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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복수법률사무소’ 도진기 작가 “독자들도, 저도 즐거울 소설들을 쓰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2-12-23 18:30 | 신문게재 2022-12-2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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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 작가
‘복수법률사무소’의 도진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연재를 시작할 때만해도 ‘웹소설’이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습니다. 후배의 추천으로 살펴보니 엄청난 시장이더라고요. 당시 전 10년 넘게 115편 가까이의 소설을 썼지만 작품을 낼 때마다 예상된 반응 정도를 접할 수 있었죠. 작가로서 성장 없이 정체된 느낌을 받던 때였어요. 유지는 하고 있지만 더 앞으로 나아가기는 힘든 상황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후배 작가를 통해 처음 ‘웹소설’이라는 장르를 접했을 때를 도진기 작가는 “굉장히 새로운 데 눈 떴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4개월 간 네이버에 웹소설로 연재한 ‘복수법률회사’가 책으로 엮여 출간됐다.

도 작가는 판사이던 2010년부터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해 그 해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2014년에는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수상했다. 변호사 고진을 내세워 ‘붉은 집 살인사건’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 ‘정신 자살’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로 이어지는 ‘고진 시리즈’와 백수 탐정 진구를 주인공으로 한 ‘순서의 문제’ ‘나를 아는 남자’ ‘가족의 탄생’ ‘모래바람’ ‘세 개의 잔’ 등 ‘진구 시리즈’ 등을 집필하면서 꽤 탄탄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던 때였다.

 

도진기 작가
‘복수법률사무소’의 도진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웹소설’로 신세계를 만나다

“장르물의 특성상 기존 독자분들만 제 작품을 봐주시던 때였어요. 작가로서 그런 한계를 느끼던 차에 웹소설을 통해 새롭게 발전할 수도 있겠다 싶었죠. 판사로 일하면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새로운 일을 하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웹소설을 접하면서 그 비슷한 의욕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한번 새로운 도전에 나선 도진기 작가의 ‘복수법률사무소’는 자살로 위장된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이름도, 과거도 지운 젊은 변호사 윤해성이 테슬라에 비견되는 글로벌 자동차기업 한울모터스 총수가 된 양다곤 회장에 복수하는 법정극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윤해성을 중심으로 최연소 사무장 전기호, 베일에 가려진 여직원 방수희가 양다곤 회장을 비롯한 권력자들에 맞서는 도시 활극이기도 하다.

“저는 소설의 너무 지나친 묘사 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것들을 다 쳐내고 오로지 독자들에만 충실하게 전개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았어요. 독자 중심이죠. 저도 독자로 오래 살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묘사가 길거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작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쓰는 것 같은 작품 보다는 독자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제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죠. 웹소설 자체가 제가 바라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없이 몰입했던 것 같아요. 웹소설이 딱 그런 장르거든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웹툰, 웹소설, 오디오북 등 기술들을 활용한 작품들이 트렌드가 됐지만 이전까지만도 이 플랫폼들과 전통적인 종이책은 극명하게 양분된 시장이었다. 새로운 경향에 대한 경시도 없지 않았다.

“애당초 글을 쓸 때 순문학에 대한 동경이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대중친화적인 문화를 훨씬 더 가깝게 느끼죠. 순문학에서 저를 어떻게 보든 조금도 신경을 안썼고 순문학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도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대중친화적인 이런 매체에 아무 거부감 없이 도전했던 것 같습니다.”


◇법전문성으로 무장한 통쾌한 발차기

도진기 작가
‘복수법률사무소’의 도진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그 수요는 언제나 있었던 것 같아요. 법 절차로 악인을 제대로 처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너무 절실히 느끼고 있죠. 그 한계를 벗어나 악을 제대로 응징하는 걸 보고 싶어 해요. 무작정 통쾌함만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한국은 법으로 돌아간다는 인식을 국민 모두가 가지고 있고 다양한 이슈들이 법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의 수준은 높아가지만 (법적으로 처단이 어려운) 그런 아쉬움은 여전히 큰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치달으며 24.9%까지 시청률이 치솟은 송중기·이성민의 ‘재벌집 막내아들’를 비롯해 남궁민의 ‘천원짜리 변호사’, 이준기의 회귀물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등 최근 변호사 주인공이 거대 권력에 맞서는 ‘다크 히어로’ 콘텐츠가 각광 받는 이유도 그래서다. ‘복수법률사무소’ 역시 이같은 콘텐츠들과 궤를 같이 하는 작품이다. 도 작가는 ‘복수법률사무소’의 차별점으로 “법전문성”을 꼽았다. 

