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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강남 다음은 어디...100년 후에도 살아남을 도시는

입력 2024-03-04 07:00 | 신문게재 2024-03-0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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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문학자 김시덕 박사

 

“강남은 한국이 망하지 않는 한 영원할 것입니다. 70년대 정부가 버리면서 민간의 힘으로 큰 곳이죠. 이런 강남을 대체할 곳은 한국에선 더 이상 없을 것으로 봅니다. 경로 의존성 문제도 있는데, 한번 만들어진 경로를 바꿀 수 없다는 논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아성을 무너트릴 수 없단 얘기죠.”

 

지난 2월 초, 도시 문헌학자이자 도시답사가인 김시덕(49) 박사와 함께 역삼역 길을 잠시 걸을 때였다. ‘이 길이 왜 언덕인지, 저 골목길은 왜 좁은지, 스타벅스는 왜 여기에 위치해 있고 빌딩들 사이로 왜 모텔들이 있는지, 거리 간판 모양, 버스 정류소 위치, 화단까지...’ 길을 걸으면서 평소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내는 그의 모습에 역삼역 언덕 길이 새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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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박사는 도시를 답사할 때 한 곳에만 중점을 두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지역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왜 그럴까 하나하나 생각하고 분석한다.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도시의 흔적까지 찾아내 기록에 담고 있다. 물론 도시를 관찰하며 ‘왜 그럴까’ 생각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자신만의 노하우로 가설을 세워 답을 찾아 낸다. 하나하나 생각하고 그 생각에 대해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 소개했다.


김 박사는 오랜 시간 도시의 개발 역사와 현재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도시 문헌학자이다. 그런 그가 도시를 답사한지 올해로 30년째가 됐다. 동네 인근부터 지방까지 최소 일주일에 3번 이상은 답사를 다니며 전국 곳곳의 모습을 사진과 구글 문서에 기록하고 있다. 약속이 있는 날에도 몇시간 전에 약속 장소에 가서 그 지역을 돌아볼 정도다.

“저는 늘 걷습니다. 그래서 등산화를 즐겨 신고 있죠. 언제든지 산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인데, 일반적인 부동산 임장과 다릅니다. 갑자기 논길을 걷기도 하고, 산길을 걸을 때도 있습니다. 지난해는 익산 논길 걷다 대상포진에 걸리기도 했죠. 겨울엔 가시에 찔리는 일은 기본이예요. 1994년 대학시절부터 답사를 취미로 시작해 올해 30년 됐죠. 답사를 취미로 시작해서 그런지 여전히 힘들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그렇게 답사하면서 발견한 것들을 책과 SNS를 통해 전해왔다. 처음부터 부동산 투자 관점을 도입시켜 답사 내용을 전하지는 않았다. 그는 여러나라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전쟁을 해왔는지 연구하는 차원에서 답사를 해왔다.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학사·석사과정을 마치고 일본 국립 문헌학연구소인 국문학연구자료관(총합연구대학원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일본연구센터 HK연구교수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교수를 역임했던 그는 오로지 학자의 관점에서만 답사를 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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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문학자 김시덕 박사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의 답사 내용을 부동산 업계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임장’을 할때 많이 활용하게 되면서 “어디가 살기 좋은가”라는 관점에서 지역을 봐주길 바라는 사람들의 요구가 이어졌다. 인문학자인 그가 부동산 투자 관점을 도입시켜 답사를 기록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어디에 살(live) 것인가’, ‘어디를 살(buy) 것인가’ 관점에서 경제, 인문학,지정학, 정치를 넘나드는 다각적인 통찰로 한국 도시의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했다.  

 


◇ 강남은 영원하다

그런 김 박사가 최근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강남 다음에 어디가 뜰지”이다. 그 질문에 대해 그의 생각은 강남을 대체할 만한 곳이 없을 것이라고 답한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세종시와 공주시에 걸쳐 만들어졌을 행정수도가 새로운 강남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 뒤로 그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강남을 만들만한 정치적 역량을 가진 집단은 한국에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세종시는 강남을 대체하지 못할 것이고, 강남은 한국이 망하지 않는 한 영원할 겁니다.”

