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B그라운드] 박정자·오영수, 배종옥·장현성 그리고 앤디와 멜리사의 과거 혹은 미래…연극 ‘러브레터’

입력 2022-09-08 19:14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러브레터
연극 ‘러브레터’ 출연진. 왼쪽부터 오영수,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사진=허미선 기자)

 

“그런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어요. 저희에게 앞으로도 계속 무대에서 설 수 있을 거라는 힘을 주고 계시죠.”

연극 ‘러브레터’(10월 6~11월 1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50여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류하는 멜리사와 앤디로 호흡을 맞출 배종옥과 장현성은 배우는 물론 극 중 인물로서 20년 후를 보는 듯한 또 다른 페어 박정자·오영수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배종옥·장현성을 보며 배우이자 극 중 멜리사와 앤디로 20년 전을 떠올릴 박정자와 오영수는 두 사람에 대해 “너무 예쁘고 훌륭한 배우들”이라며 “연기도 잘하고 성심도 훌륭한 후배들과 작품을 함께 해서 너무 기쁘다”고 밝혔다.

배종옥은 “현장에 나가면 어느덧 선배가 없을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며 “그게 되게 고독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도 나에게 연기에 대해 말해주지 않고 잘못했을 때도 스스로 캐치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작업하는 게 너무 좋아요. 같이 무대에 서진 않지만 박정자, 오영수 선생님과 같이 작업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의미죠. 제가 무대 서는 것 이상으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돼서 흥분됩니다.”

장현성은 “나이가 들면서 원하는 자리에서 원하는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살고 싶어한다. 배우들은 어느 순간 정확하게 그게 될 때가 있는데 ‘러브레터’가 그렇다”며 “소년 장현성부터 동경과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무대 위 스타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22러브레터_포스터(사진제공_파크컴퍼니)
연극 ‘러브레터’ 포스터(사진제공=파크컴퍼니)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라는 영화에 ‘당신은 점점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라는 잭 니콜슨 대사가 있어요. 박정자, 오영수, 배종옥 선생님은 좀더 좋은 후배가 되고 싶게 만드는 선배들이죠.”



◇진정으로 소통하며 스미는 다양한 삶의 측면들

 

연극 ‘러브레터’는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예술가 멜리사와 와스프(WAST,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슈퍼 엘리트 앤디가 8살부터 50여년간 주고받은 편지로 꾸린 A.R. 거니(A.R. Gurney)의 대표작이다.

한국에서도 수차례 공연된 ‘러브레터’는 1988년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첫선을 보인 후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들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입성했고 30여개 언어로 번역돼 카네기홀, 모스크바 푸쉬킨 극장 등을 비롯한 전세계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17년에는 영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알리 맥그로(Ali MacGraw)와 라이언 오닐(Ryan O’Neal)의 46년만의 재회작으로 이슈가 됐던 작품으로 이번 프로덕션은 예술의전당과 파크컴퍼니가 WME(William Morris Endeavor Entertainment, LLC)와 정식 라이선스를 체결해 진행된다.

이번 한국 프로덕션은 ‘작은 아씨들’ ‘라스트 세션’ ‘그라운디드’ ‘다윈 영의 악의 기원’ ‘킬미나우’ ‘레드북’ 등의 오경택 연출작으로 박정자와 오영수, 배종옥과 장현성이 고정 페어로 무대에 오른다.

오경택 연출은 “연극 ‘러브레터’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돼 있는데 앤디와 멜리사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8세부터 50여년간 주고받은 편지로만 구성된 극이다. 동선 등 없이 배우 둘이서 자리에 앉아 오롯이 낭독하는 형식을 지니고 있다”고 소개했다. 


Untitled-11
연극 ‘러브레터’ 출연진. 왼쪽부터 오영수,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사진=허미선 기자)

“시각적인 것을 강조하는 시대에 남의 말을 듣는다는 접근이 사실은 오히려 더 의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는 글로 쓰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쓰고 배우가 읽고 관객이 듣는, 쓰기와 읽기와 듣기가 있는 극이죠. 말과 언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번역극이고 시대도, 배경도 다르다 보니 2022년 대한민국 동시대 관객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에 가장 집중했습니다.”

이에 오경택 연출은 “대본의 번역과 손 보는 과정에 공 많이 들이고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 토씨 하나하나 신경 쓰고 업데이트하면서 연습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일반적으로는 배우 두분이 대본을 펼쳐놓고 읽는 형식으로 진행된다”며 “하지만 저희는 실제로 주고받은 편지 333통을 일일이 인쇄해 한장한장 넘겨가면서 서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이번 프로덕션의 특징이자 차별점”이라고 덧붙였다.

