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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별 기자의 K엔터+] 연상호의 ‘지옥’, 혐오로 점철된 한국 사회의 민낯

[K드라마 읽기] -드라마 ‘지옥’ 공개 하루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1위
-맹목적 광신이 빚은 혐오의 광기, 비판 허용 않는 한국 사회 시사 커

입력 2021-11-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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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한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조은별 기자의 K엔터+’는 시시콜콜한 연예계 현상부터 K팝, K드라마, K예능 등 다양한 ‘K 콘텐츠’를 엔터테인먼트 전문 기자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코너입니다.

“너는 5일 후 15시에 죽는다.”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고지’를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코웃음을 치겠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괜한 찜찜함이 도사릴 것입니다.

 

예고된 시각, 갑자기 ‘지옥의 사자’라는 초자연적 존재들이 당신을 패대기치며 죽음으로 안내합니다. 숨이 끊어지는 과정과 더불어 성장사가 낱낱이 까발려지면서 한 사람의 살아온 궤적이 모두 ‘적폐’로 취급받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보는 평범한 시민들은 공포에 몸서리치며 맹목적으로 신과 사제들을 숭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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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한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지난 19일 공개된 또 하나의 K드라마 ‘지옥’의 얼개입니다. 극도로 어두운 염세주의적 세계관이 펼쳐놓은 디스토피아에도 불구하고 공개 하루 만에 ‘오징어게임’을 제치고 세계인에게 지옥문을 활짝 열어 젖혔습니다. 

 

‘지옥’은 한국을 비롯, 벨기에, 홍콩, 자메이카,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등 24개 국가에서 1위, 인도, 프랑스, 브라질 등에서 2위, 미국, 캐나다, 터키 등에서 3위에 올랐습니다.

 


◇판타지 속 묻어나는 한국 사회의 극단적 혐오와 갈등

‘지옥’은 영화 ‘부산행’ ‘반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과 웹툰 ‘송곳’을 집필한 최규성 작가가 공동으로 집필한 동명 웹툰이 원작입니다.

 

‘부산행’에서 K좀비를 내놓고, 드라마 ‘방법’에서 무속신앙의 세계를 펼쳐낸 연상호 감독은 ‘지옥’에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장르에 도전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초자연 현상이 재난을 빚어낼 때, 사람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어떤 선택을 하는지, 한국 사회에 빗대 그려냅니다.

드라마에서는 지옥행 고지가 정의롭지 않은 인간을 향한 신의 경고라고 주장하는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유아인), 혼란에 빠진 세상을 지키기 위해 맞서는 민혜진 변호사(김현주)와 진경훈 형사(양익준), 평범한 삶을 살다 갑작스러운 재난과 맞닥뜨린 배영재PD(박정민)와 그의 아내 송소현(원진아)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화면을 수놓습니다.

드라마의 핵심인 ‘지옥 사자’는 그 자체로 판타지입니다. 실제로 영상화된 ‘지옥 사자’ 역시 웹툰과 달리 다소 어색하게 구현돼 옥에 티로 꼽힙니다. 그러나 판타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지옥’의 배경에 새겨진 한국 사회는 작금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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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한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특히 공포가 빚어낸 광신이 혐오로 이어지고, 법과 질서가 마비된 사회가 비이성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대중의 공포를 양분삼아 정보와 권력을 장악한 새진리회와 정진수 의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일종의 자경단 역할까지 하는 화살촉 집단의 모습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여성과 남성, 보수와 진보 등 각자의 신념에 따라 타자를 증오하는 작금의 한국 온라인 세상을 빗댄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합리적인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며 타인의 고통을 지옥도처럼 구경하는 화살촉 집단의 모습은 정치권과 언론, 검찰을 향한 ‘사이버 테러’를 연상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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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한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탄탄한 대본과 세계관, 꼼꼼한 연출과 더불어 배우들의 연기는 ‘지옥’에서 발을 빼기 힘든 요인 중 하나입니다. 배우 유아인은 자의식 과잉에 빠진 사이비 종교 교주 정진수 역으로 다시 한 번 물오른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김현주는 정진수에 맞서는 민혜진 변호사의 신념을, 박정민은 평범한 사람이 재난에 맞서게 되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연기합니다. 조연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입니다. 두 아이를 남겨 놓은 채 지옥행을 고지 받은 박정자 역의 김신록, 새진리회의 새로운 실세 유지 사지 류경수는 ‘지옥’이 발견한 새 얼굴입니다. 



◇HBO ‘이어즈 앤 이어즈’부터 ‘디스토피아’ 열광하는 세계...‘오징어게임’ 영향도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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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한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지옥’의 인기는 지난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세계적으로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합니다. 국내 OTT인 왓챠를 통해 공개돼 화제를 모았던 HBO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도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입니다. ‘지옥’에 앞서 전 세계를 강타한 ‘오징어게임’ 역시 사회의 불공정한 모순을 표현했습니다.

한국 시리즈물인 ‘오징어게임’이 그간 1위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이 글로벌 시청자들을 안내한 것도 주효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루만에 1위를 차지했다고 샴페인을 터뜨리며 자축하기보다 향후 반응이 더욱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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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의 한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외신과 해외 누리꾼의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입니다. 앞서 토론토국제영화제, BFI 런던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지옥’을 접한 외신은 “연상호 감독의 매력적이면서도 섬뜩한 드라마”(BBC), “올해 한국 드라마는 디스토피아를 많이 선보였지만 ‘지옥’은 그 모든 것을 능가한다”(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오징어게임’과 유사하지만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컸다”(뉴스위크) 라고 호평했습니다.

미국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평론가들의 평가를 나타내는 신선도 지수는 100%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미국 비평 사이트 IMDb에서는 10점 만점에 7점을 받았습니다. 10점 만점을 준 관객이 35%를 차지하지만 최저점수인 1점을 준 관객이 9%를 넘었다는 점에서 관객의 호불호가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징어게임’이 할로윈 분위기에 휩쓸려 극의 무게와 상관없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를 끌었다면 ‘지옥’은 어떻게 글로벌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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