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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여기저기 봄,봄,봄… 워킹맘의 진정한 '봄'은 언제나 오려나

[이희승 기자의 사적라이프] 돌봄교실과 방과 후 교실, 거기다 늘봄교실까지 등장한 학교
고달픈 학부모의 삶, 저학년이라 더 '맵다매워'

입력 2024-04-11 18:00 | 신문게재 2024-04-1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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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고 설레는 입학식
신나고 설레는 입학식.(연합)

  

돌이켜 생각해보면 첫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유난의 극치였다. 30대 중반에 아이를 낳고 모든 게 서툴렀는데 아마도 ‘이 아이가 내 마지막 임신과 출산’이란 기저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흔 하나에 둘째를 낳고 회사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워킹맘이 된 채로 아들의 등교를 지켜봐야했다. 대신 남편이 육아휴직을 냈다.

올 초 그 핏덩이 딸이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6살 무렵부터 육아휴직을 내야하나 말아야 하나 회사의 눈치도 좀 보고 운도 떼어봤으나 결국 부부합의 하에 둘 다 내지 않기로 했다. 다만 확고한 것은 돌봄교실에 아이를 두지 않고 최대한 학원보다 방과 후 교실을 적극 이용하고 그것도 안되면 주 1회 정도 연로한 시부모님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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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육아에 대해서는 운이 좋은 편이다. 정시퇴근이 보장되지 않는 직업인 나보다 야근과 회식문화가 없이 8시 출근, 5시 퇴근인 남편이 부리나케 집에 오면 6시가 채 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4시까지 봐주는 유치원과 달리 모든 워킹맘의 고민은 1시도 채 안되는 초등학교 1학년의 하교 시간이다. 학부모로서 자녀의 초등학교 진학은 일하는 엄마(워킹맘)들이 퇴직을 가장 많이 고민하는 시기다. ‘워킹맘의 무덤’이라 불리고 있는 건 그래서다. 

 

 

윤석열 대통령, 늘봄 프로그램 일일 특별 교사
윤석열 대통령, 늘봄 프로그램 일일 특별 교사(연합)

 

7년 전 호기롭게 5시까지 아이를 돌봄교실에 맡겼다. 가끔은 직접 학교로 데리러 가는 날도 있었다. 대부분 종이접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수준이었는데 한 눈에 봐도 교실 안에 아이들을 안전하게 모아둔다는 느낌이지 교육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힘듬을 알아챌 수 있었다. 도시가 아닌, 한 학년에 교실 두개가 전부인 소박한 학교라는 데 기대가 컸다. 하지만 한 달 후 그 생각은 철저히 깨졌다.

그 학교에 입학한 맞벌이 부모의 자녀들은 우리 아이만 빼고 휴대폰이 있었다. 담당 교사의 눈을 피해 교실 구석 어디에선가 휴대폰으로 동영상만 몇 시간을 보고 집에 가기 일쑤였다. 당시 고작 2, 3학년짜리 형들이 휴대폰이 있네 없네로 계급을 나누거나 왕행세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하필 이 시기에는 국가 예산 문제도 있었는지 색종이 한장이 학생에게 주어진 전부였다. 뛰어놀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들임에도 늘 “심심하다” “형들이 무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중에 다른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들었던 말이 “돌봄 교실을 보내느니 학원을 돌리는 부모들이 바보가 아니다. 무언의 금쪽이들이 몰려있어서 선생님들도 포기했다”는 것. 부랴부랴 뒤늦게 방과 후 교실을 신청하려고 했지만3개월 단위로 미리 신청을 받는 탓에 한 학기는 그야말로 몸이 아닌 돈으로 첫 학기를 보내야 했다.

그때의 소중한 경험을 살려 딸의 방과 후는 자신있었다. 근거리에서 아이를 봐주는 시부모님이 계시지만 최대한 학교의 테두리 안에서 아이를 두는 게 목적이었다. 초저출산의 영향으로 왕년의 재학생 수에 비해선 절반 정도밖에 안된다고 해도 아들이 다닌 초등학교보다 커서인지 믿음도 갔다.

