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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대학시절 접한 소년의 비극, 19세기 미·유럽 스타일로 ‘파친코’가 되다! 이민진 작가 “위 아 파워풀 패밀리”

입력 2022-08-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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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셜 보도사진4] 이민진 작가 기자가담회
‘파친코’ 재출간으로 내한해 기자들을 만난 이민진 작가(사진제공=인플루엔셜)

 

“대학생이던 19세에 학교 수업을 빼먹고 특강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일본에서 활동하는 백인 선교사가 들려주는 한국계 일본인 이야기였죠.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던 한국계 일본인 소년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야기였는데 너무 충격이고 화가 났어요. 죽은 소년의 이야기가 오래 뇌리에 남아 있었고 그 이야기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죠.”

그렇게 오래도록 작가의 뇌리에 남아 있던 이야기는 2017년 소설로, 올초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로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파친코’의 시작점이었다. ‘파친코’ 재출간 기념으로 내한해 기자들을 만난 이민진 작가는 역사와 정체성을 강조하며 “대학교수로서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그들도 고통받고 있고 우리 사회는 아직 그들에게 충분한 존중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젊은 사람들의 정체성에도 관심이 많아요. 역사를 모르면 빈깡통과도 같죠. 그들의 깡통이 비지 않도록 채워주고 싶어요. 제 작품들이 뿌리를 다루는 이유기도 하죠. 남자든 여자든, 여자도 남자도 아닌 존재든, 트랜서젠더든, 게이든, 스트레이트든, 불교신자이든, 기독교인이든 정체성에서 역사가 빠지면 의미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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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재출간된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 1권(사진제공=인플루엔셜)
역사와 정체성을 중시하는 이민진 작가가 19세에 처음 접해 떨쳐버릴 수 없었던 일본계 한국인 소년의 이야기는 2017년에야 소설로 출간됐다. 늦은 출간에 대해 이민진 작가는 변호사였다가 작가로 전향한 과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글을 쓰고 있었지만 사실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1990대는 한국계 미국인, 하물며 여성이 작가가 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이상하고 엉뚱한 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일을 했어요. 그러다 심각한 간질환에 걸렸죠. 의사가 2, 30대에는 간암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누군가 쫓아오는 것처럼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30대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작가의 길로 들어섰죠.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8일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난 이 작가는 “2017년 처음 책을 출간하고 북투어 중 피츠버그 카네기홀에서 2000명의 독자를 만났는데 99%가 아시아와는 무관한 백인과 흑인, 유럽인이었다. 실제 책 구매자들도 그랬다” 전하며 ‘파친코’가 한국이 아닌 북미, 유럽 등에서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19세기 미국, 유럽 등 문학 스타일”을 꼽았다.

“저는 19세기 미국, 유럽 책들을 좋아해서 그것들로 작가 훈련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소설은 19세기 스타일의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내레이션이 진행되죠. 19세기 유럽, 미국 스타일과 가까워서 호응을 얻은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이어 이 작가는 “19세기에는 당시 사회 및 현실를 반영한 소설이 많았고 기자들이 많이 썼다. 소설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 사회 부조리를 지적했다”며 “제 첫 소설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도 자본주의와 월가를 비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갔을 때 얼마나 안좋은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죠. 온건한 자본주의는 좋지만 극단적으로 치달을 때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처럼 19세기 유럽, 북미 문학들은 인종 및 계급 차별, 인종주의, 문화적 제국주의, 식민지 등을 다루고 있어요. 저 역시 정치적, 사회적 소설을 주로 쓰죠. 19세기 영문학에서 많이 다루던 주제들이어서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작가의도 살려 재출간된 ‘파친코’

이민진 작가
‘파친코’ 재출간으로 내한해 기자들을 만난 이민진 작가(사진제공=인플루엔셜)

 

“작가의 의도를 가장 많이 반영했다고 생각해요. 지난번 번역본과 비교하면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게 달라요. 1, 2, 3부 구성을 그대로 살려주셨죠. 더불어 한국판에만 있던 챕터 제목이 없어졌고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인용구도 그대로 해주시는 등 제 의도를 많이 살린 번역본이에요.”

출판사를 인플루엔셜로 바꿔 재출간한 ‘파친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이민진 작가는 “‘파친코’는 거의 평생을 걸쳐 집필한 작품이다. 한국을 비롯해 한국계 일본인이 겪은 스토리를 더 많은 언어로 전세계에 잘, 정확하게 소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는 사실 글을 느리게 쓰는 작가예요. 저널리스트처럼 취재와 연구를 많이 하죠. 책 한권을 쓰기 위해 수백명을 인터뷰하고 사전 연구를 많이 하는 작가입니다. 평생 단 두권의 책을 썼어요. 저에겐 고심해서 쓰는 단어 하나하나도 너무 중요해요. 그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는지가 중요한데 (새로운 출판사) 인플루엔셜은 번역에 대해 제가 많이 콘트롤할 수 있게 해줬어요.”

이는 제목 ‘파친코’를 고수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는 “파친코는 일본 말이지만 출판할 때도 반드시 영어로도 ‘파친코’여야 한다고 고집했다”며 “중요한 단어여서 전세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부분은 제 생각을 이해하고 옹호해줬기 때문이죠. 작가로서 일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판 아메리카 디렉터이기도 하고 미국작가협회에서 작가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작가로 일한다는 건 저항과 혁명의 행동이고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파친코’도 위험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길 바라면서 쓴 책이죠. 그걸 이해하고 옹호해준 출판사였어요. 저는 ‘파친코’를 읽은 사람들이 한국인을 만났을 때 그 얼굴 뒤에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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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재출간 예정인 ‘파친코’ 2권(사진제공=인플루엔셜)

더불어 ‘파친코’의 인기 요인에 대한 질문에 “인간적 면모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어서”라고 답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걱정하는 부분을 전세계 사람들이 공감하고 동의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을 보탰다.

