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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무엇이 모방범죄를 부추기나

입력 2023-09-13 14:17 | 신문게재 2023-09-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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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이후 모방 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서현역 인근 백화점에서의 흉기난동 사건, 신림동 둘레길 성폭행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신림동에서 흉기를 휘둘러 4명의 사상자를 낸 조선도 묻지마 살인은 지난 6월 홍콩의 쇼핑몰에서 30대 남성이 처음 보는 20대 여성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범죄를 모방한 것이다.

물론 이런 모방범죄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1971년 미국에서 일어난 여객기 납치사건이 탈출 수법 등이 자세히 보도되면서 이듬해 항공기 납치사건이 31건이나 일어났다. 현실이 아닌 논픽션 상황에서도 모방 범죄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2007년 2월 유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그놈 목소리’가 개봉된 직후 3월 11일 인천에서 이와 매우 흡사한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모방 범죄자들은 어떤 심리로 모방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까?

범죄자들은 범행을 기획할 때 자발적인 과정이나 학습을 통해 얻은 직접적인 경험 요소들이 축적돼 범행 구상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범죄자가 저지른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범행을 구상한다. 그 때문에 범죄자들은 다른 범죄자들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봤을 때 호기심을 갖게 되고 이를 그대로 모방하거나 범행 수법을 보완하는 등으로 범죄를 구상한다. 무엇보다 모방 범죄는 선례를 통해 더욱 치밀하게 범행을 구상할 수 있고 범행 목표 달성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방 범죄를 선호한다. 창의적인 범죄가 무모한 도전임을 안다는 뜻이다.

모방 범죄가 확산되는 또 다른 이유는 언론의 범죄 보도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언론사의 범죄 보도는 사건의 재발예방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하는데 사건의 잔혹성을 부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10개 종합 일간지에서 살인사건을 다룬 기사를 분석해본 결과 93%의 기사들이 범죄 내용만을 다뤘다. 사건의 근원적 문제와 재발방지 대책 관련 기사는 7%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모방 범죄자들이 상세한 범죄 보도를 통해 범죄를 계획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의 범죄 보도는 범죄자들의 모방범행 욕구를 더욱 자극한다.

아울러 끔찍한 범죄 기사를 여러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보도하게 되면 모방 범죄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해당 범죄에 둔감해지며 ‘아! 이 정도는 끔찍한 사건이 아니야, 나도 가능하겠는걸’이라고 생각한다. 1999년 미국 펜실베니아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이 5시간 동안 생중계로 보도된 후 50일 동안 펜실베니아 주 고등학교 총기난사 협박 사건이 354건으로 급증했다.

마지막으로 모방 범죄는 개개인의 잠재적 문제가 증폭돼 어떤 계기로 반복된 사건이다. 모방 범죄자들을 공통된 범주의 사회현상 프레임으로 씌울 게 아니라 개개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옳음과 그름의 이분법에서 다름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에서 하위로 밀려나면서 쌓인 잠재적 분노가 삐뚤어진 방향으로 나아간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에게 있는 고유한 원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서는 도심에 경찰특공대나 장갑차를 배치하거나 의경 제도를 부활해도 범죄는 근절되지 않는다.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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