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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오래된 미래, 공공부문 개혁

입력 2023-10-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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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국은 공기업과 공공기관 왕국이다. 에너지와 인프라 부문뿐 아니라 금융도 덩치 큰 공기업이 모두 장악하고 있다. 에너지 부문의 공기업은 한전 및 발전자회사(한국수력원자력, 남동발전, 남부발전, 동서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전력거래소, 석유공사 등을 들 수 있고 인프라 부문에는 수자원공사, LH공사, 농어촌공사, 철도공사, 도로공사, 인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경기평택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등이 있다.

금융공기업으로는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마사회, 관광공사,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의 공기업이 관광과 체육사업도 맡고 있고 MBC, KBS, EBS, YTN, 연합뉴스, 방송광고공사 등을 통해 사실상 정부가 방송도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는 굵직굵직한 공기업과 공공기관만 추려 놓았지만 이외에도 작은 규모의 공기업과 공기업의 자회사, 공공기관, 연구기관, 국공립병원과 학교 그리고 지방공기업은 셀 수도 없이 많다.

한국이 왜 이렇게 공기업 천국이 되었을까? 출발은 너무도 당연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신생국 한국에 정부 외에 대형사업을 맡을 만큼의 돈 있고 자본 있는 민간기업은 있을리 없었다. 할 수 없이 정부가 직접 맡거나 공기업을 세워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운영했던 철도, 전력, 통신, 수도, 항만의 건설과 운영이 대표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학교, 병원, 은행 등도 마찬가지여서 몇몇 사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부가 운영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시스템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경제가 성장하고 선진화되었으나 이 같은 공기업과 공공기관 등의 비대화는 멈추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의 비대화는 많은 민간이 세운 기관을 사실상 유사 공공기관으로 만들어 버리는 문제점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학교와 병원이다. 국공립학교, 국공립병원과 병행하는 사립학교 및 사립 의료기관 등에 대해서 정부는 등록금과 진료비를 엄격히 규제하고 그 반대급부로 재정적 지원을 시행하는 조건으로 사실상 민간이 세운 시설을 장악하고 있다. 사립학교는 사실상 공립과 차이가 없다. 교사 인건비 지원이라는 조건을 전제로 엄격한 교육부 규제와 통제가 사립학교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꽁꽁 묶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정은 병원, 시민단체, 예술단체, 학회 등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민간기업들도 대정부 민원·로비를 위해 각종 협회, 사업자단체, 이익단체, 협동조합을 만들고 전직 공무원들을 그 이사장, 회장, 부회장 등에 앉히고 담당 정부부처와 소통의 자리를 마련한다. 민간기업이라고 하지만 법에 의하여 대주주가 없는 포철, KT 등의 민영화된 기업과 은행 등의 금융기관은 사실상 정부가 그 주인노릇을 하며 경영에 개입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정권인사로 CEO를 갈아치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공부문과 유사 공공부문은 민간이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을 선점하고 왜곡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성장과 경쟁력을 제한한다. 인프라, 에너지, 물관리, 교통 등의 부문에 민간기업이 역량을 펼치며 진입하기 쉽지 않고 그 경쟁력도 제약된다. 이보다 더 큰 문제점은 공공부문의 일처리 방식으로 인해 경제의 생산성이 크게 제약된다는 것이다. 특히 산출보다 투입 및 절차를 중시하는 공공부문의 관료적 관리 특성으로 인해 경제의 자율성과 창의력의 기회가 상실되며 경쟁력이 저하된다.

공공부문은 시장에서 기업을 감시하고 규율하는 소비자, 채권자, 투자자의 시장규율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독점이어서 소비자가 다른 기업이나 제품을 선택할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돈을 꿔 준 채권자도 정부와 국가가 빚보증을 서는 공공기관을 감시할 필요가 없다. 상장된 공기업이 드물어 공공부문의 투자자는 대부분 정부이다. 민간이 투자자로 정부와 같이 참여한 상장 공기업의 경우에도 공공기관은 민간의 눈치보다는 정부의 눈치를 살피므로 민간 투자자의 감시와 지적에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공공개혁은 우리 경제가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관문이다. ‘빨리빨리’라는 구호를 외치며 일하고 밥 먹는 우리 국민이 해방 이후 편만하게 전 경제영역에 퍼져있는 공기업을 아직까지 그대로 놔두고 있는 것은 미스터리다. 공공개혁은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이미 오래된 미래다.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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