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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외국 사람들이 기모노에 찬사를 보내는 것에 발끈했죠"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김예진 한복 명장… '한땀 한땀' 한국을 수놓다

입력 2016-05-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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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진 명장은 “한복도 창작예술의 감각으로 접근한다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김예진 한복)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전 영국 런던을 찾았다. 디자이너 전공자로 그들의 패션을 보고 연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일과였다. 하루는 런던 해롯백화점을 찾았다. 거기서 ‘욱’했다. 일본 전통 옷인 기모노 전시관 앞에서 영국인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선이 곱다고 했다. 화려하다고 했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 자리에서 쉽게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몇 번씩 내뱉었다. “우리 옷이 더 곱고 아름다운데…”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 광경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몇 번씩 되뇌었고 곱씹었다. ‘동양의 신비’를 기모노에서 찾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힘들었다. 자신의 고집인지, 한국인 특성의 자존감인이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냥 억울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 길로 바로 한복 공부를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자료를 찾았다. 동료들이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그는 한복 바느질을 했다. 김예진(50) 한복 명장이 한복디자이너로 첫발을 내딛은 계기다.

김예진 명장은 지난해 대한민국 신지식인(문화예술)으로 선정되면서 ‘한복’에 대한 관점을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명장이라는 호칭을 얻은 것도 이런 이유가 컸다. 단순하게 한복을 만들기보다는 한복이 가진 아름다움을 알리는데 더욱 힘을 쏟은 결과다.

“이 상이 저한테 큰 의미를 준 것은 한복이 단순한 의복이 아닌 ‘문화’로 다가오고 있다는 거에요. 한복은 우리 일상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라는 인식은 저한테도 큰 선물이에요.”

김 명장은 자신을 향해 항상 “운이 좋았다”고 했다. 1989년 자신의 이름을 딴 ‘김예진 한복’을 세운 이후 각종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신여성’, ‘한복유망주’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물론 쉽게 얻은 명성은 아니다. 한복은 3개월 고통, 6개월의 고난이라고 한다. 한복 제작기간 3~6개월 동안 ‘한땀 한땀’ 바느질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한복 바느질 기법을 두고 세계 디자이너들이 찬사를 보내는 이유도 여기 있다.

“밥 먹듯이 밤을 샜어요. 한복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노력을 해야 실력 차이를 좁힐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특출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복이라는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미술, 화학(염료), 한복과 연관되는 것은 닥치는 대로 공부했어요.”

회사 창립 이전에 신세계백화점에서 같이 일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울 역삼동에 신혼생활관을 개관하면서 한복담당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곳에서 김 명장은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읽었다. 한복은 사람들의 체형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 생각까지도 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3년 후 ‘김예진 한복’을 창립한 이후 놀라운 일들이 쏟아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의 노벨평화상 시상식 의장을 맡은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현재 미국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과 반기문 UN사무총장 부부, 미 영화배우 안소니 퀀, 니콜라스 케이지, 미국 미식 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 이승엽·이봉주·추성훈 선수에 이르기까지 유명 명사들의 한복을 담당하게 됐다.

그들이 김 명장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김 명장의 한복에는 ‘색감’이 살아 있다는 것.

“유명 인사들의 한복을 담당하게 된 것도 주위 사람들이 소개를 했기 때문에 운이죠.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죠. 색감을 잘 쓰고 바느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한복 디자이너로서 무엇을 더 얻고 싶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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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진 명장은 “한복도 창작예술의 감각으로 접근한다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헀다. (사진제공=김예진 한복)

 

그가 전하는 비법은 단순하지만 우아하다. 직선과 곡선, 그리고 담백하면서도 화려한 색감, 여기에 ‘수’를 놓아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김 명장은 여기에 ‘겸손’을 담아야 한다고 했다. 하얀 화선지 위에 채색을 할 때 겸손함이 없다면 화려한 색은 오히려 바래진다고 했다.

“한복의 색은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합니다. 내가 만드는 옷의 주제는 주문한 사람마다 필요성이 달라 어떤 곡선과 색을 쓰는지에 따라 옷의 형태도 달라집니다. 하얀 화선지 위에서 조상이 전해준 가르침과 내가 가진 기술과 열정을 쏟아야 하는데 자만하고 기교를 부린다면 한복이 아닌 천에 지나지 않겠죠.”

김 명장은 한복을 우리나라 문화의 중요한 축으로 생각한다. 삼국시대에 옷이 바뀌는 것은 곧 시대가 바뀌는 것을 뜻했다. 쉬는 날이면 역사책을 뒤지고 미술관을 찾는다. 한복이 시대를 반영하듯 ‘퓨전’이 아닌 전통을 시대적으로 계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난해 연말 중진작가 김일해 화백과 함께 한복과 미술의 만나는 공동전 개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즘은 융합시대라고 하잖아요. 대학 시절 현대 미술사를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미술의 미학적 통섭과 상호 보완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한복도 창작예술의 감각으로 접근한다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 명장은 한복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낮은 인식은 불편하다. 이웃 일본은 정부나 사람들이 기모노에 투자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일본인들은 수천만원짜리 기모노를 구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한복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죠. 한복이 기념일에만 입는 옷이 아닌 문화적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바꿔줬으면 합니다.”

김 명장은 올해부터 ‘한복연구가’라는 직함이 하나 더 생겼다. 한복을 만들 수 있는 소재를 찾아서 전국을 뒤지고 다닌다. 또 TV방송에 출연하고 드라마에 한복 자문 활동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한복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한복의 색감은 자연에서 찾습니다. 한복을 입는 것은 자연을 입는 것이죠. 제가 한복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옷이라고 믿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해롯백화점에 한복 전시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아직 버리지 않았습니다.”

최재영 기자 sometime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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