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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탐구생활] 장애인에도 이동권 보장돼야… 정부 '경계 없는 사회 약속' 지켜질까

국내 등록장애인 260만, 80%가 후천적
정부, 교통약자 정책 예산 감액… 정책 퇴행 우려

입력 2024-04-28 13:23 | 신문게재 2024-04-2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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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되는 다이 인 참가자<YONHAP NO-2350>
장애인의 날인 20일 오전 서울 한성대입구역에서 진행된 다이 인 퍼포먼스에서 참가자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연합)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고, 복지 증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그러나 지난 20일 제 44회 장애인의 날에는 장애인 단체가 차별에 항의 하는 뜻으로 죽은 듯 드러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단체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4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들로 이뤄진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100여명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승강장에 누워 장애인 권리 보장 관련 법안들의 조속한 입법을 요구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일부 활동가들의 역사 진입을 제지하고 시위 중인 이들을 대상으로 강제 퇴거 조치를 했다. 장애인 활동가 2명은 역사로 들어가려다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또 전날 저녁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휠체어로 승강기 문을 들이받은 혐의로 이규식 전장연 공동대표가 경찰에 체포됐으며, 활동가 1명은 서울교통공사 직원과 몸싸움을 벌이다 체포됐다.

전장연 등 장애인 단체들은 “시혜와 동정으로 얼룩진 ‘장애인의 날’을 거부한다”며 2002년부터 이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명명하고, 해마다 노동·인권 등 사회단체들과 함께 공동투쟁단을 꾸려 연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전장연 등은 지난 2021년부터 집회와 지하철 탑승 시위 등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의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과 시위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장애인 이동권의 취약성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민 불편을 초래한데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하철 탑승하는 장애인<YONHAP NO-2044>
23일 오전 광주 도시철도 1호선 문화전당역에서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지하철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23년도 등록장애인 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등록 장애인 수는 264만 1869명으로, 전체 인구의 5.1%를 차지한다. 지난 2018년부터 인구 대비 비율이 5%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중 약 37.0%(97만 8624명)는 장애가 심한 경우, 63.0%(166만 3262명)는 심하지 않은 경우에 속한다.

장애유형별 비중은 지체장애(43.7%)가 가장 많았으며 청각장애(16.4%), 시각장애(9.4%), 뇌병변장애(9.1%), 지적장애(8.7%) 등 순으로 분포를 나타냈다. 비중의 변화 추이는 지체장애와 뇌병변장애가 감소세를 보인 반면, 청각장애와 발달장애(지적장애·자폐성장애), 신장장애는 증가세를 보였다.

장애 발생원인은 후천적 요인이 압도적이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후천적 원인이 80%에 달했다. 원인은 질환 43.6%, 사고 36.4%, 원인불명 10.7%, 선천적 원인 7.9%, 출산 시 원인 1.4% 등 순이었다. 수치상으로 봤을 때, 비장애인 누구나 질환 또는 사고 등을 겪고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후천적 요인이 과반을 차지함에도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제도적 배려는 미흡한 실정이다.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저상버스 보조금과 연구개발비를 대폭 삭감하는 등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지원’ 사업 예산을 30% 감액했다.

차체 바닥을 낮춰 휠체어 탑승을 가능하게 하는 ‘저상버스’ 도입 보조금은 지난해보다 줄었다. 올해 저상버스 도입 보조금 예산 규모는 1674억 9500만원으로 지난해(1895억 1900만원)보다 220억 2400만원(11.6%) 줄어든 수준이다.

국토부는 “버스 생산업체들이 저상버스를 원활하게 공급하지 못해 예산 집행이 저조해 예산을 부득이하게 줄이게 됐다”면서도 “저상버스 도입 예산은 대·폐차 시 지원하는 비용으로, 예산 삭감에도 저상버스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외에 국토부의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예산 중 여객터미널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BF) 인증 사업 관련 예산도 지난해 대비 반토막이 났다. 올해 예산은 2억 6000만원으로 지난해 4억 5000만원에 비하면 42.2%가 줄었다.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지원’ 사업 예산 역시 올해 3억 5000만원으로 지난해(5억원)보다 30% 감액됐다.

다만, 올해 전체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예산 규모는 2312억원으로 지난해(2245억원)보다 약 67억원(3%) 증액됐다.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 도입 보조 예산이 약 338억원에서 593억원으로 255억원(75.4%) 늘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실제 집행되지 못한 불용 예산이 많은 사업은 일부 감액하되 동시에 사업 활성화 방안을 검토해 예산을 운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상버스 증가세 둔화는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국토부의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22~2026년)’에 따르면, 시내 저상버스의 대차 및 신규 대수는 2019년 1619대, 2020년 1558대, 2021년 1378대 등으로 집계됐다. 

 

 

29_저상버스
 

2021년 시내 저상버스 보급률은 30.6% 수준으로 제3차 증진 계획의 목표였던 42%에 크게 못 미친다. 정부는 기존에 도입된 저상버스의 차량연한 만료로 폐차가 급증하고, 운영비 부담 등으로 저상버스가 일반버스로 대차되는 등 저상버스 보급확대의 제약요인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지난 2022년 ‘교통약자법’ 제14조를 개정, ‘대폐차시 저상버스 의무도입’ 조항을 넣었으나 올해도 저상버스 도입 보조금 예산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2021년 기준 시내버스(30.6%)와 비교해 마을버스(3.9%) 및 농어촌 버스(1.4%)의 저상버스 도입비율은 더욱 낮다. 마을버스 전체대수가 5592대, 농어촌 버스 전체대수가 2067대일때, 저상버스는 각각 217대, 28대에 불과했다. 시내버스 대비 중형버스 비율이 높고, 도로여건 등이 열악해 저상버스 도입이 더 낮은 것으로 판단됐다.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라는 목표 설정이 무색한 성적표다.

현 정부는 출범 당시 ‘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사회’를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 ‘장애인 맞춤형 통합지원을 통한 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사회 구현’을 포함하고 세부 이행과제로 △휠체어 탑승버스 및 장애인 택시 확대 △자동차 전용도로 주행 가능 저상버스 표준모델 개발 △역, 터미널 등 교통시설 BF 인증 재정지원 확대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정책추진 의지가 시들해져 연구사업이 부실해지게 되면 민간투자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출퇴근 시간대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길에 불편을 겪었다는 내용은 시위가 있을 때마다 보도되고, 개인 SNS 등에 공유된다. 각자의 일터로 출근하고 보금자리로 퇴근하기 위해서는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동’은 사회로 나가는 시작점이다.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가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이동에 불편함을 겪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비장애인 역차별’이라는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사회적 발전의 측면으로 조망해야 하는 이유다.

임지원 기자 jnews@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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