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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왕년의 댄싱 퀸, 줌바(Zumba)에 도전하다!

[이희승의 사적라이프] 40대 아줌마의 줌바댄스 도전기
1시간에 1000kcal 태운다는 마성의 운동(?)에 빠지기까지
박자+몸치여도 용기내 앞 줄로 나서기 위해선 흥과 환호 필수

입력 2022-11-10 18:30 | 신문게재 2022-11-1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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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생한 기억인데 어린시절 엄마의 에어로빅 교실을 따라간 적이 있다. 당시 국민학교라 불렸던 지금의 초등학교에 입학 전의 일이다. 유치원에도 안 갔으니 대여섯살 정도인데 그 어린 마음에도 ‘굳이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출 일인가?’ 싶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훨씬 젊었던 30대 후반의 엄마는 요즘말로 ‘반다나’로 불리는 헤어밴드를 하곤 딱 붙는 타이즈를 입고 동네 아줌마들과 그야말로 군무(?)를 딱딱 맞추셨다.

한 동작이라도 틀리면 맨 앞의 강사 선생님이 (당시 내 눈에는) 불호령을 내리셨는데 엄마는 주눅 들지 않고 열심히 박자를 맞추며 나머지 춤을 따라 가려 애쓰셨다. 만약 1980년대의 에어로빅 분위기가 상상이 가지 않으면 과거 국민예능이라 불렸던 MBC ‘무한도전’을 연상하면 쉽다. 유연성 제로와 저질체력의 6인조가 에어로빅을 익히는 과정이 코믹하지만 감동적으로 그려졌던 중심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40년차 염정인 강사가 나온다. 이 장면에서 실로 오랜만에 엄마의 에어로빅 선생님을 추억했다.

사적라이프
엄마의 의상은 ‘무한도전’과 달랐다. 단지 저 머리띠만 비슷했을 뿐.(사진제공=MBC)

 

어쨌거나 세월이 흘러 엄마의 피(?)를 물려받은 건지 춤에서 만큼은 빠지지 않았다. 세련된 비주얼은 아니지만 강남역 사거리의 포엑스(X가 4개여서 일 뿐 코엑스와는 전혀 다르다)나 리버사이드의 나이트클럽을 평정하며 지냈다. 20대 중후반이 되자 호텔 나이트 클럽과 이태원으로 활동영역이 넓어졌다. 하얏트 호텔의 제이제이와 헬리오스는 확실히 어린 애들이 오는 곳과는 뭔가 다른 성숙함이 흘렀다. 어쨌거나 (춤)밤문화는 임신을 계기로 30대 중반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한달 전 줌바(Zumba)의 세계에 빠졌다.

사실 관심을 가진 건 몇 년 전인데 막상 시작하기 까지의 과정이 길었다. 뭔가 아줌마를 비하하는 듯(?) 들리는 이름은 핑계고 라틴계열의 리듬에 흔들리는 살들이 문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민은 관절의 노화를 촉진할 뿐 하루라도 빨리 ‘이 세계’에 빠지지 않은 걸 후회 중이다.

콜롬비아인 댄서 베토 페레즈가 1990년대에 창안한 피트니스 프로그램인 ‘줌바’는 댄스와 에어로빅의 동작을 합쳐 구성한 운동이다. 강렬한 음악과 함께 저강도 동작과 고강도 동작을 반복하면서 칼로리 소모를 유도하는 인터벌 스타일의 댄스 피트니스다.

초기에는 라틴 음악 위주로 프로그램이 진행됐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팝송과 댄스 뮤직도 사용해 더욱 신나게 춤출 수 있고 심지어 몽환적인 아이유의 음악이 스트레칭 노래로 쓰인다. 스쿼트와 런지 동작을 더해 운동 효과를 높였으며 근력 강화, 심폐지구력 증진,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적이다. 힙합, 삼바, 살사, 메렝게, 맘보의 리듬을 따라가려면 체력보다 필수적인 건 탄성이 좋은 운동화다. 괜히 멋부린다고 세련된 워킹화나 발목을 잡아주지 않는 테니스화를 신고 췄다간 족저근막염이 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연예계에서 소문난 운동 마니아인 배우 최여진이  “1시간에 1000칼로리 소모가 가능하다”고 했던 말은 단언컨대 사실이다.

