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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불가촉천민도 국민"…인도 평등주의 담긴 헌법

[권기철의 젊은 인도 스토리] 인도 헌법을 보면 인도가 보인다(하)

입력 2019-04-29 07:00 | 신문게재 2019-04-2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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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국경일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사진=PTI)

 

◇ 인도 헌법의 아버지 암베드카르 


인도 헌법을 만든 주역으로 ‘인도 헌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에서 가장 미천한 존재로 핍박 받던 불가촉천민 출신의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박사(1891~1956년)다.

“만일 헌법이 오용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나는 그것을 태우는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그는 인도 근대의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Untouchable)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인도 독립 후 헌법기초위원장과 초대 법무장관을 지낸 인도 헌법의 아버지다.

우리에겐 간디에게 가려 덜 알려져 있지만, 어쩌면 간디보다 더 치열하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인도 어디를 가나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인도에선 간디와 암베드카르의 생일을 국경일로 제정해 기념할 정도다. 인도에서는 미국의 흑인 해방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1929~1968)에 비견될 만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암베드카르는 뭄바이와 푸네 인근 데칸고원에서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탓에 초등학교 시절에는 교실 뒤쪽에 자리 한 장을 펴놓은 채 조용히 앉아 있어야 했다. 교실 안 물주전자에 손도 댈 수 없는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불가촉천민이면서도 영국군 장교로 군사학교 교장을 지냈고 교육열이 강했던 아버지 덕분에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미국과 영국 독일에서 공부해 박사가 되어 돌아왔다. 오랜 관습을 거부하고 자수성가한 인물인 셈이다.

암베드카르의 남다른 점은 많이 배우고 부자가 된 불가촉천민의 상당수가 지위와 돈을 배경 삼아 상위 카스트로 탈바꿈하는데 열심이었음에도, 인도 초대 법무부장관으로서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 철폐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등 불가촉천민의 해방을 위해 평생 몸 바쳤다는 점이다. 그의 최대 공헌은 헌법을 통해 카스트 제도를 부정한 것이었고, 그의 이런 정신은 인도 헌법에 오롯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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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촉천민 해방’의 정신 담긴 헌법


그는 힌두교인들이 자신의 기득권만을 내세우며 평등한 법조차 받아들이지 않자 인간의 평등을 강조한 불교로 개종운동을 벌였다. 그의 신(新) 불교운동은 이후 불가촉천민 수백 만 명의 불교 개종으로 이어졌다. 암베드카르도 애초엔 힌두교 안에서 차별을 철폐하려는 운동을 벌였다. 그렇지만 힌두교 카스트들은 그런 불가촉천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물건을 팔지도 않고 무차별 보복과 테러를 가했다. 이에 그는 1935년 불가촉천민들에게 “차별의 근원인 힌두교를 버리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차별의 근거인 힌두교의 마누법전을 대중들이 보는 가운데 불살라 버렸다. 현장에서 그는 “전 세계의 인권의 빛에 비교해볼 때, ‘마누법전’은 그 어떤 존경도 받을 자격이 없으며, 거룩한 책이라고 불릴 가치도 없다. 따라서 종교의 이름으로 가장하여 사회적 불평등 체제를 구체화시키는 마누법전을 저항의 표시로서 불태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인간으로 살기위해 목숨마저 내놓고 힌두교에 저항한 것이다.

불가촉천민들은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했다. 힌두 사원에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힌두교인도 아니다. 마누법전에서 불가촉천민은 개나 돼지, 닭과 마찬가지로 브라만이 식사하는 것을 보아서도 안 되었다. 마을 밖에서만 살아야 했고, 낮에 돌아다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지 않도록 표시했다. 밤에 돌아다녀선 안 된다고 돼 있다. 불가촉천민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거나 음식을 받아 먹으면 3년 간 탁발을 해 음식을 먹고 성구를 옮기는 수고를 해야 속죄할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마누법전은 불가촉민에겐 저주의 법전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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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헌법을 기초한 인도 초대 법무부 장관 암베드까르. 인도 국기에 불교를 상징하는 차크라(법륜)을 넣도록 주도한 사람도 그였다. (PTI)

 

◇ 간디의 하리잔, 암베드카르의 달리트

간디와 암베드카르는 인도 독립을 위한 협력자이면서 최대 맞수이기도 했다. 간디는 불가촉천민에 대한 불평등을 암적인 문제로 인식하면서도, 민족 독립을 위해 불가촉천민의 불교 개종을 비난했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는 노예 해방, 인간 해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과감히 개종을 선택했다.

