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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가족이 죽어도 쓰레기 봉투에 버리나요?

[이희승 기자의 사적라이프] 14년 같이 산 반려견 토비, 펫로스보다 무서운 이별과정

입력 2022-06-30 18:30 | 신문게재 2022-07-0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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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가 떠났다. 간만에 떠난 해외출장이 10일 정도였는데 귀국 3일 전부터 곡기와 물을 끊었다고 했다. 휴대폰 너머로 시어머님이 “네가 버리고 간 줄 아는지 기운이 하나도 없더니 이제는 걷지도 못한다”고 했다.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으면 빨리 오라는 말과 함께. 가슴이 찢어졌다.  


티켓을 바꾼다고 해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때문에 모스크바 경유가 안되는 탓에 최소 18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페이스톡을 모르던 어머님은 손자인 내 아들에게 방법을 배워 결국 “마지막 인사라도 해라”며 토비의 모습을 비춰주셨는데 그때가 하필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탄 송강호의 이름이 불린 직후였다.

프레스 센터에 모여있던 각국의 취재진들은 눈물을 펑펑 흘리는 나를 보고 “축하한다”며 미소지었다. 타 매체의 기자들은 내 사정도 모르고 어리둥절해서 “상은 송강호가 탔는데 왜 네가 우냐?”며 농담을 했다. 몇 분 뒤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으로 호명되면서 더이상 울 수도 없었다. 한국 영화역사상 두개의 트로피가 칸영화제에서 나오는 역사적인 현장이었고 다음날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기사를 마감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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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의 쌩쌩하던 모습. 점프력이 흡사 토끼같았던 토비는 하루에 18시간 이상 자고, 느릿느릿 걸으며 점차 늙어갔지만 미처 알아채진 못했다. 그게 마지막인 줄은.(사진=이희승 기자)

두바이를 경유해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21시간.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하필 오후 5시였다. 집에 도착해 토비를 보니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걷지 못하는 탓에 배변 패드 위에서 볼일을 보면 하반신이 모두 젖었기 때문에 해둔 임시방편이었다. 


캐리어를 집 현관에 놓자마자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저녁진료는 6시면 마감이라고 했다. 24시간 동물병원을 수소문해 데려가니 탈수증이 심하다고 했다. 노견이기도 하고 수액을 맞힌다고 해도 며칠 정도밖에 못 버틴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미동도 않던 토비가 나를 보고는 힘없이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니 다시 살아날 거란 확신이 있었다.

그 날부터 토비의 병간호가 시작됐다. 사료는 입에 안 댔지만 스팸을 잘라주면 곧잘 먹었다. 베지밀 냄새가 나는 연명식은 물 대신 먹였다. 고통을 덜어준다는 스테로이드 약도 처방받아 섞어주니 누워있다가 고개도 제법 들었다. 시간마다 기저귀를 갈아주며 “내 자식들보다 토비 너의 기저귀를 더 많이 간다”며 농담도 건넸다. 그렇게 2주 후 토비는 내 곁을 떠났다.

꼬똥 드 뚤레아 종인 토비는 아이 없이 딩크 족으로 살던 내게 당시 다니던 신문사의 국장이 “잘 키워줄 것 같다”며 안긴 아이였다. 지금은 인기견이 됐지만 당시엔 국내에서 300마리도 되지 않는 귀한 녀석이었다. 국장이 나를 편애해서 줬다기 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토비가 크는 걸 보고싶어하는 눈치였다. 당시 토비의 엄마인 루비는 두 마리를 낳았고 그 중 가장 털결이 예뻐 차마(?) 팔지 못했다고 했다. 가정입양을 보낸 또다른 꼬똥은 지방이어서 자주 만나지 못했고 당시 골든 리트리버를 자식처럼 키우고 있는 내가 적격이라고 보신 것 같았다.

나는 당시 경리단에 있는 방 두개 짜리 빌라에 살고 있던 터라 루크(11살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마당이 있는 친정에 맡긴 상태였다. 태어나서 개 없이 살아본 적이 없던 나는 회사와 가깝고 새벽 6시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가도 어색하지 않은 놀거리 가득한 동네를 떠나기로 결정해 이사를 앞두고 있었기에 기꺼이 토비를 받아들였다. 


루크와 토비는 금방 친해졌다. 덩치는 차이가 났지만 든든하고 우직한 아들과 깨방정 막내를 동시에 키우는 느낌이었다. 이후 루크는 첫 아들이 태어나고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살았는데 내가 미국 출장을 간 사이 눈을 감는 바람에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귀국해 보니 시아버님이 앞마당 모화과 나무 밑에 묻은 뒤였다. 이후 그 집을 떠날 때 파보니 하얗게 뼈만 남아있어서 잘 추려 상자에 담아 친정으로 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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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는 내 아이들의 탄생을 본 유일한 강아지다. 아이들에게도 이별할 시간을 줬는데 의외로 엄마인 나보다 덜 울면서 꿋꿋하게 말했다. “토비야 아프지 말고 또 와야해”라고.(사진=이희승 기자)

