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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할까? 말까? 모두를 ‘햄릿'(?)으로 만드는 희한한 슬랩스틱 ‘나, 말볼리오’

입력 2016-09-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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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나,말볼리오_공연사진 (3)
팀 크라우치의 1인극 ‘나, 말볼리오’.(사진제공=국립극단)

 

“핸드폰 내려놔!”, “리플릿 읽는 것도 그만 둬!”, “마시던 것도 내려놔!”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무대에 선 배우를 만난다. 배우는 속속 객석을 채우는 관객들을 지켜보다가 이런 저런 것들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팀 크라우치의 ‘나, 말볼리오’(I, Malvolio, 9월 24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는 국립극단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영국문화원과 공동초청으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십이야’ 중 고지식하고 허영 넘치는 집사 말볼리오를 주인공으로 한 1인극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팀 크라우치의 ‘나, 셰익스피어’ 시리즈 중 하나다. ‘맥베스’에게 죽임을 당한 동료 뱅코우를 주인공으로 한 ‘나, 뱅코우’, 괴물 취급을 받던 ‘템페스트’ 칼리반의 이야기 ‘나, 칼리반’, ‘한여름 밤의 꿈’에 단 두줄 등장하는 요정을 다룬 ‘나, 피즈블라섬’ 등이 있다.
 

[국립극단]나,말볼리오_공연사진04_ⓒGreg Goodale
‘나, 말볼리오’의 해외 투어ⓒGreg Goodale.(사진제공=국립극단)

“난 미치지 않았어.”(I’m not mad.)


극 시작을 연 이 말은 극 중간 중간 그리고 마지막까지 말볼리오가 대뇌는 말이다.

“너희들도 그렇잖아.” 

 

구겨진 종이(사실은 올리비아가 썼다고 말볼리오가 오해했던 러브레터)를 바닥에 버리며 양심과 이기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비웃는다.

그리곤 시시때때로 외쳐대는 ‘이중성’. 더불어 속사포랩 보다 빠르게, 시적이고 연극적인 욕설과 비난을 내뱉고는 또 한다는 말이 “너희들이 그렇잖아”다. 그저 웃음이 나던 말들은 반복될수록 웃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극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던 팀 크라우치는 ‘나, 말볼리오’에서 말볼리오가 ‘가짜 편지’에 속아 올리비아에 구애하다 망신을 당한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죽은 오빠를 위해 7년 동안은 남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여자 백작 올리비아, 그녀의 술주정뱅이 사촌 토비 벨치 경, 그녀를 짝사랑했던 집사 말볼리오와 남자 공작 올시노, 선박사고로 쌍둥이 오빠 세바스찬을 잃고 남장을 한 채 그 공작을 짝사랑하는 쌍둥이 여동생 비올라, 갑자기 살아서 나타난 쌍둥이 오빠, 그 오빠와 결혼을 해버린 올리비아, 쌍둥이 여동생의 정체를 알고 사랑하겠다는 남자 공작….

그런 그들 사이에서 행복해지지 못한 이는 말볼리오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극 내내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관객들에게 “이젠 내 차례야! 복수할거야”라고 경고하는 말볼리오의 시각으로 전해진 이야기는 그야 말로 ‘막장 복수극’이다.

그는 틈만 나면 관객들을 무대로 이끌어 “나를 발로 차”(Kick Me)라고 하거나 신발을 신겨 달라고 혹은 목매는 걸 도와달라고 호들갑이다.

 

[국립극단]나,말볼리오_공연사진 (7)
팀 크라우치.(사진제공=국립극단)

“너희들이 원하는 게 이런 거 아냐?”

누군가 왕따를 당하고 죽어나가는가 하면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 더불어 청교도 말볼리오답게 “똑바로 앉아, 사타구니에서 손 빼고. 내가 나올 때까지 그러고 있어야 해”라고 명령하고는 무대 뒤로 사라진다.

그렇게 팀 크라우치 퇴장 후부터 관객들의 고민은 시작된다. 물론 “죽느냐 사느냐”는 아니다. 무대 위 무심한 소품, 고지식하게 때로는 독설가처럼 빠르게도 뱉어내는 대사들, 하지만 ‘웃음’의 지혜를 버무린 ‘나, 말볼리오’의 여운은 굉장하기도 하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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