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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그래도 살기를, 그래도 푸르르기를 바라며 “살람!” 박노해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

[책갈피] 박노해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

입력 2023-10-09 18:00 | 신문게재 2023-10-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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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나무 아래
박노해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사진제공=느린걸음)

 

“그래도 살아야 한다” “그래도 푸르러야 한다” 

 

1980년대를 뜨겁게 살던 얼굴 없는 시인이자 노동운동가는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낡은 필름 카메라를 동반자 삼아 지도에 없는 길로 떠돌았다. 

 

척박하고 가난하며 분쟁으로 신음하는 땅을 떠돌며 유랑자로 살기를 20여년, 그 세월 동안 생채기가 난 몸과 마음, 지친 걸음으로 찾아도 늘 푸르고 강인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지친 그의 기댈 곳이 돼 주었고 다시 일어서 걸을 힘을 주곤 했다.   

 

올리브나무 아래
올리브나무 아래|박노해 글·사진(사진제공=느린걸음)

박노해 시인이자 사진작가의 여섯 번째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는 제라시, 알 자지라,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등을 떠돌며 만났던 올리브나무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이스라엘의 폭탄 투하로 그을리고 불타버린 몸통에서 새잎을 틔우고 그 아래 천국으로 간 이들을 품은 나무가 있고 아픈 엄마 대신 흙마당을 쓸고 닦는 소녀가 주는 물로 자라나는 나무도 있다.

낙오된 어린 양을 찾아 안고 오는 소년이 잠시 숨고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고 열두살 소년 마흐무드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로 함께 하면서 성장의 동반자가 되기도 한다. 

 

오랜 전쟁으로 파괴된 땅에서도 가장 먼저 싹을 틔우고 십자가가 녹슬어 부러져도 그 자리를 지키는가 하면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아 죽은 이들의 묘비를 어루만지며 명복을 빌기도 한다.

붉은 석양이 질 때면 한그루 한그루를 순례하며 하루의 생을 정리하는 노인에게도, 올리브나무와 대화하며 ‘살아내는’ 어머니에게도, 양떼를 몰다 광야를 뛰노는 아이들에게도, 분쟁의 폭음이 난무하고 대대로 일궈온 밭에도 허가증을 받아야만 갈 수 있는 시대를 살면서도 담소를 나누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농부들에게도, 이 시대 최악의 건축물인 이스라엘 분리장벽에 저항과 해방의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에게도 올리브나무는 ‘희망’이다. 

 

언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를 분쟁지역에서 만난 올리브나무, 그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은 박노해 작가의 표현처럼 “난폭한 권력과 안주한 세력”으로 매일이 불안해도 지금을 살아내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올리브나무 아래
박노해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사진제공=느린걸음)

 

전쟁과도 같은 삶 가운데서 매일을 살아내는 어른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던져진 아이들, 그렇게 소원해지기만 하는 사람들, 갈라치기와 혐오 등으로 누군가를 겨누는 칼끝과 독설…. 

 

이들이 난무하는 시대는 “사는 게 다 그렇지” “세상이 다 이렇고 인간은 이런 것”이라는 자포자기, 불안감, 상실감, 고독, 무력감, 우울감 등을 더 두텁게, 더 짙게, 더 모질게 적층시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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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사진제공=느린걸음)

그럼에도 전쟁으로 파괴된 척박한 땅에 뿌리 내려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며 1000년 동안 제 자리를 지켜온 올리브나무처럼 이 사회에는 오롯이 자신으로 서기 위해 제 길을 걷은 이들이 있다.  

 

그 묵묵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나라를, 세계를 지키며 “온몸으로 자신의 시대를 살아내듯”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유실수이자 오래 살아남은 올리브나무는 우리를 닮았다.


“나 여기 서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요” “성실하고 부드럽고 끈질긴 걸음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자신의 길을 간다” “네 뒤에는 우리가 있어”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강인하고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올리브나무처럼” “삶은 그래도 살람(Salam), 평화이다” “이것도 희망이라고…. 그래, 이것이 희망이라고” 등 각 에세이에는 저마다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가슴에 새겨질 문장들로 빼곡하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진에세이 속, 박노해 작가가 직접 찍고 인화한 작품들은 서촌에 자리잡은 라 카페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동명 전시 ‘올리브나무 아래’(2024년 8월 25일까지)에서도 만날 수 있다.   

 

2010년부터 시작해 38만명이 다녀간 라 카페 갤러리의 22번째 전시로 37점의 사진이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무는 나무를 부른다. 숲은 숲을 부른다. 오랜 기억과 투혼을 이어받은 후대가 힘차게 자라나는 땅에서, 희망은 불멸”이라고 위안을 전한다. 매 시즌 직접 농가에서 공수한 제철 과일로 만든 ‘계절담은차’는 덤이다. 

 

올리브나무 아래
박노해 사진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사진제공=느린걸음)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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