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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떠난 지 19년…'김광석의 길'을 가다

입력 2015-01-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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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헤어진 지 19년… 그에게 보내는 편지

 -  김민기·박학기가 말하는 故김광석

 

“그냥 식구인데요, 뭐….”

1월 6일로 떠난 지 19년이 되는, 그리고 22일이면 태어난 지 꼭 50년이 되는 ‘김광석’이라는 이름에 가수였고 작사·작곡가였던 학전소극장 대표 김민기는 이렇게 반응한다. 학전소극장에서만 1000회 넘게 공연을 했던 김광석을 ‘형’ 김민기는 ‘청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나이 또래 남자애들이 그렇듯 노래 잘하고 놀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그런 청년이었어요.” 

 

신촌의 주점 ‘무진기행’, ‘섬’ 등에서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래하던 이들은 “말이 없던 친구, 만취하면 한쪽 구석에 얌전히 잠이 들던 친구”로 기억하기도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함께 노래하는 ‘김광석 친구’ 박학기는 “즐거울 때, 기분 좋을 때만이 아닌 그냥 살아가는 그대로를 노래했다. 멋있는 척 고독한 척도 없었고 출근하듯 매일 노래하려했다. 김광석은 연예인이 아니라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직장인이었다”고 그를 회상한다.

“보고 싶기는…할 말 같은 거 없어요. 만날 같이 있는데…”

말끝에 그리움이 길게 여운을 남기는 이는 형 김민기 뿐 아니다. 김광석 지인들의 말끝은 대부분 말줄임표다. 그 안에 숨은 그리움과 애틋함이 그대로 느껴지기는 친구 박학기도 마찬가지다.

“떠난 후 한동안 많이 혼란스럽고 궁금하고 힘들었어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죠. 지금은 특별히 보고 싶을 때가 없어요. 그냥 늘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김광석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요?”


김민기의 반문처럼 떠나고 19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는, 그리고 그의 노래는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매년 1월 6일이면 김민기, 박학기, 김창기, 강승원 감독 등 절친들이 모여 김광석을 기리는 조촐한 콘서트와 콘테스트를 가진다. 박학기와 동료·후배 가수들이 꾸미는 ‘김광석 다시 부르기’ 공연은 그의 고향 대구에서 시작해 연 15회 안팎의 전국투어에 나선다.

‘복고’ 바람을 일으킨 tvN ‘응답하라 1994’에는 그의 노래가 육성으로 흘렀고 모창달인을 찾는 JTBC ‘히든싱어’는 시즌 2에서 김광석을 부활시키기도 했다. 2014년 12월에는 1994년 발매됐던 4집 앨범 ‘네 번째’가 리마스터링돼 LP와 CD로 발매되기도 했다.

여러 가수들이 그의 곡을 리메이크하는가 하면 ‘바람이 불어오는 곳’(연출 김명훈), ‘그날들’(연출 장유정),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연출 장진) 등 그의 노래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막을 올렸다.

문화 혹은 노래의 힘은 그렇다. 그렇게 ‘나의 노래’가 불리고 ‘어느 이등병의 편지’에 귀 기울이며 ‘서른 즈음에’에 공감하고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꿈꾸게 하는 이가 김광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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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도록 마련된 낙서판 앞에서 청년이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고 있다.

 

 

 김광석 떠난지 19년…'김광석의 길'을 가다

김광석의 고향인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있다. 방천시장과 맞닿은 곳으로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재래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로 조성된 벽화길이다. 350m에 달하는 골목은 대구지역 예술가들이 그의 노래 제목과 가사에 맞춰 그린 벽화들로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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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 골목을 찾은 사람들은 그의 노래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공감하며 위안 받는 또 다른 김광석이다. 그래선지 김광석에 대한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비슷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김광석이 노래하는 나이가 돼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좋아지는 가수가 김광석이에요.”

“그냥 가슴에 와 닿지 않아요?”

“그렇게 이른 나이에 하늘로 떠났으면서 평생 살아갈 노래를 다 불렀잖아요.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담담하게 인생을 읊는 듯해요.”

그렇게 그의 노래는 삶에 대한 ‘읊조림’이다.


◇ 무소유를 꿈꾸는 ‘먼지가 되어’

“제 생활, 개인사에 연관돼 있어서 좋아하는 곡이에요. 산전수전 다 겪고 무념무상이 된 제 모습을 노래하는 듯해요.”

김광석처럼 방천시장에서 태어나 60년을 넘게 살고 있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지킴이 곽영재(61) 관리반장은 ‘먼지가 되어’가 바로 ‘자신’이라고 표현한다.

1991년 이윤수의 동명곡을 김광석이 리메이크한 ‘먼지가 되어’는 Mnet ‘슈퍼스타 K’ 시즌 4의 정준영&로이킴이 경연곡으로 불러 화제가 됐던 곡이기도 하다. 교복 입은 소년·소녀부터 나이 지긋한 중년 남자까지 한결 같이 추천하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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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눈물, ‘이등병의 편지’

“그녀가 보는 앞에서 그들에게 불러줬던 ‘이등병의 편지’가 생각나는 날,”

다정한 연인과 화목한 가족들 사이에서 홀로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한 청년, 그가 적어 내려간 낙서는 아련하다.

