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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네오 휴머니즘, 사유와 문학성, 시어터 댄스 그리고 총을 품고 어항에 갇힌 금붕어…‘오를라’ 나진환 연출

서울연극제 선적장 '오를라', 모파상 단편소설을 바타으로 미쳐가는 인간의 이야기, 아비뇽 페스티벌 오프에서 첫 대면, 네오 휴머니즘 첫 시리즈로!
전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악령' '죄와 벌'에 이은 '백치'까지 도스도옙스키 후기 4대 장편소설 무대화!
'파우스트' '지하생활자의 수기'도 무대화 준비 중, '도스도옙스키' 전용관을 꿈꾸며

입력 2018-05-2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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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환 연출가 인터뷰10
연극 ‘오를라’의 나진환 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인간에 대한 문학적 성찰 시리즈 소극장 편의 첫 번째 작품이에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악령’ ‘죄와 벌’ 등의 나진환 연출은 제39회 서울연극제 선정작 중 하나인 연극 ‘오를라’(5월 27일까지 동양예술극장 3관)를 이렇게 소개했다. ‘오를라’는 기 드 모파상의 단편소설로 저명한 정신과의사 마랑드 박사가 전달하는 제1판, 미쳐가는 ‘나’가 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 제2판이 있다. 나진환 연출의 ‘오를라’는 제2판을 바탕으로 “인간이 본질적 상황들을 이해하고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1990년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국립파리 8학교 연극과에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거쳐 극단 ‘Gamyunnul’을 창단해 활동했던 나진환 연출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노천에서 1000개가 넘는 작품들이 공연되는 아비뇽 페스티벌 오프(Avignon Festival OFF)에서 자극을 받곤 한단다. ‘오를라’ 역시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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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를라’ⓒ양동민 작가(사진제공=서울연극제)
“아비뇽 페스티벌 오프에서 자주 공연되는 걸 봤어요. 봐야지 봐야지 하다 보질 못했는데 5년 뒤 우연하게 파리에서 보게 됐죠. 너무 재밌는 거예요. 무대장치도 별로 없이 한 시간을 대사로 채운 작품이었는데 언어의 힘을 느낄 수 있었죠.”

그 이후로 3번에 걸쳐 프랑스 ‘오를라’를 관람하며 “처음엔 말과 강박증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지켜보고 두 번째 관람부터는 ‘나라면 어떻게 하겠다’를 생각했다”고 전한 나진환 연출은 “프랑스는 언어를 가지고 사유하는 능력이 강하고 동구권은 감각적이며 물질적으로 표현한다. 프랑스와 동구권의 표현방식을 합친 것이 지금의 ‘오를라’”라고 설명했다.


◇네오 휴머니즘의 첫 시리즈 ‘오를라’

“네오 휴머니즘이란 인간적인 것의 강조예요. 인간이 얼마나 처절하고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목도하고 성숙돼 가는 과정이 인간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 출발점은 고통 받는 인간 그리고 그에 대한 인지죠.”

‘오를라’가 그 네오 휴머니즘의 출발점이라고 말한 나 연출은 “결국 이성적인 인간 혹은 앵글이나 프레임에 갇힌 인간이 또 다른 세계를 보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 일상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을 죽일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의식적인 인간이 미쳐가는 과정이 굉장히 논리적이에요. 진짜 미치면 안돼요. 진짜 미친 사람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하겠어요. 우리 인식의 틀 속, 인간이 미쳐가는 과정을 따르는 서사 구조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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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를라’ⓒ양동민 작가(사진제공=서울연극제)

 

1부 격인 ‘오를라’는 미쳐가는 인간도 사고를 하는가, 합리적인 인간이 어떻게 미쳐가는가에 방점을 찍은 작품으로 나진환 연출의 말에 따르면 “의식적인 인간이 왜 미칠 수밖에 없는지, 프레임 안에 갇힌 존재의 상황 등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보는 과정”이다.

“제가 좋아하는 이미지와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자살까지 이르는 과정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을 둔” 과정의 출발점이자 1부 격인 ‘오를라’에 대해 나 연출은 “과정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미친 자의 과감한 이미지는 2부(격의 작품)에서 풀어낼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자신의 비극, 고통을 대상화하는 놀이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예요. 그래서 인간은 위대하고 아름답죠.”


◇연극의 문학성 회복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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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를라’의 나진환 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전작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도스도옙스키의 방대한 세계관을 7시간에 풀어냈다면 ‘오를라’는 20~40페이지 안팎의 이야기를 90분 가량에 담아냈다.

“저의 재주는 대사 하나를 가지고 장면을 만드는 겁니다. 시를 가지고도 작업을 많이 했죠. ‘오를라’는 원작에서 오히려 많이 추려냈어요. 제가 말하려는 주제에 맞는 에피소드를 추려 작업했죠. 소설로 읽으면 금방이지만 연극적으로 그리는 건 또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배우(한윤춘)와 얘기하면서 차근차근 정리했죠.”

그리곤 “일상의 스트레스를 푸는 연극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상황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작품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배우 정동환이 25분 내내 대사를 읊고 지현준 혼자 조명 속에서 춤을 추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걸 알았지만 그래도 중요하기 때문에 정면승부를 한 것처럼”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누구한테 말을 걸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문학을 사랑하는 관객에 포커스를 맞춰요. 분명 있다고 믿어요. 연극의 출발점은 문학작품이었죠.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그 깊은 문학성을 회복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문학성을 연극성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고 앞으로도 할 거예요. 인간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그게 지겹거나 지루하지 않게 감각을 배치하는 것이 저의 목표죠.”