 

복수법률사무소_책입체3
복수법률사무소도진기 지음(사진제공=황금가지)
“대부분의 법정극들은 법 테두리 밖에서 취재를 통해 쓰여졌다면 ‘복수법률사무소’는 그 분야에서 25년을 일한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있는 이야기들이 담겼어요. 다만 너무 법적 전문성을 강조하다 보면 어렵고 몰입을 방해하기도 해서 법조인만 쓸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장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하죠.”

그리곤 “독자 반응에 ‘너무 어렵다’거나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은 없었던 것 같다” 웃으며 “독자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웹소설이 그래서 좋다”고 털어놓았다. 법률에 근거한 사실이나 조항이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말이 돼?”라고 반문할 만큼 불합리한, 법체계 자체의 문제가 이슈가 되는 경우에는 법조인으로서, 작가로서 균형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도 결국은 온전히 소화해서 독자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내야 하는 게 작가의 임무인 것 같아요. 법을 소재로 하다 보면 쉽게 쓰고 어렵게 쓰는 문제를 떠난 문제들이 생겨요. 출판사 편집자들조차 법률용어를 일상언어에 비춰 틀렸다고 생각하고 교정하는 경우들도 있거든요. 더불어 법적인 것에 대해 ‘이건 좀 잘못된 거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시고 잘못 알려진 법률 상식들도 있어서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일반인들의 상식과 법적 사실들의 괴리를 다루는 데 대해 이렇게 전한 도 작가는 “법에 대한 오해 혹은 오류 등 실제 상식과는 동떨어지는 부분은 툭 던지기 보다 캐릭터의 입을 빌어서 법조인들만 아는 것들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부연했다.

“저도 초기에는 그런 괴리를 겪었죠. 법조인으로서는 자명한 걸 썼는데 독자들이 ‘이게 뭐야?’ 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았어요. 그런 것들을 설명하거나 가르친다기 보다 작품 안에서 상황이나 캐릭터들의 대사를 통해 쉽게, 먼저 해명하고 가는 쪽으로 장치를 많이 두긴 합니다.”


◇즐거웠던 웹소설 집필 “이제는 정통 미스터리로 돌아갑니다!”

도진기 작가
‘복수법률사무소’의 도진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연재라고는 하지만 사실 저는 미리 써둔 상태에서 나눠서 올렸어요. 문득 이야기가 떠올라 쓰기 시작해 석달만에 완결했거든요. 원래는 연재하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수정도 하고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실시간 댓글들을 보면서 실제로 연재하면서 쓴다면 그 빠른 피드백들이 굉장히 큰 장점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은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쓰는 거니까요.”

‘독자’의 생각에 귀 기울이는 그의 글쓰기 성향은 그간 작품 속 주인공과는 다른 ‘윤해성’을 탄생시켰다. “너무 비현실적”인 것 같아 이전까지의 주인공들은 “잘 생기지 않은 그냥 중년 남자”였다.  

 

도진기 작가
‘복수법률사무소’의 도진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머리 좋은 변호사가 잘 생기기까지 하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그런데 독자들이 별로 안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스마트하고 비주얼 좋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완벽한 인물로 만들어 보자 했죠. 외모 등 완벽한 부분은 다르지만 판사에서 변호사가 되는 등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 제 안의 일부를 끄집어내기도 했죠. 법으로만 해결이 안되는 것들에 좀 해괴망측한 변칙을 동원하거나 괴상한 상상력을 동원해 사건을 조작하고 해결하는 것들은 제 내면의 어떤 충동이랄까요. 그런 것들을 풀어냈죠.”

층간소음 등의 에피소드는 시원하게 풀어내고 싶었던 상상력의 발현인 동시에 범죄와 통쾌함 사이에서 고심하며 균형을 잡으려 애쓴 노력의 잔해이기도 하다.

