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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美 세이프가드의 역설

입력 2018-01-31 15:10 | 신문게재 2018-02-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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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지난 1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전지·모듈에 관세폭탄을 물리는 미 통상법 201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을 위한 서명식을 했다. 미 정부는 이에 따라 삼성과 LG 등 수입산 세탁기 120만대 이하에 대해 첫해에 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초과 물량에 대해선 5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2년차에는 120만대 이하에는 18%, 그 이상 물량에는 45%의 관세를 부과하고 3년차에는 120만대 이하에 16%, 그 이상 물량에 40%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삼성과 LG가 미국 내에 대규모 세탁기 제조공장을 짓게함으로써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속셈이다.

그런데 과연 세계화에 반하는 ‘미국 우선주의’가 트럼프의 계산식에 맞게 플러스로만 작용할까? 현재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부과한 가전은 제조업 분야다. 이 산업은 한때 미국이 세계 최고의 제품력을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삼성과 LG에 밀려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다. 트랙라인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미국 세탁기 시장 업체별 점유율을 보면 월풀이 38%, 삼성전자가 17%, LG전자가 14%를 차지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점유율을 합치면 31%다. 2015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시장 점유율 합이 24.8%였으니 2년 사이에 한국산 세탁기 시장 점유율이 6.2%포인트 늘었다.

세탁기의 경우, 삼성과 LG의 세탁기는 같은 가격대의 월풀 제품에 비해 디자인도 세련됐고 각종 첨단 스마트 기능을 탑재하는 등 성능 면에서도 우수해 소비자 만족도가 더 높다. 따라서 미국산 세탁기의 시장 점유율 하락의 원인은 수입산 제품의 공습보다는 월풀이 소비자 선호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에 각국이 경쟁적으로 부국강병을 추진하고 학자를 우대해 과학과 사상의 발전을 이루는 ‘제자백가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는 학파 간 경쟁을 치르면서 장점은 받아들이고 단점은 고쳐가며 더욱 풍성한 사상적 성취를 이루었다. 유럽 또한 마찬가지다. 유럽은 절대 권력이 없던 시절, 사람의 재능과 아이디어, 자본을 놓고 여러 나라가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만 했다. 그런 경쟁은 상인들이나 기술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공간을 제공했으며 마침내 산업혁명과 같은 자율적인 경제 환경의 출현을 도왔다. 미국 스탠퍼드대 윌리엄 바넷(William Barnett) 교수는 경쟁은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핵심동력이라고 강조한다. 바넷 교수는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1900년 이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영업한 2970개 소매은행의 흥망을 분석한 결과 ‘경쟁에 노출된 조직은 실패 확률이 더 낮다’고 결론 내렸다.

경쟁은 순간의 고통이 따르지만 결국 기업들이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에 밀린 기업은 만회할 방법을 찾고 배우게 된다. 그렇게 경쟁력은 쌓이고 이는 경쟁회사에 다시 자극을 주게 된다. 이러한 경쟁과정을 통해 기업들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니 미국 기업의 실질적·장기적 성장을 바라는 대통령이라면 단기적 이익에 급급해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기보다는 오히려 경쟁을 권장해야 한다. 추운 겨울, 아이가 춥다고 겨울 내내 방안에만 있게 하겠는가, 아니면 추우면 추운 대로 밖에서 뛰어놀게 해 면역력을 키워줄텐가?

 

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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