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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지금껏 보테로를 몰랐어도, 이 그림은 봤을걸?

[Culture Board] 국내에 생소한 남미화가이자, 가장 유명한 보테로의 일대기
24일 국내 개봉,코로나19로 지친 일상 영화로 위로

입력 2020-09-23 18:30 | 신문게재 2020-09-2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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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로
옆집 할아버지같은 인자함은 그가 최고의 예술가로서 군림하지 않고, 일상을 즐기며 작품을 완성하는 비결이기도 하다.(사진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그의 이름은 몰라도 그림은 익숙하다. 혹자는 ‘뚱뚱한 그림만 그리는 자’라고 폄훼하지만 보테로는 ‘피카소 급’의 인기를 누리는 현존하는 화가다. 전세계 주요 지역 6곳에 작업실을 두고 끊임없이 작업 활동을 이어가며 40여개국에서 100회 이상의 대규모 전시를 진행한 페르난도 보테로는 남미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과 풍만함, 유머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사실 살아있는 예술가의 다큐멘터리는 자화자찬으로 빠지기 쉽다. 이 영화 ‘보테로’ 역시 극 초반 그런 수순을 밟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가’라 불리며 예술의 길을 걸어온 한 남자의 감춰진 슬픔과 영향력 그리고 치유로서의 기능을 드러내면서 뻔한 답습을 피해간다.

성공한 아티스트로서 받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전세계를 돌며 기획, 전시된 보테로의 작품들이 화면을 훑는다. 익숙하거나 유명하다는 그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꽤 쏠쏠하다. 하지만 그의 초기작들은 “이게 보테로의 그림이야?”라고 놀랄 정도로 불친절하다.
 

보테로1
지난 2009년 첫 전시회(‘페르난도 보테로 展’, 덕수궁 미술관)에서 약 22만 명의 관람객을 모으며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수차례 그의 전시회가 개최되었고, 콜롬비아의 ‘보테로 박물관’은 한국인들이즐겨 찾는 여행지가 되었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두꺼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사진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한 수집가는 그의 스케치를 한 장당 10달러에 구매하기도 했고 동네 이웃들은 선심 쓰듯 “내가 그림을 사줄게”라고 호기를 부린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보테로는 그림 말고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간 화가로 유명하다. 그가 고집한 것은 한 가지. “가장 지역적인 예술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신념이었다. 

 

사실 그의 작품 활동은 1960년대 뉴욕으로 떠나고 비루한 삶을 버티다가 현대미술의 한 획을 이끈 큐레이터에 의해 발굴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극 중 보테로는 세명의 자식들에게 자신의 기억과 일상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렇다고 ‘라떼는 말이야’식의 훈육은 아니다. 그것은 흡사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내 아버지는 이랬지” “기억나? 할머니가 그러셨어”라는 추억의 회동이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가족들의 증언이 유독 많이 나오는데 제작자가 그의 외동딸이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이기도 한 그의 신분은 마냥 화가 보테로의 찬양이 아닌 인간적인 고뇌와 예술혼의 양념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예를 들어 보테로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했고 두번 째 아내와 낳은 어린 아들을 트럭 사고로 눈 앞에서 잃는다. 자신도 그 사고로 다쳐 오른손으로 작업 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달었어도 그림으로 슬픔을 치유한다. 첫 번째 아내와 낳은 세 명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아 그의 작품을 재해석하고 유산으로 남겨두는 일등공신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동안 모은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네와 고야, 피카소 등의 작품을 구매하는데 쓰고 고향인 콜롬비아에 미술관을 세워 기증하는 아버지의 뜻을 기꺼이 따른다. 마약과 폭력의 도시로 불렸던 고향을 탓하지 않고 전쟁의 상처와 테러의 비극, 거기에서 파생된 미움과 학대까지 자신의 미술에 녹여내는 과정도 과감없이 담아낸다.

영화의 중후반부는 성공한 뒤 프랑스로 떠나 조각에 매진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모습에 집중한다. “좋은 예술가는 해결책을 찾고 위대한 예술가는 문제를 찾는다”는 지론으로 그는 세계적인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조각의 혼을 불태운다.

 

어쨌거나 이 영화는 보테로가 여전히 현역이며 사후 클림트나 피카소에 버금가는 ‘불멸의 존재’로 사랑받을 거란 사실을 공고히 한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영화 ‘보테로’를 극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아티스트나 다름 없다. 82분. 전체관람가.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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