그는 오늘의 강남이 있기까지 대한민국의 국제 정세와 역사, 그리고 과정들을 설명했다. 서울시가 1970년에 출판한 ‘서울도시 기본계획 조정수립’에서 지하철 계획도를 한 사례로 꼽으면서, 당시 개발이 막 시작된 영동 지역, 오늘날의 강남 지역에는 지하철 노선 계획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 속에 출발한 강남이 오늘날 한국의 중심 도시가 됐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무관심했기 때문에, 철저히 민간의 힘으로 여기까지 성장했다고 할 수도 있죠. 특히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 중 하나인 송파구 잠실지구는 택지개발로 건설된 아파트단지, 수변 공간, 복합쇼핑몰의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해 탄생한 강남적 삶의 양식의 대표적인 곳이죠. 지금의 한국 신도시의 표준 모델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 박사는 강남의 미래를 보여주는 주요 사업으로 서울국제교류복합지구의 일환인 영동대로 복합개발과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경부고속도로 강남 구간을 지하화하고 지상 구간을 공원화하는 서울 리니어 파크 계획 등을 꼽았다. 영동대로 복합개발 사업은 서울국제교류복합지구 사업의 핵심을 이루면서, 대서울권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 강남 3구 집값은 이미 현재 천문학적인 가격이 형성돼 있다. 김 박사는 강남과의 집값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김 박사는 강남이 주거 지역으로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살기보단 사기 좋은 곳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여름 역삼역은 물에 안잠기고 강남역은 왜 잠긴 것일까요. 이는 정치적인 게 아니라 지형적인 이유 때문이죠. 사람들이 강남이라 괜찮겠지 방심하다 물 난리가 났던 것이죠. 강남이 언덕 지역인걸 조금만 걸어보면 아는데, 뭘 뜻하는지 생각은 안한 것이죠. 예전 부촌이 대부분 언덕에 있었던 것도 그런 재난적 이유 때문이었는데 말이죠.”

그는 100여 년전 ‘을축년 대홍수’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수해가 발생한 뒤에 조선 총독부가 작성한 자료엔 ‘한강하류부 범람구여도’라는 지도가 실려 있다고 설명한다. 그 지도엔 강남 대부분의 지역이 침수돼 있다는 것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치수 기술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상습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곳들이 많다며, 특히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을 꼽았다. “우면산이 자리한 강남은 원래 사람이 많이 살기 어려운 지대였죠. 여기에 도시의 모습을 갖춰놓은 게 지금의 강남이다보니 그간 마련한 치수시설만으로는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해가 발생하기도 하죠. 한마디로 재난지역인 셈이죠.”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살기 좋은 도시는 어디일까. “사실 개인 성향에 맞춰 살 곳 들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강을 좋아해서 경기도 파주 등에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산을 좋아하고 서울에 살고 싶은 사람이면 도봉구나 강북구가 잘 맞겠죠.”

무엇보다 집을 보는 관점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명 부동산 초급자들은 집을 볼 때 경제적 가치인 집 값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하자 아파트가 생기고 하는 것이지요. 그것 말고도 볼것이 꽤 많습니다. 연약 지반인지 집을 어떻게 지었는지 등 참고해야 할게 많다는 얘기죠. 부동산 좀 안다는 중급자들은 땅의 내력을 보기 시작하죠.”


◇ 한국 도시의 미래가 궁금하다

인구 감소와 극심한 지방 소멸 위기, 양극화 돼가는 부동산, 러·우 전쟁 등의 불안정한 국제 정세까지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도시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김 박사는 올해 그의 30년 된 답사 노하우를 과감하게 담아 ‘한국 도시의 미래’를 예측하는 서적을 펴냈다. “강남에서 땅끝마을까지 직접 답사한 143개 지역의 미래를 100여 년 부동산 역사와 330여 장의 사진으로 담아냈죠. ”

그가 책에 담은 앞으로의 한국 도시는 3대 메가시티와 6개의 소권역으로 집중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3대 메가시티는 대서울권, 중부권 그리고 동남권이다. 대서울권은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 경기도, 그리고 충청남북도와 강원도 일부를 포괄한다. 동남권은 해안을 따라 포항·울산·부산·창원·거제·사천·진주·하동·여수·순천·광양이며, 중부권은 세종과 대전, 청주 등이다. 나머지 소권역은 독립적인 산업벨트를 구성하고 있는 대구나 광주 등이다. 그리고 현재 새로 떠오르고 있는 개발 지역과 양양, 군산 등 관광지로만 소비되고 있는 지역들의 특색과 가능성, SOC 사업과 전철 착공에 따라 좌우될 지역의 미래,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 등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해 놨다.

도시문헌학자이자 도시답사가인 김시덕 박사가 부동산을 보는 관점을 한마디로 ‘범상치 않다’고 표현해야 할까. 100여 년전 문헌자료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도시 기본 계획까지 인문학적 눈으로 도시의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를 분석하는 그의 시도에 업계가 주목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채현주 기자 183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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