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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남의 나라 흑역사> 위민복

입력 2021-08-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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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외교관이다. 모로코 등 유럽 지역을 경험하면서 접한 각 나라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춰내 소개해 준다. 테러를 잡으려다 엉뚱한 일만 수행한 미테랑 대통령의 ‘반 테러실’, 순례자들을 위한 수녀들이 만드는 맥주, 안락사 시키기 위해 디자인된 롤러코스터,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 초미니 국가 ‘세보르가 공국’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스토리와 그 역사적 배경 등이 흥미롭다.

 

 

 

* ‘메이드 인 파리’ 벌꿀 - 파리 9지구에 있는 오페라극장 ‘오페라 가르니에’의 소도구 담당 그래픽 아티스트 장 폭통(Jean Paucton)은 1981년 자신이 살던 파리 도심의 아파트에서 벌집을 분양받아 꿀을 만들려 했다. 그러다 여의치 않자 극장 옥상에 벌집을 마련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결국 ‘메이드 인 파리’ 벌꿀을 만들게 된다. 이것이 인기를 끌며 오페라 가르니에 기념품 매장에서도 판매되기에 이른다. 폭통 덕분에 옥상에서 벌꿀 채집하기는 파리의 상징이 된다. 현재 파리 시내 700여 채 옥상에 벌집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소르본대학 철학과 출신으로 태크호이어에서 일하던 오드리크 드 캄포는 귀농해 파리 여러 곳에 벌꿀 통을 설치한 것을 계기로 지금은 가장 유명한 파리 도심의 양봉업자가 되었다. 파리 벌꿀은 제품 경쟁력도 뛰어나 kg당 가격이 122유로로 일반 벌꿀의 2~3배에 이른다.

 

* 미테랑 대통령의 이상한 ‘반 테러실’ - 1982년 8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무장 조직이 파리 유대인 식당을 폭탄 테러해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직속 기구로 ‘반 테러실’을 신설했다. 하지만 정작 이 기구는 반 테러 업무 보다 미테랑의 개인 경찰 노릇을 했다. 그의 장례식에서야 드러난 혼외 딸의 보호자 역할까지 했다. 심지어 파리 뱅센 숲에 살던 3명의 아일랜드인을 아일랜드공화국 무장요원이라는 이유 만으로 테러 주범으로 몰아 감옥으로 보냈다. 나중에 풀려났지만 피해보상금은 단돈 1프랑이었다. 르몽드 편집장을 비롯한 1300여명의 인사에 대한 불법 도청은 ‘파리의 위터게이트’로 불렸다. 플레넬 기자가 “한 군경 대위가 폭발물을 아파트 안에 미리 숨겨두었다”고 폭로한 것이 계기였다. 결국 미테랑 사후 파리 외곽의 한 차고에서 기밀문서가 발견되면서 진실이 밝혀졌다.

 

* 파리지엔이란? - 유행을 좇지 않지만 언제나 패션의 최전선에 있는 파리지엔.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일단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부터 파리지엔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딱 한 옷가게 ‘로즈 베르탱’의 옷만 입었다고 한다. 1900년에 개최된 파리 엑스포 홍보자료는 파리지엔을 이렇게 묘사했다. ‘인생 각각의 상황에 적합한 재치로 가득한 우아함 때문에 다른 여자들과 차별화된다. 절제와 취향, 타고난 세련됨과 그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형용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모더니즘과 우아함의 혼합, 우리는 그것을 시크(chic)라고 부른다.’ “파리지엔은 유니콘과 같다”는 말도 나온다. 아무도 본 적은 없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는 얘기다.