“인종 및 계급 차별, 혐오 등은 인간 본성 중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인간을 억압하려 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그런 면들을 다루고 싶어요.”


◇‘마더랜드’로 시작해 ‘파친코’까지

“처음 책을 썼을 때의 제목은 ‘마더랜드’였어요. 책 한권을 다 썼는데 남편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재미없다고 했어요. 저 역시 못썼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책 중 한 챕터만 ‘파친코’에 반영했어요. 첫 버전의 주인공은 솔로몬이었고 선자도 없었죠.”

이렇게 전한 이민진 작가는 재일교포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북송사건과 탈북민에 대한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북송사건 관련해서는 극 중 캐릭터인 김장호를 언급했다.

 

그는 “한수를 위해 일하는 깡패인데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해 북송하는 캐릭터”라며 “(북송사업 배후에는 일본 정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테사 모리스-스즈키 호주국립대 일본역사학 교수 글에 일본에 있던 한국 사람들이 속아서 북송한 경우가 많다는 역사적 사실이 정확하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쌀밥을 주겠다, 아파트, 세탁기를 주겠다는 말에 적십자의 보호를 받으며 북한으로 돌아갔지만 죽거나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들이 많았어요. (‘파친코’ 중에서는) 김장호라는 캐릭터가 그 롤을 맡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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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재출간으로 내한해 기자들을 만난 이민진 작가(사진제공=인플루엔셜)

이어 탈북민에 대해서는 “가슴 아픈 일이고 어려운 문제”라고 표현했다. 그는 “저는 한국에 있는 한국인들 뿐 아니라 영국, 독일, 호주, 일본 등 여러 나라 퍼진 모든 한국 사람들에 관심이 많다”며 “같은 한국인이 한국 사람을 괴롭히는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같은 민족, 인종, 나라 사람이지만 남북한은 아직도 전쟁 중이죠. 남한에서도 북한을 아직도 적으로 보고 있어요. 남자들은 군대를 가고 전쟁을 대비해 훈련을 받죠. 일련의 상황을 고려할 때 무시할 수 없는 문제죠.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좋은 솔루션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플루엔셜 보도사진1] 이민진 작가 기자가담회
‘파친코’ 재출간으로 내한해 기자들을 만난 이민진 작가(사진제공=인플루엔셜)

◇차기작 ‘아메리칸 학원’


“(K컬처 열풍과의) 시너지와 글 쓰는 분들의 증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민진 작가는 최근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등장이 많아진 이유로 “한류 열풍과의 시너지와 글 쓰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증가”를 꼽았다.

“소프트 컬처 파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수출에 힘쓴 대한민국 정부의 노력 그리고 수많은 작가, 감독, 배우, 가수, 예술가 등의 노력과 희생으로 지금의 한류가 생겼죠. 미국에서도 저 같은 사람이 한류의 영향과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한국계 미국인들은 오래도록 창작활동을 해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숫자가 늘고 관심을 받는 저변이 형성됐다고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계 미국인 작가에 대한 관심과 지지도는 부족하다. 더 많은 한국인 작가와 아티스트가 더 잘돼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집필 중인 차기작 ‘아메리칸 학원’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교육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에요.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 퍼진 한국 사람들이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죠. 교육은 사람을 억압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고 사회적 지위, 부와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요.”

이어 이 작가는 “일각에서는 영어로 번역해 ‘아메리칸 아카데미’(American Academy)라고 하지만 이 작품 또한 ‘파친코’라는 일본어를 고수한 것처럼 ‘학원’이라는 우리말을 고수하고 싶다”고 말을 보탰다.

“버버리라는 옷의 형태를 영국 브랜드를 차용해 쓰는 것처럼 ‘학원’이라는 한국어를 차용어로 가져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원’을 이해하지 않으면 한국을 이해할 수 없거든요. ‘학원’은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한국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위 아 파워풀 패밀리 “모든 독자를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해!”

이민진 작가
‘파친코’ 재출간으로 내한해 기자들을 만난 이민진 작가(사진제공=인플루엔셜)

 

“가족이라는 개념 말고는 서로가 연결돼 있음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혈연은 아니지만 연결돼 있고 한데 속해 있는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민진 작가는 사인을 할 때마다 ‘위 아 패밀리’(We Art Family)라고 적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며 “가족은 연결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밝혔다.

“이번에는 ‘위 아 파워풀 패밀리’라고 써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들이 파워풀한 사람이라고 느끼길 바라요. 전세계적으로 더 많은 인정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고 ‘나는 정말 파워풀한 삶을 살고 있다’고, ‘내가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다’고, ‘가족으로 연결돼 있다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곤 “해결해야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지만 가족이라는 생각이면 모두 해쳐나갈 수 있다” 재차 강조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모든 독자들을 한국 사람들로 만들고 싶다고 얘기한다”고 털어놓았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을 때는 러시아 사람,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읽을 때는 영국 사람, 헤밍웨이 작품을 읽을 때는 미친 미국 남자가 되는 느낌을 받거든요. 주인공에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하면 그 사람이 돼요. 제 책을 읽는 모두가 한국인이 되고 한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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