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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설치극장 정미소 안녕, 윤석화의 ‘아름다운 도리’…‘It Was Our Time’

설치극장 정미소의 폐관작 ‘딸에게 보내는 편지’, 1992년 임영웅 연출·윤석화 출연으로 전세계 초연
2020년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 앞두고 오픈 드레스 리허설 형식으로 진행, 김태훈 연출·최광재 작곡가 합류
이종혁 사회로 진행된 제작발표회 "아름다운 배우로, 사람으로, 석양으로 후배들의 좋은 배경되겠다”

입력 2019-05-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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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
17년간 운영해온 설치극장 정미소의 폐관작으로 공연될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제작발표회에서 윤석화는 ‘It Was Our Time’을 불렀다(사진제공=돌꽃컴퍼니)

 

“지극히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관객이, 그 관객과 함께 한 시간들이 떠오르는 곡입니다. 17년 동안 이 극장의 머슴역할을 하면서 아픈 일도 힘든 일도 많았고 울고 웃고 그랬어요. 막상 이 공연하면 너무 아플 것만 같습니다.”

17년간 운영해온 설치극장 정미소의 폐관작으로 공연될 ‘딸에게 보내는 편지’(6월 11~22일) 제작발표회에서 윤석화는 삽입곡 중 하나인 ‘잇 원 아워 타임’(It Was Our Time)을 부른 후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나에게 주어진 데서 최선 다할 수 있었고 부족했지만 그 흔적이면 될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2002년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문을 연 정미소는 이 공연을 마지막으로 문 닫게 된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영국 극작가 아놀드 웨스커(Arnold Wesker)의 동명희곡을 무대에 올린 작품으로 1992년 임영웅 연출과 윤석화가 산울림극장에서 전세계 최초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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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초연됐던 ‘딸에게 보내는 편지’ 중 윤석화(사진=브릿지경제 DB, 돌꽃컴퍼니 제공)

 

가수로, 미혼모로 살았던 엄마가 사춘기에 접어든 딸에게 보내는 10가지 교훈을 편지 형식으로, 5곡의 노래로 풀어낸 모노드라마다. 2013년 서울 및 웨스트엔드 공연을 목표로 2012년 원작자 아놀드 웨스커, 제작자 리 맨지스(Lee Menzies) 등 웨스트엔드 제작진, 최재광 작곡가와 업그레이드 작업을 거쳤지만 좌절되는 아픔을 겪은 작품이다.

당시 아놀드 웨스커가 새로 쓴 가사와 최재광 작곡가가 새로 작업한 5곡이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공개된다. 이번 공연은 ‘브로드웨이 42번가’ ‘토요일 밤의 열기’ ‘조용필 콘서트’ 등의 작곡가이자 음악감독 최재광가 더불어 연극 ‘레드’ ‘대학살의 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시카고’ 등의 김태훈 연출이 힘을 보탠다.


◇2020년 웨스트엔드 공연을 위한 오픈 드레스 리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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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가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설치극장 정미소에 작별을 고한다(사진제공=돌꽃컴퍼니)
“(폐관작으로) 제가 정말 하고 싶던 작품은 남자 배우 캐스팅이 안돼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객과 함께 웃고 울고 따뜻해질 수 있는 작품을 생각하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떠올렸습니다. 관객들이 제가 한 작품 중 가장 열광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이 작품을 사랑해준 관객들이 같이 와서 울고 웃으며 (극 중) 엄마와 딸이 공유한 ‘우리들의 시간’을 같이 하면 좋은 공연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폐관작으로 선택한 데 대해 이렇게 전한 윤석화는 “2020년 웨스트엔드 공연이 예정돼 있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냈을 것”이라며 “여러분 사랑 덕분에 영국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고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이 ‘아름다운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영어 노래도, 한국말도 하는 리허설 형식으로 해보자 했어요. 좀 이상한 공연일 수도 있는데 좀 더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예술가라고 스스로 생각할 만큼 무모한 도전을 했지만 이렇게 이상하게는 못해봤어요. 그 이상한 것이 과연 우리 관객에게는 어떤 것을 줄까 좀 궁금합니다. 김태훈 연출이 저와 뜻이 잘 맞아서 오픈 드레스 리허설 형식으로 안사를 드리고 (웨스트엔드에) 가고 싶었습니다.”

