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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많던 녹용 원산지 바꿔치기 … 요즘은 믿을 만한가요?

수입금지 북미산, 다른 산지 품목과 과학적으로 구별할 방법 없어

입력 2018-04-0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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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용 중 러시아산·뉴질랜드산·중국산·국산은 핵자기공명분광분석(NMR)을 통해 약 94% 이상 정확도로 감별할 수 있지만 수입이 금지된 북미산은 이 방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10년전 발의에 그친 ‘한약재 이력추적관리제’, 도입 필요성 재부각 

국내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녹용이 홍삼을 이을 원기회복 건강식품으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값비싼 러시아산 녹용 100%로 원산지를 속여 파는 사례가 종종 보고돼 녹용 품질에 대해 의심하는 눈초리가 적잖다.   

한국은 전세계 녹용의 70~80%를 소비하는데 약 95%는 수입해 쓴다. 국내에 유통되는 녹용 대부분은 러시아산, 뉴질랜드산, 중국산이다. 언급한 순서대로 가격이 비싸다. 캐나다산과 미국산은 2000년에 CWD(만성소모성질병, chronic wasting disease)로 수입이 금지됐다. 국내에선 꽃사슴이 자취를 감춘 이후 사슴과 동물인 고라니의 것을 주로 사용한다.

녹용은 숫사슴의 미골화(未骨化, 아직 뼈로 굳어지지 않음)된 어린 뿔을 채취해 가공한 약재로 초목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에 비유해 이름이 지어졌다. 한의학적으로 항노화, 성선자극(gonadotrophic), 프로스타글란딘 유사체(prostaglandin-like) 활성, 조혈(hematopoietic), 면역강화 등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산지뿐 아니라 뿔의 부위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녹용은 아래에서부터 하대·중대·상대·분골 등으로 나뉘는데 뿔 위쪽 부위로 갈수록 영양 성분이 풍부해 고가에 거래된다. 분골에 생장점이 몰려 있다.

러시아산은 녹용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의미에서 무역상들이 원용(元茸)이라고 부른다. 사슴이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영하 30℃ 이하의 러시아에서 자란 사슴은 몸집과 뿔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산은 사슴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등 좋은 조건에서 성장해 러시아산보다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슴들이 깨끗하고 넓은 환경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라기 때문이다. 수입산 원산지 중 가장 많이 차지한다. 
‘깔깔이’라 불리는 중국산은 마록(馬鹿)의 뿔이 주로 사용된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녹용 불법유통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녹용 수입 통관검사, 한약재 제조·품질관리기준(GMP)을 강화해 한의원이 처방하는 의약품용 녹용은 품질은 믿을 수 있다”며 “마트·홈쇼핑에서 판매되는 식품용 녹용은 상대적으로 품질 관리가 느슨해 원산지 둔갑, 녹용 유효성분 희석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의원에서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녹용은 ‘대한민국약전외한약규격집’이라는 공정서의 기준·규격에 따라 GMP 한약재 제조업소에서 ‘규격품한약재’로 제조된다. 의료기관은 이 한약재를 사용해서만 약을 짓도록 규정돼 있다. 한의사가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을 한약재에 추가하는 등 임의로 조제하면 처벌받게 된다. 원료 수입사는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서, 원산지증명서, 수입면장 등을 제출해야 한다. 홍콩 등 제3국을 통해 반입할 경우 더 까다로운 통관검사를 거친다.

하지만 캐나다산은 정밀한 화학적 성분 분석법인 핵자기공명분광분석(NMR)으로도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녹용과 구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각에선 협회가 10년 전에 추진하다 무산된 ‘한약재 이력추적관리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입이 금지된 북미산이 제3국을 통해 중국산 등으로 둔갑할 우려가 있어서다. 잘게 잘린 녹용 절편은 육안으로 원산지를 감별하기 어렵다.

한약재 이력추적관리제는 모든 한약재를 대상으로 생산부터 유통까지 이력을 추적한다. 한약 안전성과 소비자 신뢰도를 높일 방안으로 2008년에 법안으로 발의됐다. 생산·제조업자 등이 원가 상승·관리 번거로움 등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해 국회에서 10년째 계류 중이다. 

식약처는 2008년에 문상호 건국대 녹용연구센터 교수팀에 ‘녹용의 원산지 및 기원종 감별법 연구’를 의뢰해 산지를 나라별로 구분할 수 있는 화학적 성분 분석법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러시아·뉴질랜드·중국·캐나다 및 국내 주요 사슴농장과 녹용 가공공장을 직접 방문해 사슴종별로 녹용시료를 확보했다. 구분모델을 확립하지 못한 캐나다산을 제외한 나머지 산지에 한해 NMR 분석법으로 미지 시료의 원산지를 94% 이상 정확도로 맞췄다. 러시아산과 뉴질랜드산은 NMR 스펙트럼이 특히 비슷해 다른 원산지와 차이가 났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러시아산 녹용 품종 가운데 약 70%를 차지하는 C. e. sibericus의 염색체 중 단일염기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부위를 찾아 다른 종과 중합효소연쇄반응(PCR)으로 염기서열을 구별할 수 있는 프라이머(primer)를 만들었다. 와이피티(Wapiti)종에 속하는 주요 러시아산 품종인 C. e. sibericus, 캐나다산 품종(C. e. nelsoni, C. e. manitobensis, C. e. canadensis) 등은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해 아종 구별이 무의미하다고 덧붙였다.

순록의 뿔은 녹용보다 약리적 효능이 떨어져 가격이 저렴하다. 녹용에 불법적으로 혼입된 사례가 종종 보고된다. 둘은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렵지만 염기서열이 약 10~12% 차이 나 PCR 기법으로 감별할 수 있다.



김선영 기자 sseon0000@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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