 

* 파리의 사교 무대회 ‘발(Bal)’ - 18세기 영국 소설에 자주 나오는 ‘데뷔당트 볼’이라는 사교 무도회가 있었다. 그냥 무도회가 아니라 10대 후반의 귀족 여자들을 사교계에 데뷔시키는, 즉 좋은 남편감을 찾는 행사였다. 영국이었기에 당시엔 매우 공식적인 행사였다고 한다. 이것을 프랑스가 가져와 통칭 ‘발(Bal)’이라는 세계적인 이벤트로 만든다. 1992년에 열린 ‘르 발 데 데뷔당트’가 그 시작이었다. 프랑스 귀족과 대기업 가문의 딸들 스무 명을 모아 사교계 데뷔 무대회를 개최했다. 이벤트를 처음 만든 오펠리 르누아르는 규모와 일정 조건을 갖춘 의상점 ‘오트 쿠튀르’를 매치시킨다. 의상 제공과 함께 화장까지 시켜 무도회에 올린 것이다. 왕족의 공주와 대귀족, 정치인, 기업가, 배우 등의 딸이 참석했고 중국 통신재벌 등 유력 글로벌 기업인의 딸들도 자주 보였다. 2020년 행사는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고 다음 발은 2021년 11월로 예정되어 있다. 미국도 따라 가고 있다. 이방카 트럼프가 여기 출신이다.

 

* 루르드 성모의 ‘기적의 샘물’ - 지금도 기적을 일으킨다는 성지(聖地) ‘루르드(Lourdes)’. 방앗간 집 딸 베르나데트 수비루 앞에 성모가 나타난 것이 1858년이다. 문맹인 이 소녀는 ‘원죄 없으신 잉태’ 같은 어려운 말을 하고, 성수가 나오는 기적의 샘물도 찾아낸다. 2018년 2월 모리오 수녀가 이 물을 마시고 병이 나을 때까지 모두 70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이냐 아니냐를 판정하는 곳은 루르드 의무검증국인데 기준이 매우 깐깐하다. 현재의 의료기술로 치료 불가능함이 증명되어야 하고, 성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치료된 것이 아님이 증명되어야 한다. 게다가 성수를 마신 즉시 치료되어야 한다. 모든 기준을 통과하고 의료단에서 3분의 2 이상이 투표로 설명 불가 결과를 내면 주교가 최종적으로 이를 기적으로 선포할 지를 결정한다. 우리나라 충북 감곡매괴 성모 순례지 성당의 성모상도 루르드에서 가져왔다. 

 

* ‘뉴턴의 사과’의 진실 - 볼테르가 1726년부터 1729년까지 영국에 체류했을 때 쓴 ‘철학편지’의 15번째 서한을 보면 주목할 만한 내용이 나온다. ‘1666년 케임브리지 근처에 머무르던 뉴턴이 어느날 정원을 거닐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 고민을 하더라. 사과는 어째서 아래로만 떨어지는가’하는 내용이다. 흔히들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사과가 뉴턴의 머리 위에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워낙 유명한 스토리이기에 현재로 여러 지역에서 뉴텬의 사과나무가 자기 지역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잉글랜드 동부 링컨셔주 그랜섬의 ‘문법학교’는 뉴턴이 여기서 교육 받고 1655년부터 1660년 까지 이곳 교사를 지냈다는 인연으로 학교 내 사과나무가 그 나무라고 주장한다. 같은 지역의 ‘올즈소프 저택’은 뉴턴이 태어나고 자란 곳인데, 그 정원에 있는 사과나무가 뉴턴의 사과나무라며 극진히 보호받고 있다. 

 

* 런던동물원 판다의 저주 - 중국의 판다는 불운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우선 중국에서 판다를 선물받은 서방 정치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불운한 운명을 맞았다. 리처드 닉슨은 1972년 방중 때 선물로 받은 직후 1974년 대통령직에서 내려왔고, 에드워드 히스 영국 총리도 1974년   선물받은 그 해에 사임했다. 다나카 일본 총리도 1971년 선물로 받아 1974년에 사임했고,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 역시 1980년에 선물로 받고는 1982년에 사임했다. 때문에 대처 영국 총리는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런던 동물원이 판다와 함께 유세해 달라고 간청했을 때 “판다와 정치인은 좋은 징조가 아니죠”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판다는 또 왠만해선 궁합이 잘 안 맞는 동물로 여겨진다. 1981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서 런던 동물원에 수컷 판다를 데려와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한 합방을 추진해 인공수정까지 갔으나 결국 실패했다.

