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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연구부터 공연까지…매 순간 성장을 꿈꾸는 무용인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무용인 이지예

입력 2023-03-20 07:00 | 신문게재 2023-03-2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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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예 무용인. (사진=본인제공)

“무용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따라서 선택한 방과 후 활동이 무용이었죠. 방과 후 활동을 하면서 공연에 참여하게 됐고, 유명 무용수께서 제 모습을 보시곤 무용 전공을 권유하셨어요. 그땐 몰랐죠. 권유 한 마디에 제 삶이 온통 무용으로 뒤덮일 줄을요.”

 

이지예 무용인(36)은 처음 무용을 시작한 계기를 담담히 전했다.

그가 무용을 시작한 계기는 ‘우연’이었다. 하지만, 시작을 제외한 모든 순간엔 ‘철저한 노력’이 함께했다.

“관심이 있던 분야도 아니었는데, 시작하고 난 뒤엔 정말 지독하게 했어요. 예중 입시까지 5개월의 시간밖에 안 남았었거든요. 오전부터 저녁 9시까지 쭉 연습만 했어요. 사실 13살에 무용을 시작한 거면 정말 늦은 편이거든요. 아무리 짧게 준비해도 2~3년은 준비하니까요. 주변에서 늦었다고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어린 마음에 초조함이 컸었나 봐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독하게 했던 것 같아요.”

이 씨의 열정은 결국 행복한 결말로 이어졌다. 연습에만 몰두했던 13살 소녀는 이듬해 예원학교 무용과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예원학교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문 예술 중학교다.

그는 중·고교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말 경주마처럼 무용만 봤어요. 친구와 놀았던 기억도 없죠. 학창 시절 추억 부분에서 아쉽기도 해요. 하지만, 무용만 생각한 덕분에 심적으로 많이 안정될 수 있었어요. 크게 불안하지 않았거든요. 앞으로 살면서 다시 그때와 같은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 싶네요. 인생에서 무언가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일이 흔치 않잖아요.”

모두의 삶이 그렇듯 이 씨의 무용 인생도 내내 꽃길만 같진 않았다. “슬럼프 당연히 있었죠. 고3 막판에 대학 입시를 앞두고 3개월 동안 학교를 못 갔어요. 몸이 정말 안 좋았거든요. 사실 수험생 시기는 열심히 해도 불안할 때잖아요. 그런데 팔을 아예 움직일 수조차 없었으니까요, 어린 마음에 입시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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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위에서 공연 중인 이지예 무용인. (사진=본인제공)

 

우려와 달리 대학입시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대학 입학 이후 방황이 시작됐다. 그는 10대 시절 놀지 못한 한을 그때 다 해소한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씨는 “3개월 동안 열심히 놀고 나니 노는 일은 나와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재미가 없었다”고 표현했다.

“생각했던 무용이 아니었어요.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열정이 있으면 다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죠. 대학생이면 이제 성인이잖아요. 일종의 사회생활이니 어느 정도 눈치를 봐야 했죠. 금전적으로도 뒷받침도 더 필요하기도 했고요. 다양한 상황들을 이해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 씨는 결국 한 학기를 마치고 무용을 외면한 채 다른 분야를 살피기 시작했다. “무용이 아닌 어떤 일에 흥미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바리스타, 플로리스트, 쇼콜라띠에(초콜릿 전문 셰프) 등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어요.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니까 뭘 좋아하는지 궁금했거든요. 하지만, 결국 돌아왔어요. 다른 일을 할수록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용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되살아난 무용에 대한 열정은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다. 대학원 재학 기간 동안 전통 작품에 대해 많이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이 씨는 대학원 생활을 통해 ‘교육자’의 꿈을 구체화했다고 한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아이들을 잠깐씩 가르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가르치는 일이 제게 더 맞는다는 걸 알았죠. 특히 생활적인 면에서 그렇게 느꼈어요. 공연 연습은 다수의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서 해요. 선생님도 무대 위에 서는 분들이라 연습 일정은 유동적일 수밖에 없죠. 정해진 루틴을 좋아하는 터라 규칙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때 좋아하는 무용을 길게 하려면, 성향에 맞춰서 고정적인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가르치는 일도 적성에 맞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죠.”