◇인간은 어항에 갇힌, 총을 가진 금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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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를라’ⓒ양동민 작가(사진제공=서울연극제)

 

“원래는 내면의 본능을 건드리는 상징주의를 많이 쓰는 편인데 이번(오를라)에는 추상적 의미를 많이 뒀어요.”

그리곤 “인간이 가진 일상은 황폐한 매트릭스 같은 것 혹은 틀 속에 있는 것”이라며 “인간은 결국 어항 안의 총를 가지고 있는 금붕어”라고 정의 내렸다.

“나라는 존재는 일상이라는 프레임에 갇혔을 때 나, 이름, 합리성을 가지죠. 초현실적인 존재,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일상의 모습이 사라지거든요. 극 막바지에 ‘거울 속에 내 모습이 없다’의 추상적 의미죠. 조명이 환해지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비극적인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잖아요. 어항에서 나온 금붕어처럼, 인간은 일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팔닥 팔딱 뛰면서 죽을 수밖에 없어요.”

그리곤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를 예로 들었다. “텅빈 공간에서 어디든 갈 수 있는데도 아이러니하게 그러질 못한다. 지루하고 지겹다면서도 버티며 고도를 기다리면서 살아간다. 처절한 상황이 실존하는 걸 모르고 공간 안에서 살아갈 뿐이다. 아주 행복하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실존하는 처절한 상황이 인식돼야 뭐라도 시작할 수 있어요. 인간이 얼마나 치명적 불치병에 걸렸는지 인식해야 해요. 스스로가 어항에 갇힌 금붕어라는 걸, 그 갇힌 틀이 얼마나 잘게 조각나 있고 펑크 투성이인지요.”


◇사유의 상징 의자와 책상,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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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를라’의 나진환 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이번(오를라)에는 사유적 차원, 의식의 흐름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감각 보다는 말과 말이 가진 해석을 그림처럼 표현하고 싶었죠. 의자에 앉아서 괴로워하는 나(한윤춘)와 같은 인간의 모습은 영국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에 굉장히 많이 나와요. 의자와 책상은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상징이죠.”

특히 의자는 마차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집이 된다. 웃옷을 걸쳐두면 사블레 부인이나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정자세로 앉아 사유하는가 하면 거꾸로 뒤집어 사고의 전복, 판타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나 연출은 “의자는 그냥 의자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변형을 통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며 “그런 맥락에서 의자 하나면 어떤 연극이든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변형은 우리 전통 예술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어요. 독일 사람들이 깜짝 놀란 게 수저를 들고 노래하는 한국인들이었어요. 수저가 곧 마이크가 되는 거죠. 판소리의 부채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사람들은 오브제를 상상력으로 확장시키는 데 익숙하고 굉장히 잘하죠.”


◇배우 한윤춘과 시어터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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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를라’의 한윤춘ⓒ양동민 작가(사진제공=서울연극제)

 

“배우 예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작품을 해보자.” 나진환 연출은 이렇게 마음먹고 ‘오를라’를 1인극으로 꾸렸다. 그렇게 함께 하게 된 배우가 전 국립극단원 한윤춘이다. 그는 배우 한윤춘에 대해 “언어구사력이 정확하신 분이다. 더불어 논리성이 명확하신, 연극적으로 스마트한 배우”라며 “저희끼리는 ‘악보’라고 칭하는 것을 이해하고 정리해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분”이라고 밝혔다.

독백, 다양한 캐릭터 표현, 심리묘사를 비롯해 한윤춘이 무대 위에서 수행하는 무용과 연기 사이의 움직임을 나진환 연출은 ‘시어터 댄스’라고 정의했다.

“감각과 이미지를 내러티브 구조 안에 넣는 작업이었어요. 현대무용이 연극성을 받아들인 것처럼 연극이 무용을 수용한 시어터 댄스를 배치했죠. 연극적 움직임과 무용의 중간쯤 있는 시어터 댄스는 몸으로 텍스트 속 상태, 심리 등을 표현하는 데 적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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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를라’의 나진환 연출.(사진=양윤모 기자 yym@viva100.com)

시어터 댄스는 나진환 연출이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늘 연구하고 진화시키는 극적 요소이기도 하다.

“시적 언어와 댄스, 상징성과 상징성이 만나는 작업을 많이 했었어요. 하지만 관객을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았죠. 내러티브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 문학을 도입하면서 문제를 해소했어요. 감각적, 은유적 상징성들과 내러티브를 구조화시키는 작업이죠.”


◇도스도옙스키 전용관을 꿈꾸며

“제가 생각하는 ‘오를라’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게 하는 ‘무언가’예요. 인간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사람마다 다른 그 무엇이죠.”

‘오를라’에 대해 한계, 경계 등을 뛰어넘게 하는 존재라고 정의한 나진환 연출은 자칭 ‘도스도옙스키’ 마니아다. “도스도옙스키는 ‘정신병동의 셰익스피어’라는 별명이 붙은,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찬양한 그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비롯해 ‘악령’ ‘죄와 벌’까지 무대화했고 이후로도 끊임없이 도스도옙스키 작품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이제 ‘백치’만 무대에 올리면 후기 4대 장편소설을 다 하는 거예요. ‘오를라’의 속편 격으로 미친 자의 과감한 이미지를 풀어낼 작품 역시 ‘지하생활자의 수기’이고 ‘파우스트’도 60% 각색을 끝냈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문화예술센터를 만들어 도스도옙스키 전용관을 만들어 끊임없이 무대화하고 싶어요. 철학, 사상, 심리, 그 안의 극성들 등 그는 어마어마하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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