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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대비책’ 난자동결 후 무작정 임신 미루진 마세요

냉동난자, 생체기능 유지할 뿐 개선 아냐 … 난자 건강해도 자궁 등 산모 컨디션도 고려해야

입력 2017-04-0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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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혼이 보편화된 요즘 난임에 대비해 난자를 보관하는 미혼 여성이 늘고 있다.
가수 이지혜 씨가 최근 “임신을 대비해 젊고 건강한 26개의 난자를 냉동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이가 불혹에 가까워져서 내 임신을 걱정하는 분들이 늘었다”며 “하지만 걱정 없다. 나이는 많지만 난자는 건강하다”고 말했다.

만혼이 보편화된 요즘 난임에 대비해 난자를 보관하는 미혼 여성이 늘고 있다. 불행하게도 난자는 생체시계의 큰 영향을 받는 장기 중 하나다. 난소는 20대에 기능이 가장 활발하며 30대부터 서서히 떨어지다 평균 37세를 전후로 눈에 띄게 퇴화한다. 결혼 전부터 미리 출산에 대비하는 여성이 늘어나는 이유다. 

34~37세는 사회생활이 한창 활발할 시기다. 커리어 관리를 위해 결혼·임신을 미루는 여성 중 임신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난자동결’로 시선을 돌린다. 

난자냉동은 암·백혈병 등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여성들이 난자의 질이 저하되거나 난자가 생성되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해 보관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반면 최근에는 만혼 여성이 혹시 모를 난임에 대비해 난자냉동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난자를 보관해 추후 시험관아기 등을 시도할 때 임신 가능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해외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의 경우 해외 파견을 나가는 여군들이 많이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애플·페이스북 등은 2~3년 전부터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 임신을 미루는 여직원에게 복지 차원에서 난자동결 시술을 지원하고 있다. 

난자냉동은 1986년 독일에서 처음 성공했다. 이후 현재까지 1000여 명의 아기가 냉동 난자로부터 태어났다. 이젠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난자의 염색체를 재배열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난자동결은 ‘유리화 난자동결법’이 표준으로 쓰이고 있다. 난자를 얼음보다 더 딱딱한 알갱이, 즉 유리구슬과 같은 형태로 보존한다. 슬러시 질소로 난자를 영하 210도까지 급속 냉동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동결보존액이 난자 안으로 파고들어 동그랗게 굳는다. 이 방법은 상온에서 해동해도 생물학적 기능이 잘 복원되도록 유도한다. 이후 해동된 난자는 세포벽이 신선난자보다 더 딱딱해 미세바늘로 난자 벽에 구멍을 뚫어 정자를 안으로 주입해 인공수정한다. 난자의 생존율은 최대 89.4%로 기존 완만동결법의 40~60%보다 향상됐다. 

한국도 1990년대 중반 난자 동결 시술을 시작, 꾸준히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부 의원의 의뢰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9월 현재 국내 의료기관 26곳에서 총 4586개 난자를 냉동 보관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시세는 시술료가 약 250~300만원, 1년 보관료가 10~30만원 선이다.

차병원은 1996년 9개이던 냉동난자가 올해 1786개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차병원이 2015년 37난자은행을 조사한 결과 이곳에 난자를 보관하는 여성은 2013년 30명에서 2015년 128명으로 4배 늘었다.  

보관하는 주 연령층은 35~40세 여성이 36%로 가장 높았다. 40대 여성이 35%로 그 뒤를 이었다. 20대도 14%를 차지해 젊은 시절부터 난자 보관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차병원 조사 결과 난자를 보관하는 이유는 △만혼 대비를 위한 선택이 62%로 가장 많았고 △일반적 시험관아기 시술 예약(15%) △난치성 질병 치료(14%) △난소기능 저하로 인한 시험관아기 시술 대비(9%) 순이었다. 난자동결을 원하는 여성 가운데 만혼에 대비한 미혼 여성들이 시험관 아기를 목적으로 여성(24%)보다 월등히 비율이 높았다.

김자연 차병원 서울역 난임센터 교수는 “의학적으로 35세 이상이 되면 노산이라고 부르고 40세 이상이 되면 임신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며 “최근 일과 경제적인 문제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결혼이나 출산을 미루는 여성들이 증가함에 따라 난자를 보관하려는 미혼 여성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 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난자 역시 노화에 민감해 나이가 들수록 염색체 이상 및 유산 위험성이 높아지는 만큼 ‘아무 때나’ 냉동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가능하면 35세, 늦어도 38세 이전에 동결할 것을 권한다. 

난자의 노화된 정도는 난소예비능검사(항뮬러관호르몬검사, AMH)로 확인할 수 있다. 난포 수가 적을수록 항뮬러관호르몬 수치가 낮다. 

긍정적인 검사 결과가 나온 뒤 시술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생각보다 만만찮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생리 시작 직후부터 평균 6~9일간 매일 과배란 유도 주사를 스스로 복부에 주사해야 한다. 주사가 끝난 날로부터 이틀 뒤 채취시술을 받게 된다. 시술은 10분 내외로 짧지만, 가느다란 바늘로 난소 속 난자를 흡입하는 방식은 심한 통증을 감수해야 한다. 30대 여성에서 평균 5~20개의 난자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채취한 난자는 전부 냉동한다. 자칫 해동 과정에서 20~30%가 소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냉동기술이 발전하며 오랫동안 난자를 냉동해도 일반 난자와 수정성공률 등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게 임상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건강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동결에 집착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난자동결은 난자의 생체기능을 유지만 할뿐 개선하는 게 아니므로 채취 당시 난자의 상태가 좋아야 임신 성공률도 높아진다”며 “이후 냉동난자의 상태가 좋아도 자궁내 환경이 나쁘면 임신이 어렵고, 수정에 성공해도 자궁내막 상태가 좋지 않으면 착상이 잘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궁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유산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찬우 제일병원 난임생식내분비과 교수는 “의사들이 난자 동결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높아졌고, 난자를 약 10년간 얼려놔도 문제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분명 존재한다”며 “하지만 자궁과 호르몬 등도 나이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임신을 무작정 미루기엔 무리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희원 기자 yolo0317@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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