하지만 입학 첫 주부터 불면의 밤을 보내야했다. 학원처럼 수업을 신청해 듣는 ‘방과후학교’와 돌봄전담사가 봐주는 ‘돌봄교실’의 사이에서 ‘늘봄학교’가 등장했는데 올해부터 1학년이 수혜자다. 교육부는 몇달 전 ‘늘봄학교’ 도입을 발표했는데 ‘희망하는 초등학생에게 정규수업 전후로 양질의 교육·돌봄을 제공한다’는 정책을 내놨다. 전업주부와 워킹맘 할 것 없이 신청자들은 모두 들어갈 수 있다. 지난 달부터 5개 지역 214개교에서 시범운영이 시작됐고 얼마 전엔 “8일 기준 203개교에서 희망 학생의 99.2%가 만족했다”는 자료를 내놨지만 현실은 달랐다.

 

전교조, 늘봄학교 실태조사 결과 발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3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1학기 늘봄학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그나마 감사한 건 딸의 학교에서 늘봄교실의 운영 강사를 한달 만에 빠르게 모집해 운영에 착수했다는 사실이었다. 운 좋게 딸의 학교는 늘봄학교를 운영했지만 새학기 3주차부터 시작되는 방과후 학교로 이동하는 게 불가능했다.

딸이 하고 싶다는 방과 후 교실인 방송댄스와 요리교실, 음악줄넘기를 하려면 1교시만 하고 가거나 주 2회는 빠져야 했다. 학교에서는 중도입실과 퇴실이 가능한 돌봄을 권했고 늘봄은 빠지는 학생의 집중도를 고려해서인지 조심스럽게 “솔직히 대기자들도 많으니 연장하지 말아달라”는 말을 들었다.

문제는 늘봄학교 역시 학부모들의 참여도와 만족도 조사 후 더 연장할지 안 할지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자칫 늘봄학교가 2주간의 시범기간 동안 기대치에 못 미쳐 무산된다면 방과후 교실을 부랴부랴 신청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사전에 등록하지 않으면 이 역시 어렵다. 그렇다고 새로 시행되는 늘봄학교 ‘만’ 보내기엔 정작 본인이 듣고 싶은 수업은 할 수 없었다. 이 방과후 교실도 문제가 많은 게 1~6학년이 동시에 듣는 수업이라 일찍 끝나는 1학년은 많게는 3시간 적게는 1시간 정도의 시간이 비는 탓에 아이들이 방치된다.

 

돌봄교실 참여한 어린이들…늘봄학교 2천700개교에서 운영 시작
돌봄교실 참여한 어린이들…늘봄학교 2천700개교에서 운영 시작(연합)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이걸 아이디어라고 내 놓은 사람들은 모두 재벌이라 집안에 가정교사를 두고 사나?”싶었다. 기껏 2주짜리 정책을 위해 교원들의 업무를 과중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돌봄전담사들의 전문성은 누가 증명할 것인지도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다만 각종 교육정보 커뮤니티에서 그 온도차를 가늠할 수 있었다. “방과후 교사로 근무 중인데 늘봄수업이 가능하냐고 해서 고민이다” “한시적 일자리라 지원할까말까?” 등의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정부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8시까지 돌봄을 지원해줄 것처럼 말했지만 출근이 이른 학부모들의 자녀들을 배려한 아침 돌봄은 도대체 어느 학교가 운영하는지 궁금했다. 아이가 다니는 늘봄 프로그램도 오후 3시면 끝나는 시스템이었지만 불평할 수 없었다. 이게 어딘가 싶어 마음을 가다듬고 커리큘럼을 찬찬히 살펴보니 꽤 알차다.

창의미술과 그림책놀이, 놀이영어까지 40분의 수업시간과 정리 10분이 포함된 총 2교시가 진행된다. 현장에서 뛰는 교사들의 노고가 전달됐다. 하루아침에 내려오는 수많은 지침들 속에서 교육자로서의 고충이 충분히 가늠됐다. 무거운 마음에 손편지를 썼다. 두 가지 다 포기 못하는 욕심많은 엄마이니 제발 이번 학기만큼은 시작한 늘봄 교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부디 일주일에 두번 1교시만 하고 방과 후 교실 수업 참여를 위해 나가도 이해해 달라고. 그렇게 또 하루치 불면의 밤이 지나갔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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