 

* ‘프러퓨머 스캔들’과 사회적 책임 - 존 프러퓨머 남작은 영국 보수당 내 최연소 국회의원에 외교부 장관, 정쟁성 장관 등을 역임한 촉망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클리브든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서 만난 크리스턴 킬러와 연분이 나면서 인생이 꼬여버렸다. 킬러가 주영 소련대사관 해군무관 이바노프와도 관계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바노프는 킬러를 통해 당시 전쟁상 장관이었던 프로퓨머로부터 정보를 빼내려 했다. 프로퓨머는 하원에서 자신의 결백함을 선언했지만 그 선언은 거짓말이었다. 결국 프러퓨머는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사회봉사를 시작한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환자를 돌보는 등 죽을 때 까지 40여 년을 그렇게 보냈다. 모든 지위를 벗어 던지고 사회봉사에 인생을 다 바친 그를 영국은 용서해 주었다. 대처 전 수상은 자신의 생일 파티 때 여왕의 옆자리를 그를 위해 마련해 주기도 했다.

 

* 결투 재판과 명예 재판 - 결투 재판은 게르만 계열 민족의 일종의 관습법이었다. 서로마 제국 이후 게르만 계열 민족들이 유럽을 석권하면서 거의 성문법화됐다. 영국에는 정복왕 윌리엄의 1066년 잉글랜드 정복 이후 건너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보통은 죽음으로 승패가 결정되는데, 항복의사를 밝힐 경우 패배로 인정되기도 했다. 이 결투는 그러나 남의 땅을 빼앗으려 전문 싸움꾼을 고용하는 형태로 변질되면서 점점 신뢰를 잃고 16~17세기에 완전히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명예결투’라는 것이 있었다. 마지막 대결이 1967년 4월21일로 영상기록까지 남아 있다. 중재자와 입회인 하에 양복 정장을 차려입고 진짜 검으로 승부했다. 두 번의 상처가 나면 승부가 끝났다. 중세에는 케이크 재판도 있었다. 보리빵 등으로 만든 저주받은 케이크를 먹이고는 탈이 없으면 무죄, 문제가 생기면 유죄로 판결했다고 한다.

 

* 103년 만에 오보를 정정한 ‘파이낸셜타임스’ - 독일과 전쟁을 치르던 영국 정부는 재원 조달을 위해 10년 만기 전쟁채권을 발행하기로 한다. 여타 정부채권 수익률이 2.5%였던 때 이 채권은 4.1%까지 부여했다. 당연히 완판될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정작 판매된 것은 목표치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1914년 11월 23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본드가 완판되었다’며 가짜뉴스를 내보낸다. 영국 정부의 자금 조달 실패 사실이 독일에 알려지면 큰 일이기 때문이었다. 부족분을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직접 구매하는 식으로 마무리했다. 조폐국장 등의 이름으로 개인 투자자처럼 구매한 후 정부가 해결해 주었다. 영란은행이 이런 사연을 2017년 블로그에 올리며 화제가 되자, 파이낸셜타임스는 다급히 103년만에 오보 수정기사를 내보냈다. 

 

* 애거사 크리스티 실종사건 - 유명 추리 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1926년 12월3일부터 12월14일까지 실종 상태였다. 그녀의 자동차는 헤드라이트가 켜진 채로 음침한 연못가에서 발견되었다. 사고 흔적은 없었다. 그를 찾는데 영국 경찰은 처음으로 비행기까지 동원했다. 그녀는 한 온천 호텔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망할 때까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번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을 그녀의 자작극으로 여겼다. 크리스티가 당시 남편의 불륜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다시 나타나기 사흘 전 영국 타임스에 불륜녀와 같은 이름의 누군가를 찾는 광고가 올라 왔다는 점으로 미루어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 독일인들이 이끄는 자율주행 자동차 - 자동차와 관련해 독일은 여러 가지 ‘세계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디젤 엔진은 디젤이, 라디에이터는 벤츠와 마이바흐가 만들었다. 전기자동차도 포르셰 자동차를 만든 페르디난트 포르세가 1898년에 4륜차로 처음 만들었다. 자율주행차 역시 독일이 원조다. 우주과학자 에른스트 디크만스가 메르세데스 밴을 한 대 구입해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하고 1986년 대학 캠퍼스에서 첫 주행시험 한 것이 효시다. 이를 벤츠가 알고 동업을 요청했다. 1994년 가을에 메르세데스 500 SEL 차량으로 이뤄진 첫 실험에서 시속 130km가 나왔다.하지만 현재의 자율주행용 AI(인공지능)에 비해 당시는 돌발 상황 대응이 매우 부족했다. 도심에서 테스트를 통과할 수가 없었다. 벤츠는 시기상조라며 지원을 끊었고 디크만스는 미국으로 건너가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와 손잡고 기술을 발전시켜 간다. 여기에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서배스천 스런이 구글 자율주행팀을 설립하는데 그 역시 독일인이다.