줌바
그나마 가장 따라하기 쉬운(?) 85BPM의 노래. 전세계 줌바 마니아들이 각자의 안무를 올려놓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튜브 캡쳐)

 

고백하자면 40대 중반에야 내 본 모습을 깨우쳤다. ‘줌바’덕분이다. 상상했던 댄싱퀸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몸치에 박자치였던 것. 첫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온 몸이 땀에 젖은 경험을 실로 오랜만에 느꼈다. 스쿼트, 테니스, 골프, 등산, 스피닝 등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폭포같은 땀의 분출을 느낀 것. 시작 5분 만에 마스크가 땀에 젖은 것도 잠시 몸을 움직이는 내내 ‘이 세상의 모든 걸그룹들을 존경하리라’는 추앙의 마음을 뼈에 새겼다.

내가 등록한 곳은 구청에서 주 2회 주민들을 위해 하는 월별 클라스였는데 춤꾼들이 상당했다. 요가할 때 입는 레깅스에 뱃살을 커버하는 반팔티를 입고갔더니 군살과 몸매를 떠나 모두 ‘땀 배출이 용이한 의상’을 착용한 상태였다.

몸매가 되는 사람들은 등과 허리, 복부가 고스란히 드러난 채로, 튼살과 출렁이는 군살이 있더라도 박자에 거추장스러운 옷차림은 용납 못한다는 굳건한 무언의 의지가 느껴졌다. 동네 학원에서 볼 법한 초보에 대한 친절한 스텝 설명과 배려는 없었다. 첫 줌바선생님은 “줌바에 필요한 건 눈치와 흥”이라며 “일단 주저하지 말고 따라하시라”고 조언했다.

처음엔 그게 서운했는데 이제는 안다. 모든 춤이 그렇듯 기초 스텝일지언정 줌바 만큼은 신나지 않으면 결코 빠져들 수 없는 마성의 댄스였다. 첫 시간에 실력이 드러났으니 안 갈 법도 한데 용납할 수 없는 투지가 불타올랐다. ‘부킹보다 댄스’를 추구하며 지조와 부심이 남달랐던 사람으로서 40대에 이렇게 무너지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다음 시간에 가니 전주에 했던 노래가 모두 바뀌어 있었다. 또다시 반대편 거울을 통해 스스로의 엇박자 댄스를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댄싱퀸
영화 ‘댄싱퀸’의 한 장면. 평범한 주부였지만 왕년의 댄싱퀸으로 거듭나는 엄정화의 모습이 나라고 되지 않을쏘냐.(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지금은 줌바를 춘 지 두 달이 지났다. 어느 때부터 발의 박자만 맞추자고 다짐하며 스텝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줌바’ 클래스에서도 엄연한 ‘서열’이 존재하는 데 가장 잘 추고 오래된 고수들이 맨 앞에 선다. 두 번째 줄은 3개월 이상의 수강생들 차지다. 선배들은 강사의 손짓 하나에 다음 동작을 알고 있었고 세 번째 줄의 후배들에게 ‘창피따윈 개나 주라 해’라며 장단을 맞춰준다.

당연하게도 맨 뒷 줄이었다가 네 번째 줄로 용기내 나아갔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전체 거울에서도 가려지고 실력도 늘지 않는다. 박자가 안 맞아 막춤을 추었더니 그대로 웃으며 받아주는 동료들도 큰 힘이 됐다. 

가장 자신있는 건 라틴 박자의 흥겨운  메렝게 스텝이었으나 지금은 스승님이 “사탕수수 베는 동작”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한 쿰비아(CUMBIA) 리듬의 메체테에  빠져있다. 노예들이 발목에 쇠사슬을 묶인 채 잰걸음으로 일을 하는 것에서 유래됐다는데 비극에서 출발했음에도 신나기 그지없다.

줌바 전문 강사인 J.M줌바의 김정미씨는 “코로나19로 수업을 3년간 안하기도 했다”면서 “템포를 놓치더라도 환호와 박수로 따라가면 되는 게 이 춤의 매력이다. 수강생들이 노래를 듣고 궁금해하고 안무에 대한 호응이 좋을 경우 밴드에 관련 영상을 올리며 이해를 돕고 있다”고 점차 대중화되고 있는 줌바만의 매력을 꼽았다.

영화 ‘댄싱퀸’의 엄정화는 살림과 육아로 지쳐있다 평범한 변호사에서 시장 후보로 출마한 남편(황정민) 몰래 집에서 다리찢기에 나선다. 굳은 몸으로 매일매일 연습해도 결코 되지 않았던 동작이 한번에 완성되자 일사천리로 춤신춤왕 (춤을 못 추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로 당연히 반어법)에서 벗어난다. 오늘은 메렝게 스텝을 완성함으로써 그 환희를 맞봤다. 혹시 제 2의 인생은 줌바강사? 일단 정상체중이 되려면 15㎏은 감량해야 하지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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