이 글은 정확히 펫로스에 대한 고통보다는 반려동물의 장례에 대한 것이다. 토비를 보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급속도로 말라가는 모습을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내 죽음과 곧 나에게 닥칠 양가부모의 마지막 가는 길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솔직히 물을 먹일 때마다 받혀야 하는 머리의 무게가 고작 5분이지만 무거웠고 동시에 무서웠다. 내 마지막길이 이렇게 무기력하지 않기를 바랐고 부모님의 마지막이 이렇다는 상상만 해도 괴로웠던 것 같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고 밤새 괴로워하며 헐떡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수시로 누워있는 방향을 바꿔줬는데도 뺨 부분에 털이 빠지고 빨갛게 변해 병원에 갔더니 욕창이 시작됐다고 했다. 마지막 며칠은 30분 마다 깨서 아프다고 울부짖었다. 담당 선생님은 더이상 해 줄게 없다고 하셨다. 안락사를 예약하고 온 저녁에는 관절염이 시작된 후 단 한번도 뛰어올라오지 않았던 침대에서 다 같이 잤다. 

그러고 보니 토비는 내 아이들이 태어난 걸 모두 본 내 유일한 개이자 첫 아들이었다. 죽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쓰고 싶지 않다. 트라우마 때문에 심장이 멈추는 마지막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지만 잠들 때까지는 곁에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너무 울어서 눈물이 마른다는 걸 실제로 겪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고이 잠들었던 토비는 인형이  되어 내 품에 안겼다. 알고보니 동물은 눈을 감고 죽지 않는단다. 원하면 감겨준다고 했다. 요즘 추세는 자연적으로 두는 추세라 나 역시 그대로 둬 달라고 했는데 심장이 멈춘 채 돌아온 토비는 그야말로 박제된 동물처럼 또렷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았다. 죽은 동물을 묻는 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수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화장을 할 건지를 물었고 알고 있는 장례업체가 있는지를 되물었다. “친정 집 마당에 묻으려고 한다”고 하자 엄밀히는 불법이라고 했다. 동물화장터가 불법인 경우가 많아 병원에서 추천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불법 화장시설에서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르는 무허가 업체들의 뉴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실질적인 단속은 지자체에 맡기고 있는 상태로 동물 사료, 동물 미용, 동물 장묘 등 반려동물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담당 부서의 공무원은 단 4명으로 알려졌다. 그 중 장묘에 관련된 사람은 단 1명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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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전철 안에서 만난 강아지 복제 추모 서비스.문의해보니 부가세 별도로 150만원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다. (사진=이희승 기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조9000억 원 규모였던 국내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2020년 3조4000억 원으로 커졌고 오는 2027년에는 6조 원대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가족처럼 함께 살았지만 동물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쓰레기봉투에 담겨 생활쓰레기로 배출되거나 동물병원에 맡겨 의료용 폐기물로 ‘처리’된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동물의 사체는 폐기물이기 때문에 야산 등에 묻는 것은 불법이다.

 

부랴부랴 알아본 집 근처 반려동물장례업체 한곳에서는 “모두 예약이 돼 있어서 빨라야 3일 뒤에나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나마도 ‘냉동’ 상태로 보관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체온도 식지 않은 토비를 화장하기 위해 냉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고보니 나 같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애니멀 피플이 진행한 ‘반려동물 장례 인식조사’에서 동물의 죽음을 경험한 반려인들이 가장 부족한 점으로 많이 응답한 것도 ‘장례식장 등 정보 부재’(33.3%)였다. 응답자 가운데 실제로 장례를 치른 경험은 39.1%에 불과했다.

14년을 함께 살았던 토비를 합법이란 이유로 쓰레기 봉투에 버리는 짓은 결코 할 수 없었다. 주변의 추천을 받은 B업체는 거리도 멀었지만 가격도 기대 이상으로 비쌌다. 염습과 화장, 봉안까지 70만원이었다. 그나마도 15kg 미만이고 오후 마감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달렸다. 차마 “더 저렴한 건 없나요?”란 질문은 할 수 없었다. 속물스럽지만 안락사비로 16만원이 결제되던 순간 ‘비록 결정은 내가 했지만 직접 주사를 놓는 값이 싼 건 아니야’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운명인지는 몰라도 토비가 떠난 후 우연히 제3의 장례식 광고를 봤다. 죽은 반려동물의 체세포를 보관하는 서비스였다. 크리오아시아 측 관계자는 “죽은 반려동물의 아랫배에 엄지손톱 만한 피부를 채취한 뒤 봉합하는 과정을 거치며 DNA를 복제해 챔버라는 곳에 영구보존한다”면서 “1년 보관 후 매년 15만원 정도의 보관료가 추가되며 한달에 평균 10명 정도의 이용객이 있다”고 밝혔다.

먼 미래의 이야긴 줄로만 알았던 냉동보관이 반려동물까지 해당되는 시대다. 결국 나는 토비를 내 가슴속에 묻었다. 토비야! 다음번에도 내 아들로 와주렴. 곧 다시 만나!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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