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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심화] 두터운 색의 질감, 선과 점 그리고 삶의 풍경…이희준 “캔버스에 회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요!”

입력 2022-07-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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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 작가
이희준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선과 점들은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공사)현장에 계신 분들이 먹선을 이용해 수평을 잡는 걸 보면서 착안했어요. 이 선들이 화면에 존재하면서 균형을 잡아주기도 하죠. 이 선이 있어서 사진 이미지의 표면을 인식하게 되는 것도 같아요. 약간의 경계선 같은 역할을 하죠.”

지난 5월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열렸던 제11회 아트부산에서 솔로부스를 꾸려 5분만에 완판한 색면추상작가 이희준은 개인전 ‘Heejoon Lee’(8월 14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 현장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개인전에는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서울의 변모한 풍경,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2018년부터 시작한 ‘어 셰이프 오브 테이스트’(A Shape of Taste) 연작과 지난해부터 시작한 포토콜라주 ‘이미지 아키텍트’(Image Architect)를 비롯한 신작 회화 20점과 그 회화작품들에서 출발한 조각 작품 4점이 전시된다.


◇현실에 발 디딘 색면추상…삶, 감정, 공간 그리고 1%의 어떤 것
 

이희준 작가
이희준 작가
“공사장을 가보면 비계(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라는 게 있어요. 공사장을 둘러싸고 있는 동시에 안과 밖을 구분해 주는 역할도 하고 있죠. 그 비계는 사실 굉장히 연약한 것들이잖아요. 일시적인 것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선, 면들을 일종의 비계라고 생각을 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그의 설명처럼 그가 직접 찍은, 삶의 풍경을 담은 사진, 이미지 등에 두텁게 올린 물감의 재질(마티에르)로 표현해 낸다. 그렇게 캔버스에는 다채로운 색감이 묻어나는 다양한 크기의 면을 비롯해 먹줄로 수평을 잡는 듯한 선과 점, 곡선, 도형 등이 배치된다.

“선과 함께 있는 점은 화면의 중심점 혹은 구축점 같은 역할을 해요. 그리고 무게 중력 같은 것들을 표현하는 요소로 사용하고 있죠. 그 점들은 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데 색이 있는 점들은 당시의 온도, 습도 등에 따른 표현이에요. 약간 드라이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따스한 공간이면 좋겠다 등에 따라 색을 쓰죠.”

이어 이 작가는 “온도, 지표 같은 것들을 나타내주는 되게 작은 부분이다. 어떤 작품에는 주황색이 하나 찍혀 있기도 하다”며 “저 하나로 주변 환경들을 약간 주황으로 느껴지게 하기도 한다. 그 온도를 좀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랐다”고 덧붙였다. 그리곤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바르셀로나의 온도’(The Temperature of Barcelona, 2022)를 예로 들어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이 노란 색은 제가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갔을 때 경험한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색도, 그림자도 좀 진하죠. 같은 노란 색이라도 ‘낮과 밤’(Night and Day, 2022)의 노란색은 달라요. ‘바르셀로나의 온도’에서는 노란색으로 직사광선을 표현했다면 ‘낮과 밤’은 시폰 소재의 커튼에서 넘어오는 햇빛들을 표현하고 있죠.”

이희준 개인전
이희준 개인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한쪽에 작은 푸른 물방울 같은 흔적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이희준 작가는 “한 화면에 주력으로 표현하는 색깔들이 있다. 그 색들은 이 화면 전반의 큰 감정들을 좀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하나만은 아니잖아요. 큰 감정 말고도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거든요. 그런 것들은 형체가 없고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죠. 뭔가 온전히 표현이 안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물감은 (형체도 없고 온전히 표현하기 어려운) 그걸 또 은근히 잘 드러내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전반적으로는 몸이 굉장히 가뿐하고 따뜻하다고 느끼지만 그와는 다르게 차가움 등 미세하게 느껴지는 다양한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Untitled-3
이희준 개인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어쩌면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감정에 가려 놓치고 갈지도 모를 ‘1%의 어떤 것’까지도 표현해내는 그의 작품들은 소소한 발견의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더불어 그의 작품에 활용되는, 그가 직접 찍은 삶의 풍경들은 사진이지만 회화적 특성을 지닌다. 이에 대해 이희준 작가는 “사진을 찍는 순간부터 추상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며 “사진을 인쇄하니 잉크가 뭉개지면서 회화적 요소를 띠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미지이지만 회화적으로 보였으면 했어요. 이런 이미지가 있고 두터운 물감의 물질성도 있고 되게 날카롭게 쓰이는 부분들도 있죠. 이들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영역이 있고 다양한 영역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력으로 쓴 색 외의 색들 모두에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감정과 환경을 연결시키는 연결고리처럼 쓰기는 해요. 우리 몸에서 뼈와 뼈를 잇는 관절처럼요.”


#아트부산 #니콜라스파티 #코로나19 그리고 #캔버스

이희준 작가
이희준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부산 관객들을 처음 만나는 거여서 국제갤러리에서 좀 다양하게 보여주는 환경을 만들어주셔서 집중되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열렸던 제11회 아트부산에서 오픈 5분만에 완판을 기록한 데 대해 이희준 작가는 “갤러리 덕분”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사실 판매나 아트페어 같은 부분은 작가가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한다기보다는 갤러리의 영역”이라며 “그냥 갤러리가 하자는 대로 따라갔는데 기획을 잘해주셨다”고 부연했다. 국제갤러리에 따르면 사이즈도, 가격대도 다양했던 10여점은 30~50대의 젊은 컬렉터 층이 구매했다.

“제 작업의 소재들이 현실, 현재의 트렌드, 일상적으로 접하는 공간들에서 시작되고 요즘 사용하는 색들, 감각들을 사용하다 보니 젊은 분들이 익숙해 하시고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희준 작가
이희준 개인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그는 색면추상작가지만 과거와는 달리 ‘현실’에 발 디딘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거리에서 찾을 수 있는 기하학적 형태들, 색감들이 추상화라고 생각한다”며 “발견하는 방향이 과거 추상작가들과는 반대인, 좀더 현실로 추상언어로 보려고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곤 영향을 받은 작가나 작품을 묻는 질문에 영국 글래스고 예술대학교 유학시절 접한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를 언급했다.

“되게 과감해요. 너무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정물화를 그리는데 이렇게 이런 색을 쓴다는 게 너무 놀라웠거든요. (글래스고 예술대학교) 5, 6년 선배신데 제가 유학시절일 때는 지역에선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어요. 최근 2, 3년 안에 월드클래스가 되신거죠.” 

 

이희준 작가
이희준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그리곤 “결국 작가 작업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더불어 갤러리의 역할, 도시와 국가 등 다양한 요소들이 반영된 결과 같다”며 “한국도 발전하고 있으니 더 좋은 작가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 장기화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작품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이번 전시에 공개된 것 말고도 코로나 시기에 했던 작업들이 있어요. 거의 집에만 있다 보니 식물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죠. 그래서 식물들로 작업한 작업들도 수십 점이 있어요. 나중에 기회를 봐서 보여드리고 싶기도 해요.

 

이후 행보에 대해 그는 캔버스의 가능성을 짚으며 앞으로도 저는 캔버스라는 매체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연구할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의 회화는 네모난 캔버스를 벗어나 공간 혹은 디지털로 확장하는 추세죠. 하지만 저는 오히려 회화의 매력과 장점 그리고 가능성은 매체의 특수성을 좀더 깊게 연구하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캔버스를 벗어나기 보다 오히려 그 안에 어떤 이야기 담고 원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작업할 겁니다.”


부산=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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