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ife(라이프) > 요리

맛에서 향기까지, 봄의 五感을 담았다

[오현식의 나물이야기]② 봄의 전령사 냉이

입력 2015-01-23 09:0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냉이는 봄이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의 날이 서서히 무뎌지고 해묵은 눈이 녹아 땅속으로 스며들 때면 냉이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겨우내 바싹 마른 목을 축인다. 

응달에는 아직 잔설이 겨울 끝 자락을 움켜쥐고 서성거리고 있지만 냉이는 벌써 파르스름한 기운을 입에 물고 새봄을 노래한다. 

속살까지 파고드는 혹한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자란 냉이의 살은 부드럽고 향긋하다.

냉이 세로3 경북 영양 11 02-1
수확한 냉이

 

냉이는 언 땅 속에서도 겨우내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봄을 기다리는 열정을 품고 있다. 들로 나가 양지 바른 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겨울에도 냉이가 자라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땅을 파 보면 깊게 내린 냉이의 잔뿌리는 눈 녹은 물로 목을 축이고 쉼 없이 살을 찌운다. 냉이 잎이 파릇파릇할 때가 되면 그제야 매화가 봄 소식을 알린다.

추울 때는 잎을 땅바닥에 깔고 자라는 모습이 이채롭다. 마치 줄기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모습이 장미꽃을 닮았다 해서 로제트 식물(rosette plant)이라 한다. 잎이 땅바닥에 납작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방석을 닮았다 해서 방석 식물이라고 한다.

냉이는 달다. 특히 나보란 듯이 미끈하게 쭉 빠진 뿌리가 달달하다. 정월 대보름 무렵이면 달달한 맛은 최고 절정에 이른다. 잔뿌리가 거의 없고 도라지 뿌리처럼 길게 쭉 빠진 것은 보기도 좋지만 맛도 좋다. 겉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을 드러내는 뿌리는 꼭꼭 씹을수록 달착지근한 맛이 입안 가득해진다.  

 

냉이 새봄 새싹 충남 당진 삼봉리 11 03 10-1
새싹을 틔운 냉이의 모습. 정월대보름이 지나고 잎이 검붉은 색에서 푸르게 변할 때 쯤이면 벌써 뿌리는 질기다. 게다가 냉이의 은은한 향은 어느새 풋풋한 풀냄새로 변해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냉이는 천연 향수다. 은은한 냉이 향은 마늘이나 양파처럼 향이 강하지 않지만 여운이 오래 남고 기분을 좋게 한다. 손바닥 위에 냉이를 올려놓고 비빈 다음 코끝에 갖다 대면 은은한 향이 가슴속까지 스며든다. 촉촉한 풀 냄새를 머금은 냉이 향은 머리가 지근지근 아플 때 맡으면 텁텁하던 입 안까지 개운하게 한다.

냉이는 추위를 견디고 캔 것이라야 맛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정월 대보름 전에 캔 냉이가 진짜 냉이라고 했다. 이때 쯤이면 봄꽃 소식이 남녘으로부터 날아오지만 옷깃을 파고드는 꽃샘추위가 매섭다. 이런 터에 논밭에 듬성듬성 난 냉이를 캐서 모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도시민들 사이에서 냉이 체험 농장이 인기라고 한다. 싸리나무 바구니를 끼고 나물 캐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체험 길에 나서 보면 어떨까?

하지만 단단히 마음을 먹고 가야한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 하지만 황량한 들판으로 나서면 귓불이 시리고 손이 곱다. 추운 날씨에 냉이를 캐 보면 값이 비싸다는 말이 함부로 나오지 않을 테다.

또 냉이를 잘 안 먹는 어린이들에게 직접 캐보게 하면 효과가 금방 나타난다. 추위에 덜덜 떨면서 캔 냉이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아 잘 먹게 된다.

냉이를 캘 때 뿌리가 뚝 끊어지면 그토록 안타까울 수가 없다. 냉이를 캘 때는 정성이 필요하다. 성급하게 잡아당기면 뿌리가 끊어져 맛이 떨어진다. 호미나 괭이로 뿌리 주위의 흙을 완전히 파내고 슬며시 잡아 당겨야 한다. 

 

땅이 단단한 곳에서 자란 냉이는 육질이 단단하여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좋다. 땅이 푸석푸석한 논보다 밭에서 자란 냉이가 훨씬 맛있다. 주로 봄에 먹지만 늦가을에 캐 두었다가 겨우내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 영양·약효


냉이는 100g당 칼로리가 31㎉로 살찔 염려가 없고, 단백질함량이 4.7g, 탄수화물 5.4g으로 풍부하다. 그 밖에 칼륨 288㎎, 칼슘 145㎎, 인 88㎎ 등 무기질이 많고, 비타민 A의 베타카로틴 1136㎍과 비타민 C 74㎍ 등이 풍부하다.

 

냉이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춘곤증을 예방하는 칼슘과 칼륨, 철분 등이 많이 들어 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한방에선  소화제와 지사제로 사용한다. 몸이 나른하고 기력이 없을 때 죽을 써 먹으면 곧 기력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몸에 좋다.

 

◇ 재배·수확


십자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인 냉이는 우리나라에서만 수십종류에 달할 정도로 품종이 다양하다. 나물로 먹기 가장 좋은 것은 참냉이라고 하는데, 잎이 약간 보라색을 띠고 뿌리는 단맛이 난다. 

 

냉이는 6월 무렵 꽃이 지면서 삼각형 열매 속에 황갈색의 종자가 맺는데, 종자는 익으면 터지므로 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채종해야 한다. 일시에 채종할 경우 70% 가량 여물었을 때 포기째 베어 말려서 털면 손쉽게 모을 수 있다. 파종은 9월 초순이 적기이다. 

 

오현식 ‘약이 되는 산나물 들나물 저자’ 

 

 

◇ 냉잇국 한 숟갈에 은은한 봄내음 '물씬' 

 

 

냉이국

어릴 적 대보름날 묵나물과 함께 먹었던 냉잇국과 냉이무침 맛이 도시 생활 수십 년이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혀끝을 떠나지 않고 있다. 

 

생 콩가루를 묻혀 끓인 냉잇국은 냉이의 은은한 향과 구수한 콩과 조화를 이루면서 별난 맛을 낸다.

 

 

 또 살짝 데쳐 콩가루에 묻힌 냉이 데침은 봄기운을 흠뻑 마시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맛있다. 

 

냉이와 소주, 흑설탕을 3:5:1로 섞어 1개월 이상 숙성시키면 건강에 좋은 술이 된다. 최근 건강식을 찾는 사람들이 냉이를 말려 차로 끓여 마시거나 녹즙을 내어 마시기도 한다. 

 

<냉이 된장국 끓이는 법> 

1 냄비에 물 1ℓ가량을 붓고 된장 1큰술, 국간장 1큰술, 멸치가루 1/2큰술을 넣어 국물을 끓인다. 

2 삶은 무청 시래기를 먹기 좋게 자른다. 

3 냉이를 송송 자른고 물기를 짜낸 뒤 날콩가루에 버무린다. 

4 끊는 된장 국물에 무청시래기를 넣는다. 

5 된장국물이 충분히 끓은 후에 날콩가루를 묻힌 냉이를 넣고 한번 더 끓여준다.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