“‘러브레터’라는 제목만 들으시면 로맨스를 기대하실 거예요. 하지만 남녀의 사랑 뿐 아니라 50년 동안 편지로 솔직하게 서로의 진심을 전달하면서 드러나는 삶의 여러 가지 측면들을 담고 있죠. 인간이 편지로 주고받으면서 관계를 맺고 진정으로 소통하는, 깊은 울림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캐스팅 1순위 진짜 오랜 인연 박정자·오영수 그리고 배종옥·장현성

Untitled-3
연극 ‘러브레터’ 오영수, 박정자(사진=허미선 기자)

“연극 ‘러브레터’를 한다고 하자마자 오영수·박정자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어찌 보면 되게 단순한 형식이라 듣기로만 관객들을 집중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역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힘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 전한 오경택 연출은 캐스팅할 때의 조건 3가지를 밝혔다. 오 연출은 “액팅 없이 말로만 전달돼야하니 섬세한 연기력이 첫 번째”라며 “두 번째는 실제로 배우들이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친밀감이 있어야 했다. 작품 속 앤디와 멜리사처럼 편하게 서로의 속내를 내비칠 수 있는 관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세 번째는 이 이야기가 앤디와 멜리사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 배역이고 1937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작품이 가진 보편적인 힘,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끔 많은 세대를 아우르는 캐스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첫 번째로 떠오른 분들이 박정자, 오영수 선생님이었죠.”

이어 오 연출은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떠올랐다”며 “오랜 시간을 서로 소통하며 진정한 인간관계 등을 깨닫는 두 사람 이야기인 만큼 긴 세월 우리 연극 무대를 지켜온 박정자, 오영수 선생님이 계신다면 두 분의 연륜, 내공, 시간의 힘 등이 만나서 엄청난 시너지를 내지 않을까 싶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오영수와 박정자는 1971년 극단 자유에서 함께 공연하면서부터 5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깐부’다. 박정자는 “오영수 선생과는 극단 자유에서부터 아주 오래 호흡을 맞췄던 사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나이 먹었어도 이런 모습으로 무대에 나타날 수 있구나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정말 축복받은 존재가 아닌가 늘 생각합니다.”

오영수 역시 “박정자 선생은 연배로도 저보다 위이시고 연극 시작도 저보다 앞선 선배”라며 “1970년대 극단 자유에서 만나 50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나름의 우정, 동기애, 누님같은 선배로 지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Untitled-2
연극 ‘러브레터’ 오경택 연출(왼쪽부터), 오영수,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사진=허미선 기자)

 

“박정자 선생님과 2016년 ‘따라지의 향연’ 후 6, 7년만에 ‘러브레터’를 같이 하게 되면서 함께 해온 과정도 되살아나는 같아요. 처음 만나는 경우는 좀 불편하고 호흡이 엇갈리는 것도 같고 그런데 박 선생님이랑은 그러질 않아서 자연스럽게 잘 진행하고 있어요. 이 연극을 준비하면서 요즘처럼 ‘사랑’이라는 말이 많이 숨어들어간다고 할까요, 별로 표현하지 않는 삭막한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되새기게 하는 연극이라는 걸 뜻깊게 생각합니다.”

이어 ‘러브레터’를 준비하면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교우를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있다”며 “졸업할 때가 됐는데 마음에 남아 있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언덕길을 그 친구네 집까지 1킬로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해요. 그 학생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나이가 한참 먹어서 한번 만났어요. 만나니 희석되고 잊혀지지 않는 여인으로 남게 되더라고요. 아마 지금까지 안만났다면 ‘사랑’이라는 말을 그 학생한테 던져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 많은 관객들에게 인식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연습 중이죠.”

Untitled-5
연극 ‘러브레터’ 장현성, 배종옥(사진=허미선 기자)

박정자 역시 “아침에 90년대 초반부터 받은 러브레터를 읽고 왔다. 아름다웠던 편지들을 기억한다”며 “이 편지라는 게 받은 건 있는데 내가 보낸 건 없어서 너무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러브레터’를 연습하는 동안 그와 함께 나눈 많은 이야기들을 제 앨범과 추억 속에서 꺼내고 있다”며 “그와 편지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축복이고 그 시간들을 함께 건넜다는 추억들이 너무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사실 이 무대가 무척 궁금해요. 오영수 선생과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앤디와 죽어도 쓰기를 싫어하는 멜리사가 50년 동안 이어온 우정 등을 함께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러브레터’를 보러오는 관객들에게 머리가 하얘져도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놓치지 않을 수 있구나 생각할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저로서는 또 다른 무대로의 도전입니다.”

