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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돌꽃, 연극 40주년 맞은 윤석화

[사람人] 헌정연극 '마스터 클래스' 윤석화

입력 2016-03-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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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석화는 "40년 동안 걸어오다 보니 '난 무엇을 위해 연극을 했나', '지금 난 어디에 있는가'라는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고 말문을 열었다.(사진=양윤모 기자)

 

얼마 전 환갑을 맞았지만 그는 여전히 소녀였고 청년 같았다. 예술인의 길 40년, 눈빛은 여전히 예민했으며 눈웃음은 순수했다. 그리고 연기를 향한 열정은 여전히 펄펄 끓고 있었다.

윤석화가 연극인생 40주년을 맞아 ‘마스터 클래스’(3월 10~20일 LG아트센터)를 18년만에 무대에 올린다. 지난해 60주년을 맞았고 윤석화 최초의 모노드라마 ‘목소리’, ‘하나를 위한 이중주’, ‘푸시케 그대의 거울’, ‘딸에게 보내는 편지’ 세계 초연 등을 함께 무대에 올렸던 임영웅 연출이 진두지휘에 나섰다. 성희롱 사건에 휘말려 두문불출하던 구자범도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며 반주자로 무대에까지 오른다.

1998년 초연 당시 함께 했던 류정한의 서울대학교 동창인 이상규 테너, 제자 배해선, 이유라도 합류했다. 요즘 윤석화는 눈시울을 붉히는 일이 잦아졌다. 임영웅 연출의 “윤석화는 당돌한 여배우였다”는 회상에도, 여전히 “형”이라고 호칭하는 유인촌 전 문화부장관의 어머니에 대한 물음에 어김없이 눈물을 흘렸다.

“괜히 40주년이라고 하니 뒤안길을 자꾸 보게 돼요. 고마웠던 일, 힘든 기억들이 새록새록 하죠. 좋은 말로 하면 촉촉해지는 거 같아요. 감사한 거 투성이지만 오늘 살아 있음에, 오늘 연기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죠.”

스스로 “나는 공주도 여왕도 마님도 아닌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고 표한 그는 요즘의 심경을 이렇게 전했다.

 

연극 마스터클래스 메인포스터
윤석화의 연극인생 40주년 기념 연극 '마스터 클래스'.(사진제공=돌꽃컴퍼니)

◇불꽃같은 삶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 닮은 듯 다른 윤석화

 

“어릴 때 봤던 마리아 칼라스는 다른 성악가와는 달랐어요. 감정이 있었죠. 같은 노래도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면 달랐으니까요.” 

 

연극 ‘마스터 클래스’의 주인공인 마리아 칼라스는 이탈리아 인들에게 라 디비나(오페라의 聖女)라 불리는 성악가였다. 세계 최고 부자인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결혼했지만 재클린 케네디에게 빼앗기고 젊은 나이에 파리 아파트에서 홀로 쓸쓸히 죽어갔다.

 

“여자로서는 불행한 삶이었어요. 하지만 그녀가 오페라를 사랑할 때 자세나 생각은 제가 연극을 할 때랑 닮아있어요. 연극을 사랑해서도 하지만 지겨워서도 열심히 하거든요. 이런저런 이유로, 하물며 지겹다는 이유까지 안고 연극을 하는 건 관객이 저에게 준 사랑을 잊지 못해서예요. 책임감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들이 이미 너무 많이 떠나간 걸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저도 이미 관객을 너무 사랑해 버렸어요.”

 

그래서 그는 연극무대를 떠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꼬꾸라질 것처럼 온힘을 다해 무대에 임하는 점도 마리아 칼라스와 윤석화가 닮은 점이다. 윤석화는 “지금 죽어도 여한 없는 것처럼, 제딴에는 120%의 힘을 발휘한다. 무대가 아닌 극 마디마디 마다”라고 털어놓았다.  

 

연습실_윤석화
'마스터 클래스' 연습 중인 윤석화.(사진제공=돌꽃컴퍼니)

 

“마리아 칼라스가 목소리를 잃었지만 얼마든지 그 이름만 가지고도 할 일이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도 홀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건 죽어도 무대에 혼신을 다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죠. 단 그녀와 제가 다른 건 저는 작품이 마음에 들면 지나가는 역할도 상관없다는 거예요. 마리아 칼라스는 전세계 디바로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 간극을 메우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전 그녀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있는 거죠.”

