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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악어의 눈물’

[책갈피] 악어의 눈물

입력 2023-08-07 18:00 | 신문게재 2023-08-0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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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한 남자가 죽었다. 이름은 구노 고헤이. 귀갓길 길거리에서 한 남자의 칼에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그는 히가시카마쿠라 역 앞 ‘도키야 깃페이’라는 도자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동네 명사 사다히코와 아키미 부부의 하나뿐인 아들이다.   

 

8층짜리 상가를 짓는 일을 두고 상인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재개발 이슈가 한창인 지역에 자리잡은 노포 도자기점에서 가업을 잇기 위해 아버지, 어머니의 일을 돕고 있었다. 그에겐 소요코라는 아내와 세 살짜리 아들 나유타가 있었고 그들이 할머니 제사를 위해 규슈에 있는 친정에 다니러 간 사이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에게 고한다’와 영화화된 ‘불티’ ‘비터 블러드’ ‘가면동창회’ ‘염원’ ‘스카우트실 1, 2’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 시즈큐이 슈스케 신작 ‘악어의 눈물’은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가족 틈새로 스며드는 의심에 대한 이야기다. 외국어 교재의 명가 시사북스가 지난해 론칭한 단행본 브랜드 ‘빈페이지’의 세 번째 출판물이다. 

 

악어의 눈물
악어의 눈물|시즈쿠이 슈스케(사진제공=빈페이지)

그들 가족 주변에는 아키미의 언니 하루코와 그의 한량같은 남편 다쓰야가 머무르고 있다. 예민하고 약한 아키미와는 달리 유명 샌드위치 가게 사장인 하루코는 스튜어디스 그리고 긴자의 문단바(문단 관계자들이 단골인 바) 호스티스 출신으로 지칠 줄 모르는 활력의 소유자다. 그 스스로도 에세이스트이자 TV, 라디오 등의 출연으로 꽤 유명인사인 하루코는 밴드 기타리스트였던 다쓰야와 불륜 스캔들 끝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일상처럼 어울려 살던 가족 간에 의심이 불거지고 균열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핵심은 ‘시점’이다. 이야기가 누구의 시점으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일본 독자들은 물론 출판사 관계자들까지 고헤이 죽음의 사주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정도다.

 

이야기는 순차적으로 서술된다. 이야기의 초반은 며느리 소요코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아키미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지나치게 침착하고 예의바르며 착한 며느리가 남편 고헤이의 죽음을 접하는 태도부터 거슬리더니 범인이 소요코의 전 연인 구마모토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의심은 더욱 깊어진다. 

 

설상가상 최종판결이 내려지던 법정에서 구마모토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남편의 가정폭력이 심해 매일이 지옥같았다” 하소연하는 소요코에게 “부탁을 받아 죽였다”고 폭로하면서 의심은 증폭된다. 분가해 육아에만 전념하던 며느리가 ‘도키야 깃페이’에 들를 때면 아들의 가정폭력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아키미에게 “가정폭력은 없었다”는 소요코의 말은 그 의심을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한다.

 

더불어 하루코가 알고 지내던 주간지 기자의 이런 저런 취재정황 공유, 그를 기반으로 한 충격적인 가정들, 손자 나유타가 보는 앞에서 계단을 굴러 다치는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나유타가 고헤이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여기까지 소요코는 얌전하거나 예의바르거나 착한 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교묘하게도 잘 감추는 음흉하고 교활한 여자처럼 여겨지게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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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그 의심이 소요코와 나유타를 오롯이 가족으로 받아들인 남편 사다히코에게 공유되면서부터는 그의 시점으로 보게 된다. 사다히코가 소요코와 나유타의 미래를 가늠하며 재개발을 두고 고민하던 즈음이었다. 나유타가 죽은 아들의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똑같은 일상마저 전혀 다르게 다가오게 한다. 하지만 사다히코의 의심은 DNA 검사결과로 금세 풀린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아키미와 하루코의 의심. 이후 이야기는 소요코에 대한 의심이 깊어만 가는 아키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요코를 의심하는 아키미의 시점을 믿어도 좋은지 ‘의심’하게 한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다히코가 소중히 여기는 도자기의 실종, 그 사건의 정황을 빠르게 유추해내 의심을 받으면서도 진범이 누구인지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못하는 소요코는 또 다시 아키미의 의심을 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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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그리고 진실이 밝혀진 후 하루코와 다쓰야의 선택. 그들 선택의 유일한 목격자는 소요코 혼자였다.   

 

폭풍같은 의심과 명료했던 시점의 변화 등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 18장으로 이뤄진 소설은 마지막 장에 가서야 진실을 설명한다.

 

마치 17회차 모의고사로 구성된 문제집의 답안지처럼 18장은 소요코의 시점으로 명료하게 아키미가 의심한 태도, 심리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편의 죽음에도 고요한 태도를 유지한 이유, 가정폭력에 대한 시부모의 물음에 “없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던 심정, 가업을 이어받은 후 만기출소한 구마모토와의 재회 등이 꽤 담백하게 서술돼 있다.  

 

하지만 ‘악어의 눈물’은 소설이다. 그리고 ‘시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롯이 18장만이 소요코의 시점으로 서술돼 ‘진실’을 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시즈쿠이 슈스케는 미스터리의 대가이며 독자와의 심리게임을 즐기는 작가이기도 하다. 

 

더불어 사람의 심리는 수학문제처럼 딱 떨어지게 답을 내리거나 털어낼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 이야기는 서술자의 기록이다. 18장이 정답지라고 온전히 믿기 어려운 이유다. 그렇게 ‘악어의 눈물’은 수학문제집인줄 알고 풀었더니 논술 문제집인 느낌의 소설이다. 어쩌면 스즈쿠이 슈스케가 독자들에게 내는 추리문제집일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치고는 다소 밋밋한, 만연체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초반의 이야기 진행에도 소요코에 대한 의심과 진실을 향한 궁금증이 커져 책장을 넘기게 되는 이유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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