역행한 탓에 기초연구 비중도 11.9%로 한국(17.2%)에도 뒤지는 상황을 맞았다. 이날 총회에서는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두 축이자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인재’와 ‘혁신투자’의 부족도 지적되었다. GDP 대비 벤처투자액의 경우 0.03%(2017년 기준)로 미국의 0.4%, 한국의 0.08% 보다도 낮다고 비판이 일었다.

* 일본 경제의 버침목 ‘소부장’ - 일본 정부는 자국 산업구조의 구조적 변화를 감지하고, 소부장을 일본 경제를 지탱할 중요 산업으로 인식했다. 특히 경제뿐만아니라 안보에도 불가결한 핵심 분야 임을 재확인했다. 경제산업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이 세계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유지하는 270개 제품 중 212개가 소재부품이다. 중국과 한국의 추격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자산업 점유율은 하락세지만 편광판, 유리기판, 포토레지스트, 광학장비 등은 여전히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소부장을 일본 경제 부활의 핵심 분야로 정하고, 경제를 넘어 안보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 이슈로 규정했다. 그리고 꼭 지켜야 한다며 강한 수성(守城) 의지를 드러냈다.

* 소부장 강국의 첫 번째 비결 ‘전쟁 후의 경제적 역동성’ - 저자는 일본이 수부장 강국이 된 첫 번째 배경으로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 경제사회의 역동성을 들었다. 단순히 전쟁이 가져다 준 수혜라거나 장인정신을 일본 경제 성장의 근원으로 얘기 하지만 군수업체의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이 대안으로 창업을 택한 것이 큰 힘이 됐다고 평가한다. 소니, 파이오니아, 혼다 등이 1946~1948년 사이에 만들어져, 차별화라는 핵심전략을 기반으로 급성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패전 후 일본경제에서 외자 규제로 인한 수입난, 극심한 물자부족과 같은 혼란한 상황도 수부장 기업의 탄생에 기여했다.

* 소부장 강국의 두번째 비결 ‘거대 과학 프로젝트 참여’ - 남극 탐험이나 우주개발 천체관측 등의 거대과학 프로젝트 참여와 강력한 국산화 정책이 주효했다. 극한에 도전하는 이런 과정을 통해 소부장은 거대과학을 뒷받침하고 거대과학은 소부장의 혁신을 촉진시켰다. 남극 탐험 과정에서 일본 최초의 조립식 주택이 개발되었고, 강풍과 혹한에서 견디는 풍력발전기가 개발되었다. 디젤 엔진의 내구성도 크게 향상되었다. 태양빛을 측정하는 일사계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었고, 에코정기는 태양광 전천후 분광방사기로 세계시장을 독점했다. 우주개발 과정에서는 의료기기와 조명장치의 급속한 발전을 이뤄냈다. 일본이 자랑하는 초정밀 베어링 기술도 이 때 발전했다. 하와이에 1999년 광학 적외선망원경인 스바루 망원경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과학 소재 산업의 급속 발전이 이뤄졌다.

* 소부장 강국의 세 번째 비결 ‘비주류의 혁신 노력’ - 주류가 아닌 후발주자들과 비주류 업종 생존자들의 혁신이 일본 소부장 산업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후발주자들의 반란, 괴짜들의 무모한 도전, 사양산업에서의 생존을 위한 모색. 망한 회사를 살리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소부장 혁신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소부장 산업도 일본의 선례를 참고해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주력산업이 아닌 신생산업, 업계의 1등이 아닌 꼴찌들에게서 혁신의 원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 소부장 혁신을 만든 비주류 후발주자들 - 귀금속 가공업체로 창업했던 후루야금속은 극심한 시장경쟁을 피해 이리듐이라는 특수금속 가공업을 시작했고, 휴대폰과 OLED 사업 성장과 함께 세계 산업용 귀금속 점유율 90%의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일본 최초의 3D 시제품 제작업체 인쿠스는 자동차 도어락 부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으나 디트로이트 오토 팩토리 쇼에서 본 3D 프린팅 기술을 보고 시장변화를 감지해 2시간 무인공장을 세움으로써 ‘일본 제조업의 혁명아’라는 극찬을 받았다. 일본국립천문대의 천체망원경 수리업자가 세운 미카타는 전구 데생, 종이비행기 만들기, 구운 생선 먹기 등으로 채용시험을 본다. 괴짜들을 모아 창의적인 해결책을 내는 실험을 부단히 해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났다. 광학유리업체인 스마다광학글라스는 연구개발의 상한을 정하지 않고,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등 직원들을 방목해 창의적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 ‘가마우지 경제’에서 ‘펠리컨 경제’로 도약하려는 한국 - 한국과 일본이 경쟁하는 931개 품목 중에서 일본이 세계시장 점유율 50% 이상인 품목이 309개다. 한국도 이제 소부장 산업이 제조업 생산의 52%를 차지하는 중요산업으로 성장했으나 아직은 일본에 대해 수출 128억 달러 대 수입 270억 달러로 여전히 141억 달러의 적자다. 2019년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에 필수 핵심부품 소재를 의존하면서 생긴 ‘가마우지 경제’를 극복하고 ‘펠리컨 경제’로 바꿔 가겠다고 밝혔다. 펠리컨 경제란, 먹이를 부리 안에 저장했다가 새끼에게 먹이는 펠리컨 처럼 한국 소부장 산업의 자립도를 높이고 부가가치를 창출해 파급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뜻이다.

