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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부끄러워도 '가족'이니까...영화 '비밀의 언덕'이 주는 감동

입력 2023-07-0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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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언덕1
무심하고 악착 같아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족들을 챙기는 부모님, 늘 투닥거려도 속 깊은 남매의 모습이 1996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사진제공= (주)엣나인필름)

 

보는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10대 소녀인 명은이 가진 영악함, 그리고 초,중,고 시절 반복된 무언의 편견들이 기억나서다. 하지만 영화 ‘비밀의 언덕’을 보고나면 감정의 온도가 달라진다. 교육 현장의 희망을 보여주는 선생님의 등장에 희망이 생기고, 늘 바쁘고 서툴렀지만 이제는 진심을 알게 된 부모님의 사랑을 가늠할 수 있어서다.

그것은 그만큼 관객들이 느낄 공통의 경험과 어느 정도의 나이대에서 발휘될 것이다. 극중 12살인 명은은 연년생 오빠와 서로 헐뜯는게 익숙한 부모님과 같이 산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먹는 식사 장면은 중산층인 명은이 가진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시간은 무려 밤 9시. 시장에서 젓갈가게를 운영하는 엄마는 반주로 맥주, 게으른 아빠는 소주 두명이 기본이다.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 그 즈음이란건 아이들에게도 나름의 결핍이 있다는 소리다.

영화는 늘 “돈, 돈”거리지만 딸이 사달라는건 다 사주는 엄마, 무뚝뚝해도 생선 가시를 발라주는 아빠의 서툰 일상을 비춘다. 영화 중반까지 명은이가 벌이는 비밀의 깊이는 상당하다. 시작은 귀여웠지만 ‘비밀의 언덕’의 열 두살 소녀의 거짓말은 주도면밀하고 당차기 까지하다.

다들 ‘감투’가 고팠던 그 시절에 자신만의 눈썰미와 배려심으로 반장이 된 명은의 일상은 바쁘다. 동시에 부모님이 시장에서 일하는게 부끄러워 각종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미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간병을 핑계대며 자신이 반장이 된 뒤에도 학교에 오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다. 

 

비밀의 언덕
국내외 유수 영화제의 주목을 받은 영화 ‘비밀의 언덕’의 공식 포스터.(사진제공= (주)엣나인필름)

 

우연히 동네 고깃집에서 만난 반 친구의 엄마를 짐짓 모른 채 하며 회사원인 아빠와 평범한 가정주부인 ‘가짜가족’을 등장시킨다. 사실 굳이 이렇게까지 ‘사악한 열두살 여자아이’의 거짓말을 봐야 하나 싶지만 이 영화로 첫 장편을 만든 이지은 감독의 ‘밑밥’은 딱 거기까지다.

영화 후반부에는 대안가족을 이룬 전학생 자매를 필두로 명은이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나이는 어려도 명은이 보여주는 삶은 명확하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각종 SNS에 행복배틀을 벌이고, 극도로 예민한 2023년 성인들의 모습이다. 영화가 투영하는 그들의 삶은 관심과 사랑에 고픈 바쁜 현대인들의 정신적 허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반장이 된 후 주목받는 것에 익숙했던 명은은 교과서적인 방식으로 승승장구한다. 영화는 ‘늘 솔직하라’는 어른들의 가르침이 결코 통하지 않는 현실세계를 간과하지 않는다. 상처받는 진실이 가족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 마냥 행복한 관계는 없다는 것, 적당한 거짓말을 통해 누군가 행복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것을 ‘비밀의 언덕’은 탁월하게 그려낸다.

5일 열린 언론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지은 감독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10대 여성의 캐릭터를 그려보고 싶다는 감독으로서의 욕망이었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발칙하면서 뜨거운 욕망을 가진, 기존에 보지 못한 작은 10대 인간”이라면서 “비록 종이 한 장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편견, 직업에 대한 편견 등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며 연출의도를 밝혔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출연 배우들은 독립영화의 지존이자 한국 영화의 미래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가장의 무게를 연기한 강길우, 딸 역할의 문승아를 비롯해 오빠와 담임, 속 정 깊은 엄마까지 단 한 명도 버릴 존재는 없다. 출연 자체로 빛나는 배우들의 미래가 기대될 정도로 ‘그래, 내 옆에 이런 사람들 한 명은 꼭 있지’싶은 보는 맛을 경험할 수 있다. 12일 개봉.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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