이어 “아놀드 웨스커가 가사를 새로 다 썼는데 이 작품이 공연되는 걸 못보시고 2016년 4월 돌아가셨다”며 “당시 최재광 작곡가의 (새로 작업한) 음악을 듣고는 우리 작품은 망해도 이 노래는 히트하겠다고 할 정도로 곡도 훌륭하게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래하는 여배우를 위한 공연으로 저를 비롯해 조동진씨 등 주변의 음악 하는 친구들과 힘을 합해 5곡을 창작했다”는 초연과 달라진 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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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가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설치극장 정미소에 작별을 고한다(사진제공=돌꽃컴퍼니)

 

“이번 공연에는 아놀드 작사, 최재광 작곡의 새로운 곡을 비롯해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 동안은 드러나지 않았던 아빠의 존재가 등장하고 한편으로는 삶이라는 부피가 좀 더 두터워지고 많은 것을 더 생각하게 할 거예요. 단순히 딸에게 보내는 10가지 교훈 뿐 아니라 다른 일렁거림 같은 것들이 보여지는 쪽으로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김태훈은 연출은 “45세의 서툰 엄마가 딸 아이가 어른이 되는 걸 느끼면서 처음 쓰는 편지 내용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엉켜있는 실타래인 것처럼 여겼다”며 “이번엔 과거에 대한 회상, 반성,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하고 있어 더 크게 공감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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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최재광 작곡가(왼쪽부터), 이종혁, 윤석화, 김태훈 연출(사진제공=돌꽃컴퍼니)
최재광 작곡가는 “배우처럼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배역의 기억을 가지고 그 배역처럼 생각하고 감정 느끼며 작곡했다”며 “(아놀드 웨스커의) 가사가 이미 있어서 많이 읽어내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좋은 글은 많은 음악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승전력, 강약, 속도나 리듬감, 질감 등을 가사에서 충분히 읽어낸 후 제 것을 입힌 음악들입니다.”

최재광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에 대해 윤석화는 “독한 선생님”이라며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음이 아니어서 너무 기본 연습을 많이 시켜서 어떤 대는 눈물이 난다. 이 나이에 다시 기본부터 연습하는 게 기특하기도 하다”고 웃었다.

2020년 9~10월로 예정된 웨스트엔드 ‘딸에게 쓰는 편지’ 공연에 대해서는 “지금도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하고 있다”면서도 “잘 해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영어로 얼마나 할 수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40년 넘게 내 나라 말로 해도 살 떨리는, 천국과 지옥을 100번씩은 오가야 관객을 만나는 작업이 공연이거든요.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영국의 프로듀서(리 멘지스)가 용기를 많이 줬어요. 안하고 죽어도, 해도 후회할 것 같았어요. 한다면 최선을 다해 한국 배우의 저력을 한번은 보여주자 마음먹었습니다.”

이어 윤석화는 “런던 공연은 지난해 11월 결정됐고 2020년 9~10월쯤 극장이 잡혀 있다”며 “아돌드 웨스커의 아내께서는 서거 5주년(2021년 4월) 특별물로 하고 싶어하기도 하셔서 변수는 좀 남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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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가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설치극장 정미소에 작별을 고한다(사진제공=돌꽃컴퍼니)
◇모두에게 아쉬운 아듀 정미소, “이제는 진짜 시골 정미소를 꿈꿉니다”


“제가 여기서 ‘토요일 밤의 열기’를 공연했고 박정자 선생님과 ‘19 그리고 80’을 연습했어요. 분장실에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캐스팅 소식을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기자간담회의 사회를 맡은 이종혁은 정미소에서 보냈던 시절을 떠올리며 “감동적”이라고 소회를 전하며 아쉬움을 전했다.

“재밌게도 지냈고 (윤석화) 선생님, 최재광 작곡가, 박정자 선생님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만난 극장이에요. 많은 관객분들이 봐주셔서 감동을 받았던 기억도 납니다. 이제 이 극장을 안하신다고 하니 제 기억에만 남아 있는 공간이지 않을까 아쉽죠.”

이종혁의 말에 윤석화는 “제가 제일 보람이 있었던 건 아직 힘은 없지만 젊고 작품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후배들을 조금씩 후원해줬던 정미소프로젝트”라며 “이제 제가 ‘페이드아웃’ 하니 안타깝지만 할 만큼 했다는 위안도 받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더불어 좋은 공연장에 대해서는 “좋은 공연이 올라가는 곳”이라며 “작품이 항상 괜찮다는 신뢰와 극장 정체성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후에 대한 각오는 없습니다. 스스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나이이고 그런 의미에서의 ‘페이드아웃’이죠. 아침 태양도 아름답지만 석양은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곡해와 오해도 있었지만 저를 많이 사랑해 주시고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저 배우 사랑하길 잘했다’ 싶게 아름다운 배우로, 사람으로, 석양으로 후배들의 좋은 배경이 돼주고 싶습니다. 안타깝지만 저는 이제 시골에 진짜 정미소를 만들어 그곳에서 연극을 꿈꾸고 있을 것 같은 예감입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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