 

* 비스마르크도 건드리지 못한 독일 교회세 - 독일은 기독교 국가다. 셰례를 받은 보통의 독일인들은 거주하는 주에 따라 8~9% 정도의 만만치 않은 금액을 종교세로 교회에 납부한다. 독일의 철혈재상 바스마르크가 국민들의 이런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공식적으로 교회세 폐지를 추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정책은 실패한다. 가톨릭 세력이 비스마르크 덕분에 오히려 일치 단결해 중앙당(기독민주연합의 전신)이라는 강력한 야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히틀러도 독일의 종교세를 없애지 못했다. 이후 교회세는 바이마르헌법에도 명시되고 독일 기본법에도 들어가게 된다.

 

* 수녀들이 만드는 맥주 - 독일 바이에른주 말러스도르프-파펜베르크에 말러스도르프 수녀원이 있다. 이곳의 도리스 엥겔하르트 수녀는 흔치 않은 브라우마이스터, 즉 맥주 장인이다. 천주교 수도원은 신성로마제국의 오토1세 시절부터 맥주를 만들어 왔다. 거의 1000년의 역사를 지닌 셈이다. 성지 순례자들에게 안전한 마실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맥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엔 워낙 물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인강 이북은 포도주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주종이 맥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베네딕토회의 안덱스 수도원이라는 곳에서는 가장 많이 생산되었을 때 1455년부터 1년에 100만 상자나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 중고 벤츠의 천국 알바니아 - 알바니아 자동차의 70% 가량이 메르세데스 벤츠다. 세계에서 벤츠가 가장 많이 밀집된 나라다. 알바니아가 부국도 아닌데 벤츠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알바니아가 워낙 역사적으로 독일을 좋아한다. 히틀러도 알바니아 국왕에게 벤츠 770을 선물했다. 알바니아의 벤츠 사랑은 독재자 엔베르호자 때문이라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그는 전쟁의 위협을 국민들에게 외치면서 그 작은 영토에 무려 16만 8000개의 벙커를 지었다. 도로도 외국 군대가 진입하지 못하게 하겠다며 일부러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 이런 도로를 오로지 메르세데스 벤츠만이 훌륭하게 버티었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알바니아로선 벤츠, 특히 중고벤츠가 해법이었다. 그렇게 알바니아는 벤츠 중고차 수입의 천국이 되었다.

 

* J.K. 케네디의 “이히 빈 아인 베를리너” -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3년 6월26일 베를린을 방문했다. 베를린 시민 절반이 모인 앞에서 그는 “제가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는 유명한 말을 남겨 베를린 시민들은 눈물짓게 했다. 당시는 베를린 장벽이 한창 세워지던 때였다. 특히 미국이 소련과 대화를 위해 베를린을 포기할 지도 모른다는 여론이 상당했다. 케네디는 그러나 현지에서 베를린 장벽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직접 목도하고는 자신의 연설을 이렇게 수정했다. 현재 베를린에는 케네디 박물관이 있는데, 미국의 케네디박물관보다 더 자료가 많다고 한다. 이곳에는 케네디가 연습했던 그날 연설문이 남아 있다. 이것을 보고 베를린 시민들은 또 한번 눈물을 흘렸다. 거기에는 ‘Ish bin ein Bearleener’이라는 글이 선명했다. 케네디가 독일어 발음을 연습하기 위해 영어식으로 스펠링을 적어 연습했던 것이다.

