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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장애인 배제하는 친환경 정책… "정책 논의에 장애인은 없다"

비 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친환경 정책… ‘에코-에이블리즘’ 대두
뇌병변장애인에 대한 대안 없이 시행되는 플라스틱 빨대 금지 정책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정책수립 과정에 장애관점을 도입해야 할 것”

입력 2022-11-20 14:03 | 신문게재 2022-11-2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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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일회용 컵, 물티슈, 플라스틱 빨대, 배달용기, 비닐 위생장갑…. 지난 3년간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일상생활 전반에 다회용 대신 일회용 플라스틱 물품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플라스틱-지구촌’이었다.

동시에 무분별한 플라스틱 물품 사용에 대한 비판도 등장했다. 코로나19 팬더믹 기간 급성장한 배달서비스 시장이 환경파괴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도 줄이어 발표됐다. ‘탈 플라스틱-지구촌’ 운동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파괴와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탄소중립에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20년 12월10일에는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비전’이 선언됐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최대한 0에 가깝게 줄이고 ‘탈 플라스틱’ 사회로 진입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러한 친환경 정책에 반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 생산업체도 아니고, 일회용 컵을 수시로 사용하는 식음료업계도 아니다. 바로 장애인이다. 플라스틱과 자동차 이용이 필수인 이들에게 지금의 친환경 정책은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성된 또 하나의 차별적인 제도일 뿐이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에코-에이블리즘(Eco-ableism)’, 즉 친환경-장애차별주의 라고 부른다.


◇생명유지의 필수품 vs 환경파괴의 상징… ‘플라스틱 빨대’의 양면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뇌병변장애인은 음식을 먹을 때 누군가가 도와줘야 합니다. 특히 음료의 경우 입구가 쉽게 구부러지는 플라스틱 빨대 같은 도구가 있어야 섭취가 수월합니다. 만약 물병에 플라스틱 빨대가 없다면 뇌병변장애인은 종일 물을 먹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카페 혹은 음식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플라스틱 빨대는 오늘날 주류 식기가 되기 전 질병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발명됐다. 입구가 쉽게 구부러지는 플라스틱 빨대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물을 먹다가 폐에서 액체가 고여 폐렴에 걸린 채 사망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플라스틱 빨대는 신체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주변의 도움 없이 물을 섭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플라스틱 빨대는 환경파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는 24일부터 음식점·커피전문점·패스트푸드점·집단급식소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가 전면 금지된다. 이에 발맞춰 커피전문점·기업에선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거나 친환경 빨대로 여겨지는 종이빨대로 속속 대체하고 있다.

초국적기업 스타벅스는 지난 2018년 ‘그리너 캠페인’을 시작으로 매장 내 모든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빨대로 변경했다. 커피전문점 이디야, 엔젤리너스도 종이빨대를 구비해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플라스틱 빨대뿐만 아니라 포크와 나이프 같은 식기류도 다회용품으로 교체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식음료 기업들도 플라스틱 빨대 퇴출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2020년 한 소비자가 음료 팩에 부착된 빨대 부착을 금지해달라는 편지를 매일유업에 보낸 일이 있었다. 매일유업은 소비자의 건의를 받아들여 즉시 빨대 부착을 금지했다. 이러한 과정은 SNS를 통해 널리 퍼졌고 곧 다른 기업들도 음료팩에 부착했던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퇴출에 대한 정부의 정책 결정,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장애인의 목소리는 묻혀졌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한 활동지원사는 “와상장애인, 뇌병변장애인, 중증장애인,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의견이 환경정책·운동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플라스틱 대신 종이빨대를 사용하면 질식의 위험이 있고, 금속빨대를 사용하다 치아 건강이 훼손되기도 한다. 플라스틱 빨대를 모두 없애자는 건 장애인의 목소리를 지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서재경 성공회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교수도 “신체 건강한 사람에게 플라스틱 빨대는 그저 일회용품에 불과하지만 어떤 장애인에게는 생명줄 역할을 담당하는 필수품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관점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며 “이 모든 걸 무시한 채 이뤄지는 ‘에코-에이블리즘’은 장애인에게 분리, 배제, 소외로 인한 트라우마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불편함과 위협을 겪게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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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장애인도 환경에 관심이 있습니다”… 장애인 배제하지 않는 정책설계 ‘필요’

전문가들은 친환경 운동·정책 설계에 장애인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주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정책국장은 “작업수행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경우 요리나 설거지를 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비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을 배달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면 플라스틱이나 비닐 포장재가 많이 나오게 된다. 그럴 대마다 ‘플라스틱 파티’라는 자책감을 반찬 삼아 식사를 하곤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특히 뇌병변장애인은 기후 위기의 가장 직접적이고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집단이지만 일상에서 그 대응 실천이 가장 어려운 집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후 위기에 대한 대안과 정책을 논의하는 테이블에 이들이 초대되지 않고 있다. 당장 ‘에코-에이블리즘’을 타개할 근본적인 대안 제시가 어려워도 그 논의의 자리에 장애인 당사자들이 참여해 머리를 맞대면 작으나마 대안들이 고민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서 교수도 “현재 정부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회통합과 참여, 인간적인 삶을 정책슬로건으로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슬로건이 기후 위기에 따른 환경문제에 대하는 방식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라며 “친환경 정책 설계에 장애인 당사자들을 반드시 참여시켜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해 장애인의 권리를 담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환경 운동·정책에 장애 관점을 도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친환경 정책에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시킨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31일 국회는 노후한 시내버스나 마을버스를 교체하는 경우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해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고 저상버스를 구매할 때는 친환경버스를 우선적으로 구입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친환경 정책 입안 시 장애인의 시각을 고려해야 한다는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그동안의 기후 위기 대응 논의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진행된 것은 사실”이라며 “기후 위기 대응 논의에 장애 관점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후 위기 대응에 함께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경험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기후 위기 대응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 장애 관점이 도입될 수 있도록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논의의 장을 열어내는 데에 기여하겠다”고 전했다.

세종=이정아 기자 hellofeliz@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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