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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있다!

입력 2023-07-26 20:52 | 신문게재 2023-07-2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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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자 시각 미술가(사진=허미선 기자)

 

“노(No)!”

“빠른 속도에 익숙한 젊은 대중에 친숙한 문법의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 감독이자 작가의 대답은 부드럽지만 단호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을 생각하거나 의식한 적은 없어요. 좀 오만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영화를 만들 때만큼은 누군가를 즐겁게 해준다든가 만족시켜야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실생활에서는 그렇게 하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맞춰주고. 하지만 영화만큼은 누군가를 만족시켜야 한다든가 무언가와 비교하지 않아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1994년 단편영화를 만들기 시작하고 1998년부터 다양한 나라에서 전시와 설치작업을 진행하며 2000년 첫 장편영화를 완성했던 그는 2010년 태국 정글을 담은 ‘엉클 분미’로 칸영화제 황금종료상과 2021년 ‘메모리아’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영화감독이자 멀티스크린 프로젝트 ‘프리미티브’ ‘불꽃놀이’ ‘불가시성’ 등을 비롯해 ‘별자리’ ‘픽션’ ‘슬립시네마호텔’ ‘사소한 역사’ ‘태양과의 대화’ 등을 작업한 시각미술가이기도 하다.

태국 치앙마이에 거주하며 시카고를 비롯한 다양한 도시를 오가며 활동 중인 그의 작품들은 테이트모던, 루이비통재단미술관, 조르주퐁피두센터, 도쿄도현대미술관,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28일까지 치러지는 서울국제실험영화 페스티벌 참여차 내한한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필름앤비디오(Film&Video)와 무빙이미지포럼이 공동주최하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023 서울국제실험 영화페스티벌 인디비주얼’(9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영상관) 관련해 한국 기자들을 만났다.

 

◇반 내러티브 사고, 그 안에 녹여낸 나와 삶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자 시각 미술가(사진=허미선 기자)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자 시각 미술가(사진=허미선 기자)

“영화의 속도감도 촬영 당시 제가 느꼈던 속도감에 맞춰 제작됐어요. 지난달 뉴욕에서 제 영화가 상영했는데 20대 관객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중 한명은 제 영화를 28번이나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놀랐죠. 뭔가를 창작할 때는 직감에 이끌려 만들지 누군가에게 맞춰야 한다는가, 지루할까 등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023 서울국제실험 영화페스티벌 인디비주얼’은 서울국제실험영화 페스티벌 20주년을 기념하는 상영 프로젝트다. 비선형적인 이야기 구조로 기억, 상실, 정체성, 욕망 그리고 역사 등을 주제로 삼은 짧게는 1분(그리고 백만 개의 불), 길게는 60분(유령의 집)짜리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중단편 29점을 4개 섹션으로 나눠 소개한다.

그의 작품 특성은 “반(反) 혹은 준 내러티브 사고에 녹여낸 제 자신과 삶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처럼 “색채, 미장센 등은 미리 구상하기 보다는 공간에 의해서 정해진다.”

“그 장소에서 보여주는 색들, 체감, 온도, 기억들 그리고 그때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 배우들 등이 작품의 요소로 작용하죠. 햇빛, 자연광에 매력을 느끼는데 변하는 빛, 그림자들 그리고 그 빛에 반응하는 제 감정 등이 작품의 요소가 되죠. 가끔 흑백으로 작업하기도 해요.”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기도 하는 ‘정글’에 대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정글은 원초적인 공간”이라며 “도시에서 사람과 같이 있는 것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정글에서는 긴장을 풀게 되고 경계심이 무너진다”고 털어놓았다.

“초록빛의 색감과 햇빛 등이 규칙이나 교육, 조건 같은 것이 없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듯합니다. 정글에서는 저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마치 아이들처럼 그런 상황에 있을 수 있어요. 우리 행동에 대해 심판을 하는 사람도 없고 성적 취향, 삶과 죽음, 종교, 신념 등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런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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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자 시각 미술가(사진=허미선 기자)

 

그의 작품 속 주요 요소 중 하나인 ‘내레이션’에 대해서는 “제 자신의 확장 혹은 연장선상, 내지는 저와 가까운 친구의 연장선상”이라 정의하며 “스토리가 담긴 내레이션이 아니라 제 인생 중 특정한 시기를 살짝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분명 제가 만든 것인데도 10년 전, 20년 전 그때와 지금의 저는 현저히 다르거든요. ‘영화를 만든다’는 ‘필름 메이킹’이라는 작업 자체가 일종의 일기를 쓰는 것 혹은 타임 스텝(Time Step)을 찍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이어 “영화는 세상으로부터 막아주는 방패 같은 것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제 눈의 연장선이기도, 뭔가를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다”며 “그 다리가 잘 다져질수록 방패라는 것은 좀 투명해진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영화를 만든다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라는 것이 말 그대로 ‘나를 포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좀 두렵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편하질 않아요.”


