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뉴스 > 문화 > 방송·연예

100세 시대의 진정한 행복은? '용서'

마음 속 상처·분노·적개심, 스스로 불행하게 만들어

입력 2014-09-15 22:26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20140916010001822_1 (1)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게 하는 문(門)입니다." 

  

지난달 14일 4박5일 동안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마지막으로 남긴 용서와 포용, 화해의 메시지다.

용서(容恕)의 사전 의미는 '관용을 베풀어 벌하지 않음' '지은 죄나 잘못한 일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줌"이다. 용서(容恕)의 서(恕)는 "내 마음(心)과 같이(如)한다"는 뜻이다. 공자는 부모에 대한 효와 형제간 우애, 성실성, 이웃에 대한 신의 등 4가지 덕목의 시작이 '내 마음과 같음'에 있다고 보았다.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에 깊이 박혀 있는 상처와 분노, 적개심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잊히지 않은 채 되레 오늘의 나를 괴롭힌다. 나의 분노와 적개심의 당사자는 오히려 내가 그러는 줄도 모를 것이다. 노예출신 장애인 철학자로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과 함께 로마시대 스토아학파를 완성한 3인으로 추앙받는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결국 너의 팔자다.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가 인간을 더 고민하게 만드는 것, 믿음과 욕망, 행복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

링컨이 에픽테토스의 지혜를 잇는다. 그는 "인간은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만큼만 행복해진다"고 했다. 에픽테토스와 링컨의 말은 세상만사가 나하기에 달렸다는 의미이다. 스스로 마음속 분노와 적개심, 화, 분개를 털어버리지 못하고, 얽매어 사로잡혀 있다면 결코 정신적으로 행복할 수도, 육체적으로 건강할 수도 없다. 자신에게 분노와 분개, 적개심을 준 이를 용서하지 못한 채 얽매어 있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다.

스스로 관용을 베풀어 화해하는 것은 결국 '내 마음과 같음'이다. 나에게 잘못한 이의 탐욕도 내가 가진 탐욕 만큼이었고, 그의 이기심도 나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에 잘못 한 이를 용서하는 것은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자신과 화해다. 오히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자신도 모르게 다른 이를 분노케 한 일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분노와 분개, 적개심 등이 몸을 해롭게 한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분노와 적개심에 사로잡혀 화를 내면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시켜 심장에 부담을 높여 자율신경에 장애를 가져오고 호흡장애와 근육마비, 소화불량 등을 일으킨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공자는 용서의 가치를 강조했다. 에픽테토스와 링컨은 행복은 나하기에 달렸다고 설파했다. 용서해서 화해하고, 행복을 찾는 것은 결국 나하기에 달린 것이다.

지금 나를 분노케 하는 이는 누구인가? 배우자일 수도 있고 자녀일 수도 있다. 형제나 직장상사나 동료,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의 대부분은 100세 시대를 함께 할 평생 동반자들이다. 취미활동이나 직업은 선택이지만 배우자 등 나를 둘러싼 이들은 필수다. 이들과 화해하지 않는 한 100세 시대 행복은 있을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관용과 배려, 용서와 화해를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방형국 기자 waynecook@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