“훈련소에 입소해 연병장에 서 있으면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요. 아무렇지도 않다가 ‘집 떠나와’ 이 한 소절이 나올 때부터 가슴이…. 눈물이 엄청 나요.”

부산 출신으로 친구들과 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찾은 김군(22)의 말처럼 남자들에게 ‘이등병의 편지’는 자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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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도 몰랐던 스물 둘 통영 아가씨의 사연은 애틋하다. 그녀의 추천곡은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불러줬던 '서른 즈음에'.


 스물 둘 통영 아가씨의 ‘서른 즈음에’


“저는 ‘서른 즈음에’요!”

방학을 맞아 대학동기들과의 추억 만들기를 위해 김광석 길을 찾은 통영 아가씨의 추천곡은 ‘서른 즈음에’다. 이제 스물 둘인 그녀에게 ‘서른’은 다소 먼 나이, 하지만 그녀에겐 친구들도 몰랐던 사연이 있었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불러줘서 기억에 남아요.”

그렇게 김광석은 누구에게나 옛사랑을 떠올리고 추억을 돌아보게 한다. ‘서른 즈음에’는 김광석의 오랜 벗 박학기의 추천곡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래의 무게가 느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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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KBS 아나운서 출신의 박진명씨는 김광석의 노래를 "로맨스를 꿈꾸게 하는 힘을 가졌다. 60세까지"라고 설명한다.



 60세까지도 로맨스를 꿈꾸게 하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역시 ‘서른 즈음에’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곡이라고 꼽는 대구KBS 아나운서 출신의 박진명(49)씨는 김광석의 노래를 ‘로맨스를 꿈꾸게 한다’고 표현한다.

“아주 멋진 남자가 이 노래를 잘 불러주면 마음이 마구 설레요. 아직도 로맨스를 꿈꾸는 걸 느끼죠. 김광석 노래는 로맨스를 꿈꾸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60세까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봐요.”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벽화처럼 언니, 오빠의 러브레터 전달 심부름을 많이도 했다며 아련해지는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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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추억 만들기에 나선 교복차림의 세 소녀, 왼쪽부터 권진아, 배선희 이미정. 감수성 풍부한 그녀들의 추천곡은 '사랑했지만'이다.


 교복 입은 열아홉 소녀들의 ‘사랑했지만’

“들어오자마자 눈이 즐겁네요!”

교복차림의 고3 동갑내기 권진아·배선희·이미정(사진 왼쪽부터)양이 격앙된 목소리로 외친다.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후 방학을 맞아 추억 만들기에 나선 참이다. “김광석을 아냐?”는 질문에 “잘은 모르는데 얘기랑 노래는 많이 들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까르르 넘어가는 웃음소리를 남기고 헤어졌던 소녀들이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돌아본 소감을 문자로 보내왔다.

“벽화에 적힌 노래가사를 보며 기억이 안 나던 곡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여러 사람들의 그림을 보며 다양한 김광석씨의 면을 볼 수 있었고 사람들의 발자취도 느낄 수 있었어요.”

감수성 풍부한 소녀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은 노래는 ‘사랑했지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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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즐겁게 하는 나의 노래



 유쾌한 모녀의 힐링송 ‘나의 노래’

“요즘 통기타를 배우는데 ‘나의 노래’를 연습 중이에요. 어렵기는 한데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경쾌하고 가벼워지죠.”

여름에 이어 두 번째 ‘김광석 길’을 찾았다는 모녀 손성임(39)씨와 권다연(8)양은 ‘나의 노래’를 추천곡으로 꼽는다.

“기타 잘치고 노래 잘하고…김광석 노래는 다 좋아요.”

옛날 문방구에서 사고 싶은 것이 생긴 딸 다연이 팔을 잡아끄는 상황에서도 ‘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추천곡을 쏟아놓는 손성임씨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입구에 있는 김광석 동상을 빼고는 비주얼이 약한 것 같아요. 중간 중간 생긴 공간들도 커피숍, 식당 등 너무 상업적이에요. 함께 참여하거나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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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조성당시 벽화 작가로 참가한 한지영씨의 '행복의 문'.

 

 


 벽화를 그린 작가의 ‘행복의 문’

“김광석이라는 가수가 저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어요. 가수로 좋아하기는 했지만 피상적이었죠. 김광석 노래로 작품을 만들면서 노래도 연구하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니 그의 노래는 늘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더라고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조성 당시 벽화작가로 참가한 한지영(49)씨는 벌써 4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 그녀의 작업실 겸 카페 ‘플로체’는 동료 작가들, 동네 주민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그녀가 작업한 벽화는 다소 낯선 ‘행복의 문’이다.

“김광석 노래는 대체로 슬프고 아련잖아요. 하지만 ‘행복의 문’은 굉장히 희망적이에요. 김광석이 생각하는 행복, 그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죠.”
 

글·사진=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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