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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뷰캐넌의 헌법경제학이 주는 교훈을 찾으려면

입력 2019-11-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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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한글로 번역된 <합의의 계산> (1962)만을 가지고는 뷰캐넌의 사회철학을 제대로 알 수 없다. 한글판으로 번역되지 않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두 권의 책만이라도 더 읽어야 한다. 하나는 <Limits of Liberty between Anarchy and Leviathan>(1975)이다. 이 책은 존 롤스의 <정의론>(1971), 노직의 <아나키,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1974)와 함께 1970년대 세계 지성계의 최고의 학문적 업적으로 꼽는다. 반드시 읽어야 할 다른 하나는 <Freedom in Constitutional Contract>(1977)다. 한국에서 뷰캐넌에 관한 논의는 1962년 <합의의 계산>에 그치고 있다.(민경국·김행범 교수는 예외).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뷰캐넌이 훌륭한 아이디어를 유산으로 우리에게 남겨놨지만 서고에서 외로이 잠자고 있다. 그의 사상을 깨워서 한국사회가 당면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사점을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흥미로운 것은 헌법정치경제학이라고 말할 만큼 뷰캐넌이 헌법을 중시한 이유다. 현대 사회에 대한 진단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예를 들면 미국은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50%를 상회하는 국민소득 대비 정부지출, 무역·금융·노동부문 등, 모든 분야에서 첩첩히 쌓여가는 정부규제를 특징으로 하는 거대국가, 즉 리바이어던이었다.

뷰캐넌에 의하면 현대사회의 제도들은 어느 누구도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의미에서 비효율적인, 동시에 자유를 억압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계약을 통해서 미국사회를 제설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인식이었다. 헌법계약은 만장일치를 의미한다. 이런 인식에서 뷰캐넌은 두 단계의 헌법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첫 번째 헌법계약은 개인의 행동을 제한하는 행동규칙, 소유권 재분배 규칙, 그리고 보호국가의 집행을 위한 규칙을 계약적으로 체결하는 과정이다. 계약의 결과는 사법사회(private law society)로서 비정치적 헌법이다. 이를 다룬 게 뷰캐넌의 1975년 저서다.

헌법계약의 두 번째 단계는 정치적 헌법이 결정되는 단계다. 공공재생산을 위한 생산국가(공법사회: public law society)다. 이는 흔히 법학에서 말하는 국가헌법이다. 생산국가는 대의민주제다. 생산국가에서 적용할 표결원칙(단순다수 또는 가중다수 등)을 계약을 통해서 합의한다. 생산국가와 관련된 다양한 표결원칙은 1962년 저서에서 논의되고 있다. 생산국가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공공선택론(theory of public choice)이 아니던가!

생산국가와 관련된 뷰캐넌의 계약론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보호국가가 생산국가보다 먼저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국가는 보호국가를 통해서 억제되어야 할 대상이다. 개인의 재산권과 사법(private law)은 대표의회에서 정할 수 없다. 대표의회는 오로지 공공재의 생산과 관련된 과제만을 담당한다.

뷰캐넌의 세계에서 재산권과 사법은 공공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시민들 전체가 참여하는 계약의 대상이다. 뷰캐넌이 두려워 한 것은 생산국가의 과제만을 담당할 대의민주가 자신의 고유한 과제를 넘어서 사법사회로 침범하는 경우다. 이 침범은 정부실패 또는 정치실패가 아니라 헌법실패라는 것이 뷰캐넌의 인식이다.

뷰캐넌은 민주주의를 적절히 제한하는 헌법장치가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가중다수 등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해관계의 정치가 아닌 원칙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원칙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뷰캐넌이 든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의 예를 들면, 차별입법을 금지하는 법의 지배 원칙을 헌법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최소임금 강제인상, 노동시간 강제단축, 비정규직의 강제적 정규직화 등은 특정한 계층을 위한 정책이 이라는 이유에서 원칙이 아닌 이익을 위한 정치다. 보조금, 인허가 등도 한통속이다. 차별 입법은 법을 지대추구, 정실주의를 위한 수단이다.

균형예산원칙도 의회의 권력을 제한하는 장치로서 헌법의 중요한 대상이다. 케인스의 장막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는 적자예산 성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적자 속의 민주주의라는 뷰캐넌의 유명한 말이 생겨난 것도 그 때문이다. 누진세 대신에 비례세제도를 헌법에 도입하여 정부의 조세 권력을 제한하고자 했다 그는 통화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통화공급의 준칙주의를 헌법에 도입하여 통화당국의 재량적인 통화정책을 억제하고자 했다.

이런 간단한 설명에서 우리가 확인할 것은 뷰캐넌에게 다수결이든 가중다수결이든 의회의 정치적 표결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회가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의회권력을 제한하는 장치를 헌법에 도입하는 것이었다. 뷰캐넌의 헌법경제학적 사상은 <헌법계약을 통한 자유>(1977,) <Power to Tax>(1980), <이해관계의 정치가 아닌 원칙의 정치>(1994)에서 읽을 수 있다.

뷰캐넌의 의도가 한국헌법에 주는 시사점은 대단히 크다. 그의 헌정 사상에 비추어보면 한국 헌법은 국가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헌법적 장치가 부실하다. 오늘날 급진좌파의 정책을 막아내어 사적영역을 보호하지 못하는 이유다. 정치적으로 다루지 못할 문제가 거의 없다. 누가 어떤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 즉, 권력구조 문제와 표결문제에 집착한 헌법이다. 뷰캐넌의 사상은 하이에크와 대결하기에 충분한 패러다임을 개발한 인물이다. 그는 단편적으로 다루기에는 매우 아까운 인물이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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