◇‘메모리아’의 틸다 스윈튼 그리고 젠지라 퐁파스와 사크다 카에부아디

영화 메모리아
영화 ‘메모리아’(사진제공=찬란)

 

“태국에서 벗어나 작업을 해야 해서 어려웠지만 틸다 스윈튼과의 작업은 좋았어요. 그가 태국의 제 집에 와 있는 건 상상할 수도 없어서 우리 둘 다 이방인인 곳에서 촬영을 하게 됐죠. 제 기억에 의존해서 만든 영화가 아니라 제가 스펀지가 돼 타인의 기억을 흡수하는 동시에 제 상태를 당시의 틸다 스윈튼 상태에 동기화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틸타 스윈튼과 함께 작업한 영화 ‘메모리아’에 대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당시 틸다의 마음 상태는 슬픔이 가득했고 고독감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부연했다. 그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젠지라 퐁파스와 사크다 카에부아디에 대해서는 “제 가족과도 같은 분들로 제 인생은 물론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굉장히 존재감이 강해요. 그분들이 인생을 살면서 보여주신 태도를 보고 있으면 제가 부족하다고 느껴요.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으시고 저와 공유해주시죠. 그들에게 최악의 순간들도 있었어요. 집이 없어 길거리에서 살면서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걸 찾는 생활도 했고 젠지라는 학대를 당하는 관계들을 연달아 맺기도 했어요.” 

 

엉클 분미
영화 ‘엉클 분미’(사진제공=백두대간)

 

그들의 “그런 모습들을 보며 혹은 촬영을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며 “인생을 즐긴다는 게 어떤 건지,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를 배우고 시련들을 어떻게 겪고 견뎌낼 수 있는지도 배우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어떤 순간에도 이렇게 웃을 있게 됐고 선과 악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갈리는 게 아님을 배웠죠. 소위 악당이라 불리는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련이 있고 그 시련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굉장히 복잡하죠.”

그는 최근 작업 중인 새 영화에 대해 “낯선 환경에서 경험이 다른 배우들과 함께 ‘메모리아’를 만들면서 젠지라가 보고 싶어졌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다시 젠지라, 사크다와 또 작업을 하게 됐어요. 또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예전처럼 같은 배를 타지만 다른 일을 해보는 그런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거장을 만드는 실험의 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자 시각 미술가(사진=허미선 기자)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이자 시각 미술가(사진=허미선 기자)

 

“지금 세대들에게는 모든 장소들, 모든 예술의 형태들이 통합된 것 같아요. 모두가 크리에이터죠.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을 가면 수동적으로 흡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관계를 맺곤 하거든요.”

이어 “단순히 보기만 하기 보다는 좀더 액티브하게 생각하고 직접 촬영을 한다”며 “영상이라는 것을 보편적인 언어로 생각하고 또 다른 새로운 언어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저 또한 궁금해요. 우리는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영화란 무엇인가 등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화’는 그저 단어일 뿐이에요. 제 세대에게 영화라는 건 조작이 가능한 매체이고 어떻게 보면 프레임이 있는 그 어둠 속에서 다 함께 집합적으로 꿈을 꾸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대와는 현저히 다르죠.”

실험영화 전문학교인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스쿨 출신인 그는 “그래서 실험 정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제가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지 않지만 2, 30대 때에는 굉장히 많은 영화를 봤고 음악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나잇대는 많은 것이 형성되는 시기예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게 중요하죠. 제가 다닌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스쿨은 실험영화만을 하는 곳이에요. 홍상수 감독, 서울국제실험 영화페스티벌의 박동현 집행위원장 등이 그 학교를 다녔고 그 영향으로 지금도 페스티벌, 작품활동 등을 하고 있죠.”

그리곤 “올해부터 서울시가 갑자기 지원금을 끊었다고 들었다”며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실험영화까지를 굉장히 존중해주는 중요한 영화제인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짚었다.

“저는 물론 홍상수 감독 등도 그런 실험영화들을 보고 성장했어요.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도 새로운 영화에 대한 경험의 기회가 꼭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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