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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폐광촌으로 흘러온 난민을 바라보는 토박이들의 싸늘함… 과연 영국만의 이야기일까?

[문화공작소] 영화 '나의 올드 오크', 희망과 연대에 대한 정의 되물어

입력 2024-01-15 18:00 | 신문게재 2024-01-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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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올드오크1
영화의 결정적인 주제를 함축한 한컷의 사진.“함께 먹으면 더 강해진다”는 광부 아내들의 강인함을 보고 폐광촌 사람들은 다시 희망의 불씨를 일군다.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곧 아흔을 바라보는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 영화는 늘 날카롭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2회 및 심사위원상 3회 석권에 빛나는 그는 조국의 빛나는 성취보다 국가의 이념, 시스템 사이에서 희생되는 개인의 삶을 비춘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현대사회의 복지 사각 지대에 갇힌 사람들을, ‘미안해요. 리키’는 임시 계약직 채용을 추구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에 희생된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담아내 큰 울림을 자아냈다.

17일 개봉하는 ‘나의 올드 오크’는 한때 영국 산업을 이끌었던 광부들의 삶에 집중한다. 지금은 폐광촌이 된 북동부 한 마을에 시리아 난민들이 이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40년 전 광산이 문을 닫기 전까지 이 곳은 활기차고 사람들이 북적였다. 광부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행여라도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나질 않기를 바라는 엄마들의 기도를 듣고 자랐다.

 

나의 올드오크3
발 딛을 팀이 없었던 탄광촌의 술집은 이제 간판을 수리할 돈이 없을 정도로 궁핍하다.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하지만 더 무서운 일은 정부보다 노조가 강했던 제조업 중심 사업이 서비스업으로 바뀌면서 일어났다. 석유 사용이 점차 늘면서 1980년대부터 전국 260여곳의 탄광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궐기했으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다. 사람들이 점차 도시로 떠나고 빈집이 늘면서 도시 외곽의 빈민들이 저렴한 집세를 찾아 몰려들었다.

이웃의 정은 사라진 지 오래. 그나마 그들조차 마을을 떠나고 인구수가 줄어들며 교회는 사라지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영국 정부는 방치된 집을 저렴하게 임대해 가족을 잃고 고문을 피해 국경을 건넌 난민들을 위해 개방했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옳은 결정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였다. ‘나의 올드 오크’의 오프닝은 사운드는 그대로 남기고 몇장의 사진을 배치하며 당시 영국 국민들이 가졌던 반감을 고스란히 담는다.

버스를 타고 폐광촌에 도착한 이들은 지역주민들의 날선 반응에 잔뜩 얼어붙는다. 사람들은 야유를 퍼붓고 죄인 취급을 하며 조롱한다. 하나같이 “왜 하필 우리 동네에 두건을 쓴 무리들을 보냈느냐?”고 분노를 표출한다. 가족들과 함께 짐을 내리던 야라(에블리 마리)는 동네 취객에게 전쟁으로 헤어진 아버지에게 받은 카메라를 빼앗기고 만다. 바닥에 내동댕이 쳐 깨진 렌즈를 본 탄광촌 선술집 ‘올드 오크’의 주인 TJ(데이브 터너)는 중재를 하려다 되려 지인들의 비아냥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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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친구들이 아니면 ‘올드 오크’의 운영도 힘들어진다. “줄 잘 서라”며 TJ에게 마지막 경고를 날리는 지인들의 이기적인 행동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나의 올드 오크’에서 켄 로치 감독은 “난민들이 영국 외곽에 이주하기 시작한 건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면서 “나눌 것이라곤 절망밖에 없는 두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까에 대한 질문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실 토박이들의 삶도 녹록치 않다. 늘 주류에게 차별받고 혜택에서 소외되는 일상이었다. 세금을 낸 건 자신들이지만 되려 난민들이 지원받는 식량과 전국에서 몰리는 기부품목이 풍족한 아이러니를 목격하게 된다.

TJ는 친구들의 푸념과 욕을 들으며 펍을 운영하고 이들은 “유일하게 우리가 쉴 수 있는 공간”이라며 난민들과 공유하기를 꺼린다. 하지만 야라의 카메라를 고쳐주는 과정에서 시리아 정부의 잔인함과 그들이 겪은 수난을 알게된 TJ는 알게모르게 곁을 내준다. 자신들이 폐광촌에서 인생을 보낼지 몰랐던 것처럼 이들 역시 죄없이 전쟁의 희생양이 된 것 뿐이었다. 난민들이 오기 훨씬 전부터 동네는 쓰레기와 악취, 사회적 제도에서 벗어난 사람들로 몸살을 겪고 있었지만 자신보다 약자인 존재가 등장하자 모든 원망을 덧씌우며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

야라 역시 선진국이라 여겼던 영국에서 가난이 익숙한, 그리고 법의 보호에서 벗어난 약자들을 목도한다. 아이들은 제대로 된 끼니조차 챙겨먹지 못한 채 직업을 구하지 못한 부모들에게 방치되며 자라고 있었다. 10대가 된 몇몇은 약물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가족은 붕괴되고 사회는 점차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

 

나의 올드오크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의 올드오크’의 한 장면. 기꺼이 음식을 나누며 토박이들과 난민들은 서로의 아픔을 치유한다. 감독은 현지 주민들을 캐스팅해 사실성을 더했다는 후문이다.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흐릿한 희망은 과거 노조투쟁을 경험했던 TJ와 야랴가 ‘한끼 식당’을 내면서 불이 붙는다. 가스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던 부엌 ‘올드 오크’ 주방 한켠에 기부받은 음식으로 일주일에 한 두번 함께 식사를 하는 이벤트를 열며 간만에 동네에 활기가 돈다. 국적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각자가 가진 재능으로 가게를 고치고 한줌의 식량을 기꺼이 내어놓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않는다. 적과 친구는 늘 가까이에 있는 법. ‘나의 올드 오크’의 절망은 가까운 지인들의 시기에서 시작된 비극이었다.

식당이 하루만에 문을 닫자 TJ는 울음을 터트리지만 맛있게 그 음식을 먹었던 어린 소녀의 반응은 되려 덤덤하다. “그럴 줄 알았어요. 좋은 것은 늘 금방 사라지거든요.” 너무 빨리 현실의 맛을 알아버린 그 대사는 우리 모두의 공감으로 귀결된다. 이들은 과연 화해하고 연대할 수 있을 것인지 ‘나의 올드 오크’가 보여주는 희망의 끝은 차오르는 눈물이 한 가득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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