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B사이드]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정동환 “깊은 영혼의 종교 연극, 그 길의 동지 나진환”

입력 2021-10-22 18: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정동환
정동환(사진=이철준 기자)

 

“제 삶에서 중요한 건 뭔가 새롭게 도전하고 이뤄내고 좌절해도 다시 한번 해보려고 일어서는 거예요. 그런 제 행위가 연극에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다행스러운 건 함께 할 동지가 있다는 거죠. 나진환 연출은 끊임없이 등을 밀어주는 동지거든요. 언덕에 있는 제 등을 밀지만 ‘잘 견대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죠. 그런 동지의식을 가진 예술가가 있다는 게 큰 고마움이에요.”

정동환은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31일까지 이해랑예술극장)의 나진환 작·연출에 대해 ‘동지’라고 표현했다. 나진환 연출은 국립파리8대학교 연극과에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거쳐 극단 ‘Gamyunnul’을 창단해 활동했고 성결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정동환과 표도르 도스도옙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7시간짜리 연극으로 꾸려 2017년 초연된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시작으로 오롯이 혼자 이끌었던 ‘대심문관과 파우스트’, 올해 5월 공연됐던 ‘단테의 신곡-지옥편’ 그리고 다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두 번째 시즌까지를 하고 있다. 

 

정동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조시마 장로를 연기 중인 정동환(사진제공=극단 피악)

“나진환 교수의 극단 피악에서 새로 준비하는 작품이 있어요. ‘안나 카레니나’를 음악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방식의 살롱드라마로 풀어낸다고 하더라고요.”


◇‘가난한 연극’을 추구하는 예술 동지 나진환 연출

“나 교수와 제가 맞는 점이 (폴란드의 연출가) 예지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의 ‘가난한 연극’을 추구한다는 거예요. 가장 어렵고 힘들면서도 다른 예술에서 할 수 없는, 무대에서만 가능한 일들이죠.” 

 

그가 언급한 그로토프스키의 ‘가난한 연극’은 의상, 조명, 무대, 효과, 장치 등 연극을 이루는 제반요소들을 제거하더라도 배우와 관객, 두 그룹의 본질적인 만남만으로도 존립하는 연극을 일컫는다.


도스도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파우스트’를 엮은 1인극 ‘대심문관과 파우스트’에서는 핏물 속을 헤매고 다니며 그 어떤 장치도 없이 1인 5역을 소화해야 했다. 집 계단 하나도 오르지 못할 정도로 발목과 관절에 문제가 생겨 공연 내내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작품이다.

“수염이나 모자 등 그 어떤 장치라도 있겠지 했는데 없더라고요. 처음엔 나 교수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했죠. 지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예요. 변호사라는 역할이 새로 생겼는데 도스도옙스키 해설에 이어 등장하죠. 나 교수가 커프스 하나를 꽂아주더라고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도스도옙스키 유작이자 미완성 작품으로 탐욕스럽고 색정가인 아버지 표도르(이기복)와 난폭하면서도 겁 많은 장남 드리트리(주영호), 이성적인 무신론자 차남 이반(한윤춘), 수도사를 꿈꾸는 알료사(김찬), 표도르의 사생아라는 신분을 숨긴 채 하인으로 살아가는 스메르자코프(조창원) 등으로 구성된 한 가문의 비극을 담고 있다.  

 

정동환8
정동환(사진=이철준 기자)

 

나진환 각색·연출작으로 카라마조프가의 부자와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드리트리와 표도르를 몸 닳게 하는 그루셴카(박결이), 드미트리의 약혼자이면서 이반이 사랑을 갈구하는 카체리나(정수영) 등까지 얽혀 인간 내면과 존재 자체에 대해 깊이 탐구하는 작품이다. 초연 당시 러닝타임 7시간, 도스도옙스키·대심문관·조시마 장로·식객 1인 4역, 오롯이 대사로만 구성된 20여분에 이르는 대심문관의 독백신 등으로 화제가 됐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재연을 맞아 다양한 변화를 맞았다.