 

이 말 끝에 윤석화는 이영애·유지태 주연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의 할머니로 출연했던 故백성희를 언급했다.  

 

“양산을 들고 골목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은 압권이었어요. 할머니가 되더라도 저 신은 내 모든 인생을 담은 연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든 연극이든 드라마든 작지만 오래한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태, 모습, 혹은 향기를 낼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어요. 오늘 또 그런 일을 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저는 진짜 오늘밤 죽는다 해도 배우로서는 여한이 없어요.”



◇고난이 곧 축복인 삶, 스스로와 후배들을 채찍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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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석화.(사진=양윤모 기자)

 

“마이라 칼라스가 오페라에 대해 얘기하는 맥락이 저랑 너무 똑같아서 징그러울 정도예요. 예술은 모양과 색이 달라도 한 길 위에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렇게 그는 연극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자신이 연극하는 이유, 열정을 불태우는 이유 등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모든 축복은 고난을 통해 이뤄져요. 마리아 칼라스는 뚱뚱하고 못생긴 아이였지만 세계3대 오페라극장 라스칼라자에서 화관을 쓰고 노래하는 걸 보고 제가 다 통쾌했죠. 땅덩이가 작기 때문에 저는 그저 작은 이야기일 뿐이지 고난이 곧 축복이었던 삶이더라고요. 고난 없이 이뤄진 축복은 잠깐 켜진 네온사인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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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축복은 고난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는 윤석화.(사진=양윤모 기자)

학력 위조 사건을 비롯해 ‘명성황후’ 캐스팅 제외, 조세피난 논란, 그로 인한 공연 중단 통보 등 윤석화에게도 고난이 적지 않았다.

 

그 고난에 수십년 대본을 넣어 소중하게도 끌어 안고 다니던 대본 가방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기도 했었다.  

 

“큰 상처와 배신에 기가 막혔어요. 연극이 저를 배신하고 나라가 저를 버렸다는 느낌을 받았죠. 방향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긴 터널과 산과 강을 넘어가면 고난이 체득돼요. 그 다음에 더 큰 고난이 오면 이를 바탕으로 또 이겨낼 수 있죠. 고난도 그렇고 기쁨도 그래요. 그게 바로 삶이고 인생이잖아요. 겨울이 와서 다 말라붙어 소생하지 않을 것 같은 나무도 봄이면 어김없이 초록 옷을 입는 것처럼요.”

 

그는 이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본 삶이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마스터 클래스’의 초연 당시 청년이었던 구자범, 배해선, 이미 스타가 됐음에도 무대를 잊지 않는 황정민 등은 이미 공연계의 큰 인물이 돼 있다.  

 

그들에 대해 그는 “너무 대견하고 고맙지만 더 잘해달라”고 “연극이라는 본질, 무대는 꼭 지켜달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연극 ‘마스터 클래스’로 전하고 싶은 2개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오늘을 (마리아 칼라스처럼) 이렇게 치열하게 사십시오. 오늘 내가 그냥 보낸 하루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날이라잖아요. ‘마스터 클래스’을 보면 삶이 뜨거워질 거라 생각해요. 더불어 삶이 뜨거워지려면 예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술 향유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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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는 "예술 향유하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사진=양유모 기자)

 

그리곤 마치 대화하듯 풀어놓는 ‘마스터 클래스’ 속 대사는 배우 윤석화가 믿는 예술이 있는 세상에 대한 신념과 꼭 닮아 있었다.

 

“오페라가 없어도 내일 태양은 떠오를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페라가 없는 세상에 비해서 이 세상에 그 무엇을 변화시켰다고 믿습니다.”

 

연극 ‘마스터 클래스’ 연습, 폐비 신씨로 출연하는 이영애·송승헌 주연의 드라마 ‘사임당, The Herstory’ 촬영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연극을 ‘호흡’이라고 했다. 

 

“연극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그 호흡을 좀 가다듬고 싶어요. 제가 믿는 연극은 대답되어질 수 없는 질문이에요.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을 때 저는 무대에 올리는 거고 대답은 각자 다른 거죠.”

 

연극 ‘마스터 클래스’로 연극인생 40년을 정리하는 질문을 던질 윤석화는 올 9월과 내년에 무대에 올릴 작품 선정에 고심 중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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