“웹소설을 쓰면서 되게 즐거웠거든요. 쓸데없는 배경 묘사 등 없이 법을 좀 마음대로 주물거리는 재밌는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어서 즐거웠죠. 다만 주인공의 복수 과정을 다룬 이야기다 보니 너무 비도덕적이거나 범죄처럼 비춰져 눈살을 찌푸리실 일이 없도록 적절한 선을 지키는 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이어 “제가 법정 추리를 쓰면서 제일 조심하는 것 중에 하나가 추리에 너무 치중하다가 법적인 틀이 복잡해지는 것”이라며 “정당방위, 일사부재리 등 누구나 아는 법적인 개념 정도를 써야 한다. 누구나 아는 개념으로 뒤통수를 치는 반전을 만드는 게 진짜 어렵다”고 덧붙였다.

“법적 트릭을 법과는 상관없는 일반 시민들께서 이해하면서도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제 작품 속에 제가 맡았던 사건이나 의뢰인에 대한 건 절대 차용하지 않습니다. 미디어에서 접했거나 구전되는 사건 등을 소재로 하죠. 충분히 동의되지 않은 타인의 삶이 절대 투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 글쓰기 철칙 중 하나예요. 그건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절대 안될 일이죠.”


◇결국 독자 중심! “독자도, 저도 즐거운 소설을 쓰고 싶어요!”

도진기 작가
‘복수법률사무소’의 도진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미스터리는 어려서부터 좋아했어요. 호기심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미스터리물은 결국 호기심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장르잖아요. 탐정이 계속 탐문하고 질의하면서 마지막에 관련 인물들을 모아놓고 풀어가는 과정이 너무 짜릿하고 제 호기심을 해소시켰죠.”

“실망스럽다”고 생각했던 한 일본 미스터리 작가의 작품을 평단도, 독자들도 열광하며 극찬하는 걸 보며 “이 정도면 내가 써도 되겠다” 싶어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초반에는 겁 없이 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초기작품 중 ‘정신 자살’은 정말 제 취향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서 썼어요. 그 결말에 사람들이 경악을 하고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려버렸죠. 그때도 독자 중심의 글쓰기를 추구했지만 독자들과 동떨어진 정서가 분명 있는데도 신경을 안썼던 것 같아요. 정말 겁 없이 오로지 제 취향을 밀고 나갔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독자’를 좀 더 생각해요.” 

 

이렇게 전한 도 작가는 “독자들이 바라는 걸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는 게 웹소설의 굉장히 큰 매력”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그 반응이 작가가 가고자하는 방향과는 반대되거나 휘둘릴 위험에 대해서도 도 작가는 “독자”를 먼저 강조했다.

도진기 작가
‘복수법률사무소’의 도진기 작가(사진=이철준 기자)

“사실 어느 정도는 휘둘리는 것도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워낙 대중소설이고 철저히 독자 지향 소설이잖아요. 그게 웹소설이고 장르물이죠. 당연히 좀 의식을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2017년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로 퇴직 후 변호사로 전직해 10년 넘게 도 작가는 “독자를 중심으로 한” 작품활동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곤 “이제는 정통 미스터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라며 “SF요소가 결합된 미스터리를 써보고 싶어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SF요소를 도입하면 미스터리의 폭도 굉장히 넓어지지 않나 싶어요. SF는 일종의 가정(If)아잖아요. 그 가정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좀 더 색다르게, 보다 근원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어 “미스터리 장르는 사회성, 시대성을 가장 많이 담보할 수 있는 장르다. 법조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긴 작품도 좀 쉽고 편하게 읽히게 쓰고 싶다”며 “제 작품 중 ‘합리적 의심’이 그 시도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사실 법은 자판기가 아니거든요. 같은 사건을 넣는다고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굉장히 많은 사례가 있고 법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심리 왜곡 등을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죠. 그런 법정심리극을 써보고 싶어요. 자판기처럼 똑같은 자료를 넣었을 때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사람으로 인해 왜곡되는 과정을 다뤄보고 싶어요. 법조인들은 알면서도 판결이 나는 것으로 끝이지만 저는 법조인이면서 작가여서 글로 뿌릴 수 있잖아요.”

자신만의 특성에 대해 이렇게 전한 도 작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성공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소수의 식자층과 다수의 마니아층에 동시에 사랑받으면서 굉장히 고평가를 받고 있는 몇 안되는 작가들 중 한분이시잖아요. 그런 분들 중에는 너무 어려운 소설을 쓰시며 고뇌하다가 권총 자살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아요. 살아서 모든 걸 누리고 싶죠. 독자들을 괴롭히는 소설보다 즐겁게 하고 재밌게 해주는 소설을, 저 역시 같이 즐거우면서 쓰고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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