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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리뷰+관크] 이 정도면 ‘범죄’, 연극 ‘와이프’ 불법 촬영 유감

입력 2024-01-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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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와이프’ 공연장면(사진제공=글림컴퍼니)

 

흔히 공연을 완성하는 건 관객들이라고들 한다. 특히나 조금만 몸을 앞으로 숙여도 뒷줄의 시야가 가려지고 한 사람이 움직이면 연쇄적으로 모든 좌석이 들썩거리는가 하면 작은 소리도 집중력을 깰 수 있는 한국의 공연장 환경에서 뮤지컬, 연극 등이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건 관객들 덕분이었다.

전세계 거의 모든 극장이 셧다운됐던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한국의 무대가 유일하게 불을 밝힐 수 있었던 건 배우, 창작진을 비롯해 철저한 방역을 감내하며 관람에 나선 관객들이 있어서였다.

지난 5일 연극 ‘와이프’(2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유플러스 스테이지) 관람 중의 일이었다. 영국 작가 사무엘 아담슨(Samuel Adamson)의 2019년작인 연극 ‘와이프’는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의 ‘인형의 집’이 끝나는 시점에서 시작해 1959년부터 2046년까지 4개 시대를 연결하며 여성과 퀴어로서의 삶을 아우른다.  

 

연극 와이프
연극 ‘와이프’(사진제공=글림컴퍼니)

극 중 ‘인형의 집’ 출연배우 수잔나(김소진·박지아, 이하 관람배우 순)와 순종적인 데이지(최수영·김려은), 그녀의 보수적인 남편 로버트(이승주·송재림), 피터(정웅인·오용) 등을 중심으로 여성과 퀴어의 삶 그리고 진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여정을 담은 ‘와이프’는 2019년 신유청 연출로 한국에 초연된 후 2020년에 이어 3년만에 돌아왔다.

사건(?)은 3시간여 대장정의 막바지에 벌어졌다. 데이지가 환복을 하는 장면에서 느닷없이 카메라 셔터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앞자리 관객부터 여러 군데서 들리는 연속촬영 셔터소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는 사이 어떤 제재나 주의도 없었다.

다양한 ‘관크’를 경험했지만 그간 듣도 보도 못한 유형이었다. ‘관크’는 관객+크리티컬(Critical)의 합성어로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배우와 창작진, 관객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배려하고자 하는 한국 고유의 공연 관람 문화는 그간 “소수의 편협하고 강압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문화”라거나 “시체관극” 등 논란거리가 되곤 했다.

하지만 이날의 ‘관크’는 논란의 여지도 없는 것이었다. 다른 관객들의 관람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공연 저작권 및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한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사실 그 촬영 시점을 고려하면 ‘관크’라기 보다 범죄에 가깝다. 촬영 지점이 꽤 오랜 경력의 걸그룹 멤버인 배우의 환복 순간이었고 잠시나마 슬립차림이라는 걸 명확히 아는 듯한 손놀림들이었기 때문이다.

제작사 글림컴퍼니는 “연극 ‘와이프’ 팀과 LG아트센터 서울은 관련 논의를 거쳐 앞으로 동일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객석 내 하우스 인력 추가 배치, 객석 모니터링 위치 변경, 외국어 안내 멘트 진행 등의 이전보다 강화된 하우스 운영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간의 ‘와이프’는 긴 역사가 거듭되는 동안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내몰렸음에도 스스로를, 삶을 지켜낸 인물들의 절실한 여정을 함께 하면서 늘 여운이 길었다. 하지만 그날의 ‘와이프’는 배우 그리고 함께 관람하는 다수의 관객들에 대한 존중이라곤 없는 소수의 돌발행동으로 진중한 메시지는 퇴색되고 소름돋는 범죄의 현장에 내던져진 불쾌감과 씁쓸함이 뒤엉킨 풍경으로 남고 말았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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