그가 안정적인 교육자의 삶을 포기하고 개인 사업자로서 나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처음에 무용학원을 통해 가르치는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굉장히 반대하셨어요. 안전하게 학교로 들어가는 길을 놔두고, 개인 사업자가 되겠다고 하니 걱정되셨나 봐요.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오셨거든요. 그런데 저는 학교 같은 곳에 소속되는 것보다 제 이름 걸고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결국엔 아버지껜 비밀로 하고 어머니와만 상의하면서 일을 저질렀죠. 학원 차린 지 3개월이 지났을 때 결국 아버지께 들키긴 했지만요. 엄청나게 혼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응원해주시더라고요. 학원 모습을 보니 믿음직스러우셨던 것 같아요. 그때 응원해주신 부모님께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 씨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틈틈이 무대를 찾는다. “지금은 임신 중이라 무대에 서지 못하지만, 아이를 갖기 전까지만 해도 공연을 계속했어요. 그래서 공연에 대한 갈증은 없는 편이죠.”

그런 이 씨에게도 그리운 부분이 있다. “10대, 20대 시절의 몸이 그립긴 하더라고요. 최상의 컨디션을 갖췄을 땐 뭘 해도 무섭지 않아요. 근력도 힘도 에너지도 모두 갖췄기 때문에 그 시기엔 무엇을 받아들일 때 겁 없이 다 흡수할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단 나이가 들었으니 힘도 빠지고, 동작할 때 숨이 차기도 해요. 그래서 무대에 서고 나면 컨디션이 좋았던 전성기 시절을 그리워하곤 해요.”

이지예 씨가 무대 밖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기본기’다.

“깨끗한 동작을 만드는 게 1번이라고 아이들에게 항상 이야기해요. 교육자의 입장이 되니까 군더더기 없는 춤이 왜 중요한지 알겠더라고요. 결국 무용은 춤의 느낌을 살리는 게 포인트죠. 하지만, 동작이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감정이나 느낌을 넣으면 관객은 결코 무용수의 움직임에 공감할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해요. 그렇다고 기본기만 갖추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 역시 피해야죠. 관객이 ‘저 무용수 춤 참 잘 춘다’고 생각하게 하려면 기본기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해요. 손가락 각도, 몸의 균형 등 어디 하나 삐뚤어지지 않은 동작을 완성하고 나서 감정이나 느낌을 살리는 작업이 이뤄져야 합니다. 무용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렇게 말할 거예요.”

이 씨는 교육자로 나서면서 무대 위에 설 때와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

“무대 위에선 안무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편이에요. 개인마다 장점과 개성이 있지만, 무용수는 안무를 만든 사람의 의도를 잘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칠 때만큼은 제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어요. 라인과 춤의 형태 같은 요소를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르치죠. 제자들이 제 느낌을 좋아해 줘서 다행으로 생각해요.”

무용인 이지예 씨는 여전히 성장을 위해 노력한다.

“지금은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교육자로 살고 있지만,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의 성장 역시 놓치지 않고 싶어요. 그래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죠. 우선, 한국전통문화연구원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어요. 궁중무용을 ‘정재(呈才)’라고 하는데, 정재를 연구하며 공연하는 곳이죠. 또 국가 무형문화재인 처용무 전수자 교육도 진행하고 있어요. 이제 시험만 보면 되는 상태인데, 아이를 가진 상태라 시험 시기는 출산 이후로 미뤄질 것 같아요.”

앞으로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이 씨는 “지금까지처럼 가정과 일의 균형을 잘 맞추면 살고 싶어요. 저 무용 정말 좋아하거든요. 출산 후에 한국전통문화연구원에서 공연도 다시 하고, 처용무 교육도 마무리하면서 한 단계 성장한 무용인, 무용선생님으로 거듭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김아영 기자 aykim@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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