 

배종옥과 장현성 역시 2004년 이용기 감독의 ‘내가 살았던 집’이라는 단막극으로 처음 만나 ‘라이브’ ‘호박꽃 순정’ 등의 작품을 같이 하면서 인연을 이어온 페어다. 배종옥은 “처음 ‘러브레터’ 제안을 받고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한 스토리가 삶처럼 느껴졌다”며 “그 섬세한 표현에 감탄하며 읽으면서 남자배우로 장현성을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장)현성씨와 저는 방송에서 3작품을 같이 했는데 틈틈이 연극을 같이 보러 다녔고 극장에서 우연히 만나 얘기하는 시간이 많았던 후배였어요. 연극 한번 같이 하자 말로는 많이 했는데 시간 내기가 어려웠죠. 이 ‘러브레터’를 현성이랑 하면 좋겠다 했는데 무대에서 같이 작업하게 돼 너무 즐거워요. 연습과정에서도 현성씨의 재치와 발랄한 아이디어를 만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장현성은 ‘러브레터’에 대해 “오래 좋아했던 작품”이라며 “의사 감정 소통이 문자나 DM 등으로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내 의사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생각을 정돈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거죠. 편리하긴 하지만 어떨 땐 안타깝기도 해요. 연극도 마찬가지 같아요. 연극이라는 장르가 가진 여러 특성상 거대한 자본이 투자되거나 엄청난 CG, 음향, 천문학적인 홍보비 등을 쓸 형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연극이라는 가장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요. 상상력으로 이 극장에서 무엇이든 보여드릴 수 있거든요. 연극이 가지는 가장 빛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아름다움을 보여드리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20년 전후를 연상시키는, 전혀 다른 두 작품


Untitled-6
연극 ‘러브레터’ 오경택 연출(왼쪽부터), 오영수,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사진=허미선 기자)

 

“저희는 ‘페어’가 아니라 팀이라고 부르는데 두 팀이 완전 다른 작품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팀별로 연출적 접근방식도 다르거든요.”

오경택 연출은 이렇게 전하며 “박정자·오영수 선생님 팀은 시간의 힘이 주는 연륜과 깊이가 느껴진다”며 “배종옥·장현성 팀은 극 중 인물들의 나이대와 매우 유사한 커플이다. 그 나이대만이 품고 있는, 어린 시절부터 중년까지의 활력 있고 생생한 장면들, 호흡들, 감정들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게 특징”이라고 밝혔다.

“박정자·오영수 선생님 팀은 방향 자체가 마지막 사건 후 수십년이 지나 앤디가 예전의 멜리사를 추억하는 콘셉트로 접근했어요. 앤디가 편지함을 열어 추억 속 멜리사를 소환하죠. 굉장히 다른 색과 방식의 작품 두편을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오 연출의 말에 장현성은 “선생님들 연습하는 걸 봤는데 관객 분들이 이 공연을 보시고 나면 멜리사와 앤디의 20년 전이 궁금해질 것 같다”고 동의를 표했다.

“그러면 우리 공연을 다시 보실 수도 있겠구나 했어요. 더불어 저희 공연을 보면 20년 후 모습이 궁금해서 선생님들의 공연을 보러 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정자는 “무대 위 연극배우는 운동선수와 똑같다. 하루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항상 훈련돼야 한다”며 “사실 우리 연령의 배우들이 작품을 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지금까지 무대에 설 수 있고 관객들이 기다려주시니 감사하다”고 밝혔다.

“저희들에게 정년은 없습니다. 무대 위에서 두발로 든든히 서있을 수 있고 호흡할 수 있을 때까지가 무대를 향한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어 “정년은 없습니다”라고 다시 강조하는 박정자에 오영수는 “제가 40, 50세까지만 해도 연극은 그 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한 현상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무대에 서서 호응을 받을 때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60대를 넘어 70대가 되고 보니 (부조리를 담는 것만으로는) 배우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인생을 얘기하는 게 연극이라면 배우 역시 인생을 얘기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회에 대한 문제, 사건만을 말할 뿐 인생이 없는 작품들이 많아요. 저는 인생을 얘기하고 싶어요. 사건을 열심히 말하면서 관객과 호흡 하고는 있지만 결국 연극이라는 건 인생을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우리 옆에 있는 건 사건을 통해 인생을 얘기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렇게 인생을 얘기하는 과정을 밟아가면서 배우로서의 내공이 쌓이다 보면 한 인물로 보여지게 될 거라고 믿어요. 배우로서 가는 길은 거기까지 가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7, 80까지 갔을 때야 배우의 참모습이 나오지 않나 싶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