 

러닝타임은 1, 2부를 합쳐 6시간으로 줄었고 대심문관의 독백 신은 페인트와 진흙 등을 활용해 표현방식의 변화를 맞았다. 초연 당시 해설자이자 내레이터 도스도옙스키와 대심문관, 알료사의 스승이자 그 지역에서 존경받는 예언자 조시마 장로, 사탄을 상징화한 식객을 소화했던 정동환은 새로 생긴 변호사까지 1인 5역을 책임지고 있다. 그 변호사 역시 20여분에 달하는 독백을 오롯이 혼자 소화해야 하는 인물이다.

 

정동환
정동환(사진=이철준 기자)

“갑갑해 죽을 지경이에요. 그렇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걸 하다가 죽더라도 저는 굉장히 좋아요. 그렇게 사기(?)를 당했지만 당한만한 사기였다 싶어요. 나 (성결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를 만나고부터는 늘 낭떠러지예요.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죠. 앞으로도 나 교수는 저를 계속 밀어 떨어뜨리려고 할 거예요. 전 그것이 무엇이든 좋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새로 도전해서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감사하게 임할 생각입니다. 그러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떨어지겠죠. 그런 날이 오면 무대를 떠날 생각입니다.”


 

◇코로나19 시대, 더 중요해진 예술

“지금은 이 작업이 너무 귀하고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코로나19로 공연을 취소하거나 포기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이럴 때일수록 더 해야죠. 물론 질서와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서 하는 건 당연합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도 “예술은 절대 포기되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강조한 정동환은 “우리 국립극단의 찬란한 역사 중 하나가 전쟁 중에도 대구에서 공연을 했다는 것”이라며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인류 역사에 이미 다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곤 알렉산더 대왕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예술가들을 끌고 다니거나 비행기로 피아노를 공수해 예술을 향유했던 순간들을 예로 들었다.

“배우가 해야할 일은 배우가 해야 하고 봐야할 사람들은 또 봐야 하고…그렇게 극장은 나름대로 돌아가야 하고 세상은 흘러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때에 안전한 상태에서 슬기롭게 넘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해내는 게 중요하거든요.”

더불어 최근 정동환을 비롯해 셰익스피어 원전 그대로를 무대에 올린 3시간 남짓의 연극 ‘리어왕’(10월 30~11월 2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을 준비 중인 이순재 등 선배 배우들의 도전과 활동에 대해 “이 또한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정동환2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정동환은 1인 5역을 연기한다(사진제공=극단 피악)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관계없어요.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죠. 나이 먹은 사람들이라고 꼭 할아버지로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살 동안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뿐이죠. 후배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몸소 보여주거나 안주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럴 이유도, 시간도 저에겐 없어요. 제가, 저의 삶이 중요하거든요.” 

 

그리곤 “등산에는 등정주의와 등로주의, 두 가지가 있다”며 “등정주의는 정상까지 가기만 하면 되지만 등로주의는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결과 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제 인생을 사는 것. 저한테 중요한 건 그거예요. 뭘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 확인되는 게 저한테는 중요하거든요. 누구한테 고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저만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거죠.”


◇연극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자 종교”

정동환9
정동환(사진=이철준 기자)

 

“연극은 나는 누구인가 질문을 던지면서 극한의 고통과 고뇌의 내적 갈등을 겪고 마침내 존재 의미에 대한 궁극적 깨달음을 얻는 노정인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를 넘어선 우주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는 곧 우주와의 화해인 것이며 인간에 대한 긍정인 것이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연극이에요.”

정동환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종교, 삶, 영혼에 대한 문제”라며 “처음 연극 무대에 섰을 때는 왜 연극을 한다고 했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알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곤 “지금은 알겠는 연극은 무엇인가”에 대해 대사를 읊듯 되뇌었다. 이어 “연극은 궁극적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엄청난 고통을 받으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로 재차 강조했다.

“저에게 ‘연극은 종교’라고 하면 다들 이상하다고들 해요. (에쿠우스, 아마데우스, 고곤의 선물 등의) 피터 셰퍼(Peter Shaffer)의 (연극 ‘고곤의 선물’ 중 천재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 대사로 표현한) ‘연극은 영원히 죽지 않을 유일한 종교’라는 얘기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어요. 종교는 다르다는 걸 존중해주는 개념이에요. 존중하다 못해 떠받들어야 하는, 그게 종교죠. 그렇게 저에게 연극은 깊은 혼이 깃든 종교입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