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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잘 사는 배우'염혜란이 말하는 배우論

영화 '빛과 철'에서 사고피해자의 아내 역할 맡아
연극동아리하며 연기에 눈떠..."나문희 선생님처럼 오래 연기 하겠다"포부 밝혀

입력 2021-02-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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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과 철’의 염혜란.오랜기간 무대에서 갈고닦은 연기력을 뒤늦게 영화와 드라마로 꽃피우고 있다.(사진제공=찬란)

 

솔직해도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염혜란에게 영화 ‘빛과 철’의 출연이유를 물으니 “분량 욕심이 제일 컸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대부분은 “시나리오의 남다름”이나 “존경하는 감독님과 욕심나는 캐릭터였다”류로 나뉘는데 말이다.

염혜란이 대중에게 각인된 첫 단추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속 시장 아줌마 역할이었다. 어제까지는 살가운 이웃이었지만 위안부 피해자인 사실을 알고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보통의 아줌마였다. 주연인 나문희는 70대의 나이에 그해 모둔 여우주연상을 꿰찼고 조연 중의 조연이지만 사실적인 연기를 펼쳤던 염혜란은 이후 다수의 영화를 거쳐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변호사 역할로 안방극장을 평정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경이로운 소문’을 마치고 영화 홍보를 위해 화상 인터뷰에 나선 염혜란은 “낚시를 하다가 뭔가 잡혔다 싶었는데 고구마 줄기 같은 새로운 것들이 마구 올라오는 느낌”이라고 영화의 첫 느낌을 말했다. ‘빛과 철’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두 여자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가해자는 죽었고 피해자는 식물인간이 됐다. 그렇게 몇 년 뒤 우연히 재회한 아내들은 사건에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다.

“회사원을 예로 든다면 월급은 늘었지만 책임지는 게 더 많아진 느낌이에요. 분량 욕심도 물론 있었지만 관객들이 저에게 느끼는 감정은 푸근함이 대부분인데 감독님은 좀 다른 걸 보셨더라고요. 가끔 라미란 선배님하고도 하는 이야긴데 ‘우린 시대를 잘 만났다’는 말에 적극 동의해요. 예전같으면 아줌마 역할이나 조연으로 끝날 수 있었는데 말이죠.”

극 중 염혜란은 가망없는 남편을 극진히 보필하며 언젠가는 깨어날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영남 역할을 맡았다. 캐릭터에 대해 “피폐하고 바스러진 인물”이라고 정의한 그는 “슬픔이란 프레임에 갇혀있지 않고 미용실을 운영하던 사람이었다는 설정도 좋았다”고 말했다. 영남은 시종일관 피곤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도 곁을 안 주는 인물이다. 자신의 딸 은영(박지후)이 가해자의 아내와 우연하게 맞닥뜨리자 참아온 분노를 분출한다.

“미용사라면 사람들과 얼마나 소통하고 어울리며 지냈겠어요. 그런 전문직 여성이 사고가 난 남편의 직장에 들어가 근무를 해야하고 그 관계자들을 매일 보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비슷한 사고를 보는 비극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컸습니다.”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연극의 세계에 빠졌다는 염혜란은 겪어보지 않은 직업과 설정,인물들을 수도 없이 해봤지만 ‘빛과 철’은 달랐다. 그래서 병상에 오래 있는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자살 시도자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조심스럽게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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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개봉한 ‘빛과 철’의 염혜란. 서늘하고 피폐한 표정이 스크린 가득 펼쳐져 ‘과연 염혜란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사진제공=찬란)

 

“타인과의 관계를 묻는 영화라 더 끌린것도 있어요. 극 중 제 대사에도 나오지만 ‘도대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뭘 안다고 이야기 하느냐?’는 말은 곧 내가 믿고 있는 것조차 타인이 보기에는 왜곡된 진실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개인적으로 해피엔딩을 좋아하지만 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다고 봤습니다.”

사실 ‘빛과 철’의 결말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배종대 감독은 희망적인 결말을 원했던 염혜란에게 “영화 속 인물들이 다시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지금 버전을 밀었다고. 벼랑 끝으로 몰린 세 사람의 감정선이 팽팽해다 못해 끊어지기 직전에 영남이 남편이 깨어났다는 전화를 받으며 영화는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드라마나 영화로의 데뷔가 늦어서인지 그 동안은 ‘배우가 꽃’이란 고정관념이 늘 있었죠. 무대는 좀 허술해도 오롯이 배우만 보이면 된다는 연극때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스태프들의 중요성을 매 순간 느껴요. 그 분들의 도움 없이 영화는 완성되지 못하니까요.”

현재 염혜란의 꿈은 확고하다. 최대한 오래 이 길을 걷는 것이다. 20대부터 선배들의 이모나 엄마 역할이 주어질 정도로 스포트라이트에 빗겨나 있었지만 꾸준히 연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답을 현장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잘 살아야 길게 연기를 할 수 있더라고요. 대중들이 실망하면 오래 못하는게 이 일이니까요. 오래 연기를 한다는 건 삶을 잘 살아왔다는 뜻이기도 해요. 개봉을 앞둔 ‘태일이’와 ‘인생은 아름다워’ 외에도 JTBC 새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촬영 중입니다. 앞으로도 길고 오랫동안 찾아뵙겠습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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