 

* 메르켈 총리와 마름모 - 앙겔라 도로테아 메르켈 독일 총리를 특징 짓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메르켈른(merkeln)이다. 2015년 올해의 단어 후보로 올랐던 단어다. 메르켈 이름을 동사화한 이 말은 ‘아무것도 안 함. 결정도 없고 의견도 없음’이라는 뜻이다. 느리고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메르켈을 꼬집는 말이다. 메르켈 총리를 특징짓는 것 가운데 ‘메르켈의 마름모(Merkel-Raute)’도 있다. 항상 짓는 몸짓이 하나 있는데, 손으로 마름모 모양을 만들어 자기 앞에 가지런히 놓는 것이다. 이것을 따라하는 지도자들도 꽤 보인다. 그녀가 양자화학 박사 학위를 보유한 공대생이었다는 사실이 오버 랩 된다. 그는 “(마름모가) 대칭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지요”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 홀대받는 ‘브라운 베이비’ -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유산 가운데 하나가 브라운 베이비다. 전쟁 직후 서독에 주둔한 흑인 미군과 독일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이렇게 불렀다. 독일에 남은 어머니들은 아이를 혼자 키우기 어려웠다. 히틀러의 인종 차별 정책 영향 탓에 흑인 편견도 심했다. 대부분 가난에 허덕였고 아이들은 잘 동화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취학 연령에 이른 1952년에 독일 연방 의회는 이들이 어차피 독일 사회에 동화되지 못할 것이니 아예 사회에서 없애기로 결정한다. 해외로 입양보내자는 것이었다. 미국의 흑인 부부들이 타깃이었다. 싱글 맘에 적대적이지 않았던 이웃 나라 덴마크도 1950년부터 1970년까지 4000여 명의 아이를 입양해 간 것으로 나와 있다.

 

* 안락사용 롤러코스터 - 러시아에서는 눈 덮힌 언덕에서 브레이크 없는 눈썰매 경주가 유행이었다. 18세기 즈음에 표트르 대제의 명령으로 25m높이에 50도 경사의 인공 ‘얼음 슬라이드’가 만들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이것이 발전한 게 ‘롤러코스터’다. 리투아니아의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인 율리요나스 우르보나스가 고안한 ‘안락사 코스터’는 이제까지 나온 롤러코스터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끈다. 510m까지 올라갔다가 시속 360km로 하강하고는 일곱 번을 360도 회전하는 롤러코스터였다. 뇌에 산소부족이 생기고 모든 신경이 마비되면서 죽게 만든 것이다. 이 디자인은 2011년 더블린의 사이언스 갤러리에서 전시되면서 그의 대표작이 된다.

 

* 미니 국가 ‘세보르가 공국’ - 프랑스와 접경한 이탈리아 동북부에 ‘세보르가 공국’이 있다. 14제곱킬로미터 면적에 인구 370명의 작은 나라(?)다. 유엔을 포함해 아직 누구도 이 나라를 정식 국가로 인정한 곳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945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공국이라고 항변한다. 954년에 베네딕토회 레리노수도원이 설립되었는데 당시 백작이 세보르가 일대를 수도원에 기부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제시한다. 1960년 미모사 농장을 운영하던 농부 조르조 카르보네가 독립을 선언하고 조르조 1세로 등극한다. 그렇다고 세습 왕국은 아니다. 7년 마다 주민 직접투표로 대공을 선출한다. 이탈리아는 그냥 무시한다. 세금도 내고 있고 주민들이 이탈리아 총선에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입소문에 관광객들이 들어오니 모두에 이익이다. 최근 3대 대공에 취임한 니나 메네가토의 공약은 ‘근사한 호텔 건립’이었다.

 

* 로마 대중목욕탕의 신화 - ‘로마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 덕분에 로마의 대중목욕탕은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케임브리지대학 인류학과 고고학팀이 로마 유적을 토대로 연구한 결과, 로마 목욕탕이 공중보건을 개선시켰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우선 목욕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따뜻한 물을 자주 교환하지 않은 탓에 온갖 병균과 기생충의 인식처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더욱이 당시엔 인분을 비료로 사용했었다. 식습관도 문제가 있었다. ‘가룸’이라는 조미료를 로마인들이 끔직히 사랑했었는데, 물고기를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향신료 등을 버무려 만든 탓에 물고기 촌충이 많았다고 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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