* 동일본 대지진의 교훈 - 자동차 부품은 만성적인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품목이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적자를 줄여나가 2014년에는 소폭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동시에 성장을 거듭해 생산 100조원, 고용 23만명, 기업 수 9000여개에 이르는 기간산업이 되었다. 일본정책투자은행은 우리 자동차부품산업의 약진 배경으로 합리적 가격, 품질 향상, 정부지원을 들었다. 이에 더해 2011년 3월11일 터진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도 컸다고 분석된다. 마이콘이라는 자동차 제어장치 반도체를 생산하는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가 큰 피해를 입으면서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완성차업체들이 부품선을 다양화한 덕분에 우리도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 극복해야 할 ‘넘사벽’ 일본 트라우마 -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겐 자학적 경제관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과의 기술격차가 50년은 될 것이라는 한 경제인의 언급해서 보듯이, 일본의 기술 경쟁력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자포자기 같은 것이 있었다. 2018년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재부품 자체 조달률은 60% 수준이다. 반도체가 27%, 디스플레이 45%, 기계 61%, 자동차가 66%다. 대일본 수입의 68%가 소부장이며, 이는 미국41%, EU 46%, 중국 53%보다 높은 수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소부장 중소기업 1002곳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기술력 수준은 일본의 89.3%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한국과학기술평가원과 일본과학기술진흥원 평가에 따르면 양국 간 기술격차는 2014년 2.8년에서 2015년 2.7년, 2018년에는 1.9년으로 매년 꾸준히 좁혀지고 있다. 2009년 대비 2017년 한일간 기술격차는 환경 및 에너지가 0.5에서 0.37로, 나노재료가 0.43에서 0.36으로, 임상의학이 0.37에서 0.27로 대부분 업종에서 줄어들고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 디지털 신기술로 기회가 열린다 - 후발주주가 공격적으로 비약 전략을 선택하고 선발자의 실수가 맞물릴 때 시장점유율 역전과 주도권 이전이 발생한다. 화학분야의 경우 한국의 B사가 MIT와 손잡고 ’꿈의 배터리‘라는 전고체 배터리의 신물질 구조물을 발견해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다. 일본이 최강인 공작기계의 경우도 ’디지털 트윈‘이라는 변화의 바람에 편승해 한국이 머지 않아 이 부문의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낙관했다.

* 일본 수출규제는 ’잠금효과‘ 깨어지는 신호탄 - 잠금효과란 특정 재화나 서비스를 한번 이용하면 다른 것을 이용하기 어려워져 기존의 것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 제품들이 이제까지 그랬다. 일본이 이번에 수출규제했던 불산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도 모두 전환비용이 커 그 동안 거래선 변경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로 상황이 변했고 우리 대기업들도 이제는 비용을 들여서라도 다변화와 자립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중소기업들에게도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이 기회를 살려 국내 기업들이 굳건한 소부장 생태계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저자는 말한다.

* 규제는 기회다 - 호리바제작소는 환경규제 덕분에 더욱 성장했다. 미국이 대기정화법을 만들어 자동차 배출가스를 단속하기 시작하자

자사의 호흡측정 장비를 자동차 부문에 사용하는 방안을 만들어 발 빠르게 시장을 선점하면서 시장의 90%를 장악했다. 사카린으로 대박 장사를 하던 코난화공은 미국이 발암물질로 판매금지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미리 정밀화학 쪽으로 사업 방향을 튼 덕분에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게 됐다.네모토는 라듐을 사용하지 않는 야광도료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9.11테러를 계기로 확산된 비상 형광 표시판 수요를 충족할 수 있었다.

