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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민주적 vs 독단적 혁신’ 아무도 아이폰을 원하지 않았다

입력 2023-03-2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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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시장경제라는 개념은 경제학 책이나 이론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마치 공기처럼 일반 대중의 삶 속에 자연스레 존재해 왔다. 주위에 보면 간혹 아담 스미스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창시한 것으로 묘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시장경제의 작동방식은 그렇게 교조적이지도 않고 지식인들의 전유물도 아니며, 일반인의 상식에 더 가깝다.

특히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 정보, 지식이 녹아 들어서 그 과정이 매우 ‘민주적’이다. 간혹 민주적으로 형성되지 않는 가격도 있는데 그것은 거래 쌍방 중 어느 한쪽이 너무 우월한 시장지배력을 갖고 책정하는 가격으로, 독점가격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독점의 경우 빼고는 대부분의 시장가격은 민주적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 있고, 정상적인 시장경제는 그 자체로 ‘민주적’이다.

이런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혁신’일 것이다. 슘페터는 지나치게 수학적 모델에 집착했던 과거 경제학자들에게 혁신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서 유명해진 바 있다. 1990년대 후반 경영학에는 하버드의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론이 소개되어 주목을 받았었다(물론 아직도 이 이론은 유효하다). 크리스텐슨은 그의 저서 ‘성공기업의 딜레마’에서, 혁신과 관련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기술과 자원이 많은 선도기업들이 작은 무명 기업이 만든 혁신적 제품에 맥없이 쓰러지는가?”

그가 주로 거론했던 사례는 미국의 미니컴퓨터 시장이었다. 과거 1980년대 DEC, Prime, Wang 등 미니컴퓨터의 강자들은 최초 PC가 나왔을 때 왜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했는가? 사실 미니컴퓨터 회사들은 당시 충분히 애플과 같은 작은 회사에 대응할 기술력과 자본도 있었지만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결국 모두 몰락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민주적이고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는 전통적 시장조사에 의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크리스텐슨의 설명이다.

당시 미니컴퓨터 회사들의 시장조사에 따르면 고객들은 PC를 열등재로 보아 대다수가 PC구매에 관심이 없었다. 고객이 원치 않는데 왜 만들겠는가? 그런데 그러다 보니 결국 모든 미니컴퓨터 회사가 망했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텐슨이 말한 성공기업(여기선 미니컴퓨터 업체들)의 딜레마이다.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 보자. 국내 유명 전자회사 L은 애플의 아이폰이 최초로 개발되었을 때 국내 S사와는 달리 스마트폰 생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당시 맥킨지 컨설턴트를 중용했던 이 회사의 CEO는 이들의 민주적 시장조사 방식을 선호했다. 이들은 많은 돈을 들여 시장조사를 했는데 그 결론은 ‘한국 고객들이 아직 스마트 폰에 대해 준비가 안되어 있기에 시장성이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몇 년 뒤 스마트 폰 시장은 폭발적 성장을 했고 L회사는 초반의 큰 기회를 날려버렸다. 계속 후발주자로 추격은 했으나 결국 몇 년 전 휴대폰 사업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우리가 가장 흔히 알고 있는 시장법칙 중 하나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성공한다’ 라는 간단한 마케팅 원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항상 진실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과거 매킨토시를 개발할 당시, 부하직원들이 사전에 시장조사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No. Because customers don‘t know what they want until we’ve shown them” (아니, 고객들은 그들이 무얼 원하는지 몰라... 우리가 그걸 만들어 보여주기 전까진...) 그리고 그는 자동차를 개발한 헨리 포드의 말을 인용했다. “If I‘’d asked customers what they wanted, they would have told me, ‘’A faster horse!‘’ (만약 내가 소비자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보았다면, 그들은 ‘더 빠른 말!’ 이라고 대답했을 것.)

고객들은 현재 제품의 작은 개선에 대해선 좋은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판도를 바꿀만한 큰 파괴적 혁신에 대해선 꿈도 꾸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오직 독창적 비전을 가진 몇몇 천재들만 사전에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어서 고객의 손에 쥐어줄 때까지 아무도 아이폰을 사전에 ‘원하지’ 않았다. 그가 아이폰을 창조한 다음, 소비자들은 그것을 써보곤 그 제품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잡스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때로 독단적으로 고객을 무시해도 된다고…. L전자와 미국의 미니컴퓨터 회사들이 너무 시장조사에만 의지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판도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겐 시장조사 보고서에는 나타나지 않는 비범한 통찰력과 결기가 없었다.

대중이 상상을 못하는 혁신의 경우, 시장조사란 덧없는 것이다. 진정한 혁신은 민주적 의견수렴으로 나오지 않는다. 천재적 비전을 가진 사람의 개인적 독창성이 제품으로 출시되어 훗날 대중들이 환호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특히 예술성 높은 제품이 그렇다. 우리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이나 BTS의 현란한 안무를 사전에 원했었는가? 아마도 그것이 나온 다음에 환호했을 것이다. 아무도 말춤을 사전에 원하지 않았다.

진정한 혁신자는 현재의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고객의 욕구를 간파하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즉, 이들이 현재 고객을 무시하는 듯하여 독단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미래 고객들을 위하는 것이기에 나름 ‘민주적’일 수 있다. 통상 우리는 독단적인 결정은 잘못된 것이고 모든 사람의 현재 의견을 반영한 결정은 민주적이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기업혁신 관련해서는 그 논리가 항상 맞지는 않는다. 스티브 잡스 이외에도 일론 머스크,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 많은 성공한 CEO들도 민주적 의사결정만 따르지는 않았고 독단적 의사결정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현재 많은 대중이 원하는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 혁신도 아직 많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주행거리가 훨씬 긴 전기자동차를 개발하는 것은 지금 모든 대중이 원하는 것이어서 개발만 된다면 성공 확률이 높다. 꼭 날아다니는 자동차만 꿈꾸란 법은 없는 것이다.

그럼 경영자는 언제 독단적이어야 하고 언제 현재의 대중적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가? 궁색한 대답이지만, 궁극적으로 그 해답은 현명한 통찰력을 가진 경영자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시장경제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간혹 창조적 독재자들이 나타나 우리를 무시할수록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 잔인한 운명을 타고 났는지 모른다.

 

이웅희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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