간디는 불가촉천민을 ‘신의 자녀’란 뜻의 하리잔(Harijan) 이라고 불렀다. 불가촉천민을 양녀로 두고, 그들이 하는 화장실 청소를 함께 하기도 했다. 당연히 극우 힌두교도들로부터 극렬한 항의를 받곤 했다. 하지만 암베드까르는 간디의 이 같은 행동을 동정주의로 여겼다. 그리곤 그는 스스로를 ‘부수어지고, 찢기고, 으깨진 자, 핍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리트(Dalit)라고 불렀다.

진정한 인간 평등을 깨쳤다면 모두가 같은 신의 아들이라고 했어야 마땅한데, 간디가 불가촉민을 여전히 따로 구분한 것은 차별 의식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불쌍히 여기는 것’과 ‘내 몸처럼 아파하는 것’. 같은 뜻이지만 하리잔과 달리트는 완전히 개념이 달랐다. 그 어마어마한 차이 만큼 간디와 암베르카르의 입장 차는 컸다.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의 힌두사원 입장 금지 철폐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실패로 끝나자 1935년 힌두교를 포기하고 개종을 결심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욜라(Yeola) 선언’이다. 그는 이 때 1만 명이 넘는 군중 앞에서 말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힌두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나는 힌두교인으로는 죽지 않을 것이다.”

20년이 흐른 1956년에 그는 50만 명의 불가촉천민과 함께 불교로 개종하는 역사적인 의식을 집행했다. 그 후 불교로 개종한 사람은 500만 명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암베드카르는 개종식을 마치고 바로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연맹 개회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나서 불교유적지를 순례한 뒤 뭄바이로 돌아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개종식 두 달 뒤 그는 수면 중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그의 장례식에는 70만 명의 추모객이 평민과 불가촉천민 등 하층민들이 운집했다. 그들은 암베드카르를 ‘바바사헤브(아버지와 같은 스승)’이라 부르며 애도했다. 지금도 그는 인도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는 1947년 인도 독립 후에는 헌법기초위원장, 법무장관을 역임해 인도공화국 헌법 제정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인도의 삼색기 중앙의 법륜도 그가 제안한 것이다. 그런 노력으로 불가촉천민 ‘달리트’들은 이후 인도의 대통령, 하원의장, 대학 총장, 정당 대표로 활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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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하리잔 계급 남자들이 전통 결혼식에 참석한 모습. 이들 불가촉천민들에 대해 간디는 제한적인 포용성을 보여 주었으나 암베드까르는 헌법에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정신을 담으려 노력했다. (PTI)

 


◇ 외국인 인권보호 등 아직 미흡한 규정 여전

인도는 식민 시절 종주국이던 영국의 영향을 받은 많은 법률들과 미국헌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헌법을 가진 전형적인 영·미 법계의 법 체제를 가진 국가이다.

하지만 인도의 법제는 기본권 보호에 관한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특히 외국인으로서 관심 있게 봐야 할 사항은 외국인 인권에 관한 규정이다. 인도헌법 제19조는 표현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으나 인도국민만이 향유할 수 있고 외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정신적 자유권 중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세계화 시대에 외국인의 인권도 국민의 인권에 못하지 않게 중요시되고 있음에도 인도헌법은 외국인 인권보호에 있어 매우 소극적이다. 이런 조항들은 개선되어 마땅하다. 하지만 개선되기 전까지, 외국인으로서 인도 법을 존중하고 잘 따를 수 밖에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 하니까 말이다.

권기철 국제전문 객원기자 speck007@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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