* 일본 제조업의 ‘승부처’ 화학산업 - 소재산업은 일본 제조업의 중심산업이다. 제조업 전체 생산의 18%, 고용의 17%를 차지하며 부가가치의 21%를 만들어 낸다. 소재산업 중에서도 특히 화학산업은 업체 수의 60%, 고용의 70%,부가가치액의 77%를 차지하는 주력산업이다. 일본 소재산업이 곧 화학산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앞으로는 화학기술이나 제품이 기존의 기술이나 제품을 대체하는 ‘산업의 화학화’에 누가 더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산업 주도권의 향배가 결정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히 기능성 화학제품의 경쟁력이 일본 사업결쟁력을 좌우할 것이란 게 정설이다.그렇기에 일본 재계의 파워도 자동차와 전자산업 중심에서 화학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 우군을 잃게될 지 모르는 일본 - 저자는 일본에서 한국전쟁 특수를 제외하고는 일본 경제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 한국의 역할과 상호협력에 관한 연구가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가치를 일본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대기업은 일본 소부장의 혁신적 조달처였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전용 모터업체인 스타엔지니어링은 대우전자 덕분에 컸다. 코일 권선업체인 니토쿠엔지니어링은 삼성전자가 사 준 덕분에 20명의 소기업에서 글로벌 중견기업으로 클 수 있었다. 하청에서 벗어나 자립화하는 과정을 함께 한 파트너인 한국 대기업의 역할이 일본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는 탓에, 소부장 수출규제 같은 조치가 나온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는 이번 일로 일본 소부장 기업들이 한국 대기업이라는 든든한 원군을 잃게 된 것은 아닐까 우려한다.

* 소부장 분야의 한일 협력을 기대하며 -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4년에 세계 점유율 20% 이상인 대기업, 또는 10% 이상인 중소중견기업 중에서 실적이 우수한 100개를 ‘글로벌 틈새 1등기업 100’으로 선정했다. 대부분 소부장 기업들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연구개발, 생산설비, 판로개척,금융대출 등 패키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도 2002년부터 소재부품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소부장 전문기업을 선정해 인력 및 기술개발 등을 종합 지원해 왔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산업 밸류체인에 필수적인 핵심 전략 기술 분야에 잠재역량을 가진 기업을 선정해 지원을 강화해 갈 계획이다. 저자는 일본 글로벌 틈새 1등 기업 100과 한국이 소부장 특화 선도기업 100 사이의 건전한 경쟁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끊임없이 혁신해야 하는 ‘뿌리산업’ - 제조업의 기반인 뿌리산업을 일본에서는 ‘소형재 산업’이라고 부른다. 일본의 소형재 산업은 1990년 정점 이후 위축되는 모습이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업체 수는 최고 50%, 종업원 수는 최대 35% 감소했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결국 살아남는 기업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혁신해 온 기업들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오랜 기간 장인의 감각에 의존해 왔던 생산공정을 IT와 결합해 표준화하려 노력했다.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에 따르면 2015년 2만 6840개이던 뿌리기업이 2017년 2만 5056개로 2년 만에 1800개나 줄었다. 청년들의 기피로 숙련공들이 퇴직한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체했다. 저자는 끊임없는 변화로 살아남은 소형재 기업의 교훈에서 우리 기업들이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 F1은 늦었지만 FE는 앞서가자 - 일본은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로 불리는 ‘포뮬러원’을 유치하고 전략적으로 잘 활용해 큰 성공를 이루었다. 모자 판매상이던 아라이 헬멧을 세계적인 자동차 헬멧 기업으로, 방적기계용 실패를 만들던 와시마이아를 세계 최고의 마그네슘 휠 제조업체로 키웠다. 반면에 우리는 2010년에 전남 영암 F1 서킷을 건설하고 그랑프리 대회까지 열었으나 2013년에 아쉽게 문을 닫는 등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저자는 F1에서는 실패했지만 전기차 버전인 포뮬러E(FE)로 눈을 돌리자고 말한다. 매년 세계 10여 개국을 돌며 전기차 레이싱을 벌이는 이 대회를 한국은 2020년 서울을 시작으로 5년간 개최하기로 되어 있다. 1980년대 일본 기업이 F1을 활용했듯, 한국 소부장 기업들도 FE를 기술혁신의 무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조자는 강조한다. 차제에 스포츠 용품 부문과 산업이 연계된 영역을 활발히 개척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한다.

* 기술만이 전부는 아니다 - 저자는 첨단 기술은 없지만 품질과 원가, 납기, 즉 QCD 가운데 하나를 밀어붙여 1위 자리에 오른 기업들도 많다고 소개한다. 코일업체인 우에노는 원가절감으로 승부를 걸어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기 전에 인근 교도소에 일감을 위탁하기 까지 했다. 소형 베어링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기타니혼정기는 대량발주를 받지 않고 실시간 공급 대응 체제를 갖춰 완벽한 재고관리를 이뤄냈다. 도르레를 생산하는 나베야바이테크 역시 재고 없이 주문 즉시 제작에 들어가는 납기 혁신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 4P 대신 1P로만 승부하는 기업들 -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제롬 매카시 교수는 1960년에 기업이 집중해야 할 4가지 분야를 강조하는 4P 이론을 발표했다. Product(제품) Price(가격) Place(유통) Promotion(판촉)이다. 하지만 작은 기업들은 이 모두를 갖추기 힘들다. 그래서 다른 것은 다 버리고 1P(Product)로만 승부하는 업체들이 있다. 절삭공구를 다루며 뒤틀림 교정 부문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는 가이지마 열처리공업소는 영업 담당이 없다. 영업 자체를 하지 않는다. 기술이 있으면 손님이 찾아온다는 지론이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에리오닉스는 “1등을 잡으면 나머지는 따라온다”며 하버드 등 최고의 대학들과 공동 연구를 펼쳐 큰 성과를 이뤄냈다. 건축 현장에서 무거운 자재를 옮길 때 사용하는 벨트슬링을 만드는 메이다이는 대기업이 자사 제품을 폄하하는 홍보전 덕분에 오히려 이름을 알려 성공했다. 물론 제품력이 그만큼 따라줬기에 가능했다.

* 잘 나갈 때 더 조심하라 - 저자는 업계 정상까지 갔다가 추락한 이케가이철공과 재기에 성공한 일본전자의 상반된 사례에서 교훈을 찾았다. 첫째,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것이다. 자만과 방심이 위기를 부른다. 둘째, 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다. 일본전자는 제조업에서 서비스로 비즈니스를 재정립하는 근본적인 혁신을 한 반면, 이케가이는 관리를 통한 점진적인 개선에 머물렀다. 세번째, 정부의 대응이다. 이케가이의 파산으로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흡수되면서 일본 금형산업은 뿌리가 흔들리게 됐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09년 (주)산업혁신기구를 설립하는 즉시 구조조정 전문펀드를 만들어 일본전자의 핵자기공명장치 사업부문을 보존케 했다. 한계기업에 적용 가능한 방법이다.

* 성공한 소부장 기업의 공통점 ‘고객만족’ - 성공한 소부장 기업의 공통분모는 ‘고객만족’이다. 하지만 이를 이끌어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첫번째는 고객이 부르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유형이다. 훗카이도의 동화전기제작소는 오징어 채낚기라는 전통적인 어부들의 움직임을 기계화한 장비를 생산하는데, 남미에서 장비 문제를 연락이 와도 군말 없이 날아가 고쳐준다. 덕분에 이 회사는 세게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두번째는 고객보다 먼저 움직이는 유형이다. 소니가 비밀리에 8mm 초소형 캠코더 개발에 착수했을 때, 한 부품업체가 이미 관련 부품을 개발해 두었다며 납품을 했다. 당시 소니가 도면 유출을 의심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세번째는 고객이 부를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기업들이다. 사출성형 전문업체 주켄공업은 수요업체가 따로 검사작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불량품 제로를 자랑한다. 이 회사는 애프터 서비스도 없다. 자사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수요업체의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

* ‘제조강국’에는 ‘제조문화’가 있다 - 일본은 제조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남다른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07년 33개의 근대화산업유산군과 575개의 개별 근대화 산업 유산을 선정했다. 이를 통해 제조문화를 전파하고 관광 등 지역경제 활성화와도 연계하고 있다. 제조업과는 거리가 먼 궁내청도 제조업에 늘 관심을 보인다. 아키히토 상왕이 주기적으로 제조현장을 찾아 과학기술과 제조문화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킨다. ‘전일본팽이대전’은 일본의 제조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행사다. 전역의 중소제조기업이 지름 20mm,1엔 동전 크기의 팽이를 만들어 겨룬다. 이를 NHK가 내보내는데 방송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다. 2012년에 시작한 이 대회의 초대 우승자는 현재 로켓을 만드는 중소기업 유키정밀이다.

* 일본 소부장 기업의 성패에서 얻는 11가지 교훈 - 첫째, 차별화. 틈새전략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둘째는 유연성. 끊임없는 변화가 일본 장수기업의 생존 비결이다. 셋째와 넷째는 도전정신과 혁신이다. 다섯째는 창업이다. 신규창업보다 중도 창업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섯째는 기술, 일곱째는 자원배분이다. 여덟째는 위기대응이다. 위기는 정상에 섰을 때 갑자기 닥쳐온다. 아홉째는 협력, 열번째는 고객관리다. 마지막은 문화다. 저자는 일본에 ‘장인문화’가 있다면 우리에겐 ‘기업가정신’과 ‘IT DNA’가 있다고 강조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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